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트플랫폼

최근 창작공간 설립 붐이 일고 있다. 서울에서는 6월 개관한 남산예술센터를 시작으로 10월까지 총 네 곳이, 인천에서는 인천아트플랫폼이 지난 9월 문을 열었다. 11월에는 경기창작센터도 개관할 예정이다. 창작스튜디오란 재래의 공연·전시장을 확장한 공간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엔 레지던시, 스튜디오 등의 개념과 뒤섞여 쓰였는데 지금은 비교적 그 의미와 활동들이 안정되어 있다. 초기 창작스튜디오들은 입주작가를 위한 공간 제공에 중심을 두었다. 특히 폐교를 활용한 사례들은 ‘폐교 활용 촉진을 위한 특별법’(1999.8.31)이 만들어진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8년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충북 논산과 인천시 강화군에 폐교 활용 창작촌을 조성하기도 했다.

남산예술센터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작가들의 기존 생활권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상호 구성적 관계를 중시하는 동시대적 현대미술의 흐름을 적용하기에도 부족함이 컸다. 이후 몇 년 동안에도 국공립, 사립 창작스튜디오는 빠르게 증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창동스튜디오(2002)와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2004)를, 서울시립미술관이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06)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일차적으로 기대한 것은 각자가 선정한 입주 작가들이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한 자기계발의 기회가 뒤따른다. 최근 들어서는 작가들의 유목민(nomad)적 활동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면서 국제 문화교류 중심으로 지원 정책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서교예술실험센터

장르별 특성에 따라 설립된 공간 제공 중심의 1세대 창작스튜디오에 이어 네트워크 중심의 2세대 창작스튜디오들이 등장한 데에는 ‘소통과 통섭’이라는 최근 예술계의 화두가 한몫을 했을 터다. 앞서 말한 남산예술센터, 인천아트플랫폼, 경기창작센터는 창작자와 향유자,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2세대 스튜디오들로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에서 최근 네 곳이나 되는 창작스튜디오가 문을 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컬쳐노믹스의 일환인 ‘서울시 창작공간 조성사업’이 자리 잡고 있다. 유휴 공공청사, 폐공장 등 낙후 지역의 공간을 활용하여 국내외 예술인들에게는 창작공간과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는 창작·향유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비전을 그리고 있다. 연극의 메카였던 드라마센터를 부활시킨 ‘남산예술센터’(6. 8.), 동사무소를 홍익대 인근 문화창구로 변모시킨 ‘서교예술실험센터’(6. 19.), 인쇄공장을 국제교류 거점공간으로 조성한 ‘금천예술공장’(10. 7.)에 이어 ‘신당창작아케이드’를 10월 16일 개관했다. ‘서울창작공간’으로 묶여 있는 이 공간들은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한다. 이들은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이 되어 예술가들에게는 여러 가지 실험이 가능한 장소로, 시민들에게는 일상적 문화·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금천예술공장

인천아트플랫폼은 또 다른 경우다. 인천시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준비기간에만 장장 9년이 걸렸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는 근대개항장 건축물들이 비교적 잘 보존된 구역으로 조형적 가치가 높다. 따라서 인천아트플랫폼은 역사성과 공간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낸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M.A(master architect)제도를 적용하기도 했다. 도시계획, 시설, 미술 분야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5인의 M.A는 복합 문화시설에 구도심 활성화라는 도시계획적 비전을 반영하고자 했다. 근대건축물 13개 동의 재생을 통해 창작스튜디오, 아카이브, 교육관, 전시장, 공연장 등을 조성한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창작과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술창작의 인큐베이터를 지향하고 있다. 개관과 함께 레지던시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해 국내외의 작가 31인이 활동을 시작했다. 공간 제공을 비롯해 작가-비평가 연결프로그램, 답사, 오픈스튜디오 등의 프로그램과 프로젝트 수행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문화 인프라가 적은 인천은 시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지역과 세계의 소통을 매개하는 역할과 지역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금천예술공장

10월 28일 개관 예정인 경기창작센터는 경기도미술관이 운영을 맡고 있으며 80명가량이 동시 입주해 작업할 수 있다. 옛 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약 54,000㎡) 건물을 리모델링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술관이 운영하는 창작센터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이는 경기미술관이 갖는 공립미술관의 기능을 확장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국제 네트워크다. 기획프로그램을 통해 작가 커뮤니티를 형성, 국제적으로 연대한다는 것이 밑그림이다. 이들은 국제자문회의를 구성해 지난 5월 운영방식과 프로그램에 관한 회의를 마치고 개관기념행사(10. 28.~11. 1.)로 세계 600여 개 창작스튜디오 연합단체인 ‘리즈 아티스(Res Artis)’ 총회를 개최했다.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 리모델링 후의 모습


광주시립미술관이 오는 12월 베이징에 창작센터를 오픈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베이징 따산스 인근 환티에(環鐵)창작예술지구에 자리를 잡고 광주출신 작가들이 6개월씩 번갈아 입주해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유럽과 미주의 화랑들이 중국 미술시장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분점을 내는 곳이긴 하지만, 국내 미술관의 창작센터가 해외에 문을 여는 것은 이례적이다. 창작센터 자체의 존재의미가 전혀 다르게 보이는 대목이다. 창작공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작가들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협업과 교류 활동이다. 어디까지나 창작과 향유의 의사소통이 중심이라는 얘기다. 당연하게도 이를 실현하는 데에는 많은 난관이 따른다. 창작스튜디오 2세대들의 협업이 더없이 중요한 때이다. 국제적인 협업뿐만 아니라 우리 간의 협업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지 제공_ 남산예술센터, 서교예술실험센터, 금천예술공장, 인천아트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