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첫머리, 남편에게 살해당한 아프가니스탄 여성 시인 나디아 안주만을 위하여 쓰여졌다는 것을 밝히면서 이 책은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의 고통스런 여성현실을 시어로 옮겼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에게 명예살인을 당한 시인. 어두운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한다.

생게 사보르(Syngue Sabour). 페르시아어로 ‘인내의 돌’이란 뜻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 돌을 앞에 두고 모든 고민을 털어놓으면 임계 지점에 이르렀을 때 돌이 깨지면서 그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준다는 신화가 전해 내려온다.
소설에는 이름도 나이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여인이 등장한다. 소설은 여인의 독백으로 전개된다. 이 여인의 삶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죽은 듯 누워있는 남편을 향해 내뱉는 독백을 통해서다.

여인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시집을 왔다. 시집을 온 지는 십 년이 지났지만 같이 산 것은 삼 년 정도다. 폭력적이었던 남편은 가눌 수 없는 산송장이 되어 전쟁터에서 돌아왔고, 시댁 식구들은 모두 그런 남편을 이 여인에게 떠맡긴 채 도망치듯 떠났다. 남편을 돌보는 것도, 두 딸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도 순전히 여인의 몫이다. 여인은 성매매를 통해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여인은 자신의 운명이었던 그 남자에게 저주와 비난, 조롱과 사랑과 용서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 대화는 물론 허공 속에서 신음으로 흩어지는 독백으로 끝나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내면을 공개한다. 죽은 듯 누워있는 남편은 말이 없다. 그저 듣고 있을 뿐이다. 양파가 껍질을 벗듯 그녀는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삶의 비밀을 남편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 고백은 복수와도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요청하는 화해의 기도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쩌면 남편이 벌떡 일어나 자신과 화해하고 용서하고, 다시 사랑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삶의 비밀이 그녀의 몸 밖으로, 허공 속으로 하나씩 빠져나오면서 그녀는 마침내 조금씩 자유를 얻게 된다. 그리고 움츠러들었던 영혼의 치유를 얻게 된다. 그녀의 마지막 비밀… 생게 사보르의 전설처럼 그것은 죽은 듯 누워있던 남편을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일으킨다.

생게 사보르. 죽은 듯 굳어있던 남편이 생게 사보르가 되는 순간이다. 임계지점에 이른 두 사람의 영혼은 육체의 생명을 다함으로써 해방되고 자유를 얻는다. 그런데 그 자유는 안타깝게도 육체의 죽음을 담보로 하고 있다.

남편을 생게 사보르로 만든 한 여인의 이야기.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극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성의 해방도, 남성과의 화해도 결국은 죽음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었던 여인의 삶을 통해 인간이 만든 제도와 관습이 결국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를 묻게 한다.

가부장제도 하에서 여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은 여성이 남성의 명예가 되는 경우다. 여성은 재생산과 가사노동과 남편의 성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기능적 역할로서만 존재한다. 더불어 남성의 명예에 어떤 흠집을 내는 것도 용납될 수 없다.

저자 아티크라히마

소설 속의 여성은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철옹성 같은 제도와 관념의 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들을 선택한다. 남편의 몸을 받아들일 때, 그녀의 몸은 제도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차린다. 제도가 요구하는 재생산의 기능을 위해 그녀는 기꺼이 제도와 도덕을 뛰어넘은 선택을 감행한다. 그 선택은 죽음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명예를 담보로 한 것이기도 하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비밀인 것이다. 남편의 명예를 담보로 한 비밀이 공개되는 순간 그것은 사장되어야 한다.

죽은 듯 누워있던 남편을 일으킨 그 비밀은 남편이 일구어온 환상이며, 가부장제가 목숨처럼 지켜온 환상이다. 그 환상은 생게 사보르라는 신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