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권진규展>은 그의 모교 무사시노(武藏野)미술대(2009.10.19~12.5)와 함께 한국의 덕수궁미술관(2009.12.21~2010.2.28)에서도 열릴 대규모 회고전이다. 이 전시는 권진규(權鎭圭, 1922~1973)의 일본 유학시절부터 만년의 작품들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을 비롯해 50여 년 만에 공개되는 졸업작품, 미공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한국어와 일본어를 병기한 카탈로그는 평전과 논문들을 수록하고 있어 자료 면에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는 회고전이 여러 차례 열렸지만, 일본에서는 처음이라는 점이 앞으로 그에 관한 일본에서의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권진규는 일본에 있는 형을 간병하기 위해 1948년 일본으로 밀항한 후, 도쿄의 사설미술연구소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무사시노미술학교 현 무사시노미술대 조각과에 입학해 수학한 후 1959년 일본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1959년은 도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해이자 급속한 산업화, 정보화의 물결과 함께 일본이 ‘전후 상황’을 떨쳐내기 시작했던, 소위 ‘회복기’에 해당하는 시기다. 당시 일본미술계에는 1960년대 전반까지 비(非)심사그룹 <요미우리 앙데팡당(讀買アンデパンダン)展> 등에 기존의 회화나 조각 형식에서 탈피한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이 작품들은 ‘반예술(反藝術)’이라 불리었는데, 같은 시기 ‘네오다다이즘 오거나이저’와 ‘큐슈(九州)파’, ‘제로 차원’ 등과 같은 그룹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도 새로운 표현활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간사이(關西) 지방에서는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 1905~1972)를 주축으로 한 구체(具體)미술협회가 프랑스 앵포르멜(informal)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나 서정적 추상회화의 한 경향  과 동시대적인 형식성 추구, 공동 투쟁이라는 명목 하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운동은 추상형태, 비정형성, 물질성을 전면에 표출하는 직접적인 표현이 특징이었다.

권진규의 작품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정적이고 긴장감 있는 형식과 구체적인 경향, 견고한 조형성은 일본 전위예술의 주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반시대적인 경향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그가 근대예술과 한국 전통의 조화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귀국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만년에도 외국작품을 안이하게 모방하는 한국미술계를 보며 개탄했다고 한다. 근대예술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예술의 전위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 하라면 그의 작품에도 ‘한국’과 ‘근대’ 사이의 긴장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시 한국에서의 그의 상황도 일본과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1965년 한국 최초로 개인조각전을 개최했지만 미국의 추상조각과 실험미술이 도입되기 시작한 한국미술계에서 근대적인 조각미술 방식을 지키는 그의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조각가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 1861~1929), 로댕(Francois Auguste Rene Rodin, 1840~1917), 만추(Giacomo Manzu, 1908~1991) 외에도 아시리아아시아 서남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류 지역의 옛 이름, 이집트, 고대 그리스, 동남아시아의 불교문화 등에서 영감을 받은 권진규의 작품들은 항상 고풍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예를 들면 <기사(騎士)>(1953년경)는 끌로 다듬었기에 그 질감이 풍화된 고대 건축물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작품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가장 잘 알려진 테라코타(treea cotta) 점토를 구워 만든 것 흉상들 가운데서는 점토를 조금씩 붙여나가며, 표면에 자잘한 굴곡들을 만들어낸 작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소상(塑像)용 점토로 대상의 틀을 만드는 경우에도 분할된 선이 그대로 나타나도록 했다. 건칠(乾漆)2기법을 사용한 작품에서도 표면을 거친 굴곡으로 표현해 물질과 이미지와의 균형을 나타내려 했다. 이렇게 오래된 듯한 느낌을 주는 표현 혹은 그 생성과정을 나타내는 흔적들을 그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피하려 했던 것은 부드러운 마감처리였으며, 사물의 성질까지 덮어버리는 이미지의 우월성이었다. 그의 조각은 항상 물질적 저항을 그 표면에 표출하고 있었다. 나체의 여인상과 관련한 그의 작품 <나부(裸婦)>에서는 중력을 벗어난 조각상이 아니라 지면에 밀착해 있는 포즈를 자주 볼 수 있고, 말 조각상 역시 지면 위에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그의 조각은 물리적인 표면의 표현뿐 아니라 작품과 공간과의 관계, 즉 그 구조를 통해서도 어떤 ‘저항’을 나타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의 작품에 내재한 ‘저항’의 존재를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기사><1953>,개인소장.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