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가 시작된 것은 이미 한참 전이었다. 여름부터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의 준비상황이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었던 터라, 열병식을 비롯한 각종 대규모 기념행사에 대한 놀라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연일 TV를 통해 열병식 준비상황이 실황으로 중계되었고, 각종 국경절(國慶節)중화인민공화국 건국기념일을 이르는 말 기념행사를 위해 동원된 수많은 학생 및 일반인들의 참여 소식과 미담은 그날의 헤드라인 뉴스였다. 그야말로 ‘전(全) 인민’이 동원된 국경절 행사를 앞두고 지나친 홍보전에 다소 지겨운 느낌마저 들 무렵, 10월 1일 국경절의 아침이 밝았다.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베이징 거리의 현수막

전날 내린 비로 행사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다소 의문스럽긴 했지만, 다음날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는 그런 의문을 무색케 했다. (현지에선 중국 당국이 날씨 조정을 위해 며칠 전부터 안개를 만들고 9월 30일에 맞추어 비가 내리게 해, 인공적으로 날씨를 조절했다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오고 갔다. 실제로 9월 30일 전후에 베이징시 전역에 안개가 끼었고 국경절 행사 전날 밤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필자를 깨운 것은 화창한 아침 햇살이 아니라, 옆집에서 울려 퍼진 중국 국가 <의용군 행진곡(義勇軍進行曲)> 소리였다.

옆집 아저씨가 목청껏 부르는 노래 소리가 아파트 전 층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또한 크게 틀어 놓은 TV에서도 <의용군 행진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TV로 국경절 기념행사를 볼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사람들이 국가를 따라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아침거리를 사러 나갔던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국경절 기념행사가 생중계되고 있는 TV에 쏠려 있었다. ‘전 인민’의 축제로 광고한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멈춘 듯 모든 이들의 시선이 기념행사로 쏠려 있는 상황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후 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의 열병(閱兵)을 시작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개국 60년 기념식의 막이 올랐다. 국경절 당일에는 톈안먼(天安門)과 톈안먼광장 일대의 출입이 완전히 통제되었기 때문에 기념식 행사를 현장에서 관람할 수는 없었다. 현지 학생들의 전언에 따르면 톈안문 일대의 주민들에게 각각 500위안(元)을 제공하고 행사 전후로 전 주민을 소개(疏開)시켰다고도 하지만, TV로 보는 국경절 기념행사를 통해서 새로운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의 자신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국경절 기간의 텐안먼광장

국경절 기념행사는 그야말로 ‘국력의 향연’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있는 중국은, 1949년 건국 이래 60년 동안 축적해온 국력을 총결산이라도 하듯 개혁개방 이후 자신들이 걸어온 이른바 현대화 노선의 위용을 유감없이 뿜어냈다. 최첨단 무기를 비롯해 과학, 농업, 문화 등 사회 각 부문의 발전을 상징하는 퍼레이드가 약 세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졌다. 중국의 모든 채널을 통해 방영된 국경절 기념행사는 하루 종일 이어졌으며, 후 진타오 국가 주석과 쟝 쩌민(江澤民) 전(前) 주석이 톈안먼광장으로 직접 내려와 인민들과 하나 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그 막을 내렸다.

10월 1일 국경절은 마치 공기와도 같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집집마다 오성홍기(五星紅旗 )가 내걸려 있었고, TV를 비롯한 모든 언론매체에서 국경절 이외의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또한 이른 아침 슈퍼마켓 직원들을 비롯하여 물건을 사러 왔던 주민들 모두 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선 전율이었다. 그들의 뜨거운 애국심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지만 바늘 하나 꽂을 틈 없는 내셔널리즘의 열정은 그것을 넘어설 수 없게 하는 모종의 벽을 느끼게 했다.

다음 날은 건국 60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영화 <졘궈따예(建國大業)>를 관람했다. <졘궈따예>는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리 롄졔(李連杰), 장 쯔이(章子怡), 류 더화(劉德華) 등 유명 연예인을 비롯해 중국의 유명 감독인 펑 샤오강(馮小剛), 천 카이거(陳凱歌), 우 위썬(吳宇森) 등이 대거 출연하여 개봉 전부터 관심이 집중된 건국 60년 기념 영화였다.

베이징대학 백주년기념관에서 영화를 보는 동안 관람객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마오 쩌동(毛澤東, 1893∼1976)의 영도를 중심으로 중국 공산당이 공산 혁명을 이룩하여 마침내 신(新) 중국을 세운다는 내용이었는데, 국민당의 무차별 폭격을 넘어 베이징에 입성한 마오 쩌동이 톈안먼 위에서 사회주의 중국의 건립을 선포하는 장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옆의 아주머니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옆자리 베이징대 학생에게 국경절 소감을 물었다. 영화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탓일까, 그는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국인임이 너무 자랑스럽다. 앞으로 중국은 부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10월 4일은 직접 톈안먼 일대를 밟아 보기로 했다. 이미 국경절이 사흘 정도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으리라 예상하고 집을 나섰다. 쳰먼(前門) 일대의 후통(胡同)주로 베이징 중하층 계층의 서민들이 거주하는 베이징의 좁은 골목을 시작으로 톈안먼광장을 향해 길을 잡았다. 후통에 들어서자 예상했던 대로 집집마다 오성홍기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 쳰먼 앞 광장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인산인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빗나간 예상은 점차 그 강도를 더해 갔는데, 실상 걷기 보다는 떠밀려 다니는 형국이었다. 사람들에 휩쓸려 걷다보니 어느덧 톈안먼광장 앞에 도착해 있었다.

광장으로 들어가려면 일단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검색대 앞에선 라이터를 모두 수거했고, 가방은 엑스레이 검사를 마친 후에야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 광장에 들어서자 국경절 당일에 사용되었던 퍼레이드 차량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선을 붙잡은 것은 관방(官方)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퍼레이드 차량보다 톈안먼광장을 가득 메운 중국인들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하나 같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다니고 있었지만 짜증내거나 화내기 보다는 밝은 표정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인터뷰를 시도한 사람들은 모두 “조국 만세, 중화 인민 공화국 만세”를 외치며 나라의 부강함을 기원하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나라의 기념일을 즐기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사회주의 30년 그리고 포스트 사회주의 30년을 맞이한 인민들의 대체적인 심경과 인식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번이 중국 현지에서 맞는 총 세 번째 국경절이다. 올해 국경절은 60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일까,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성대했다. 작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날로 높아지는 중국의 위상 탓인지 올해 국경절의 모습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한 발 물러나 바라보면 60년을 맞은 중국의 국가 기념일은 제례와 축제 사이에 걸쳐 있는 모습이었다. 금지되었던 것들을 허용하는 것이 축제라면, 허용된 것을 되풀이 하는 의식이 제례이다. 중국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듣는 국경절의 모습은 명확한 허용의 범위 안에서 치러진 축제였고, 그렇다면 그것은 축제라기 보단 제례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국경절 행사가 끝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도 지하철 등에 설치된 광고 화면에서는 10월 1일 기념식 행사의 모습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통제와 관련된 온갖 소문들 그리고 일률적으로 반응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허용된 것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느끼게 했다. 혁명―어찌 보면 혁명은 축제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을 통해 이룩한 국가의 탄생 기념일이 흡사 제례와 같은 분위기에서 치러지고 있다는 역설의 맛, 그 맛의 비법을 찾는 것이 중국을 대면하고 있는 이들의 연구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미지 제공_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