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은 ‘새로운 옷 입히기’가 한창이다. 패션쇼에 선 모델처럼 서울은 화려한 외양의 옷들로 갈아입고 있다. ‘디자인 서울’을 슬로건으로 한 서울시는 2006년부터 도심 활성화를 위한 ‘도심재창조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 이제 그 하나하나가 결실을 맺고 있는 중이다. 청계천 복원을 시작으로 최근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었고 서울시 신(新)청사 시민문화 공간,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 및 녹지 공간 조성,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용산국제업무지구 건설 등은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프로젝트들이다. 이러한 계획들은 서울이 글로벌 시대 중심도시 ‘Soul of Asia’가 되기 위한 미래의 청사진이다.

하지만 패션쇼 장이나 쇼윈도에서 보여주는 옷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구매자의 시선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현재 서울의 도시재생 또한 화려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도시를 체험하며 생활하는 서울시민, 아니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가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서울이 입고 있는 새옷들이 몸에 꼭 맞으면서도 스타일리쉬한 멋을 풍기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서울의 과거, 그 미래의 발견
도시는 집합적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는 무수한 역사의 흐름들이 존재하고 있다. 서울은 600년이 훌쩍 넘은 고도(古都)이다. ‘한양(漢陽)’, ‘한성(漢城)’으로 불렸던 초창기 서울은 유교적 공간화를 꿈꾸는 한편,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를 만들고자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도시를 구획하였다. 중국과 일본의 ‘격자형 도로’와 달리 구불구불한 한양의 도로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채 사람과 자연을 모두 생각하며 계획한 도시 구성체였다. 그야말로 과거 서울은 인간과 자연을 함께 존중하는 휴머니즘이 뿌리 깊이 박혀있는 인문도시였다.

옛서울 세종로


하지만 현재 서울은 근대화의 논리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휴머니즘 도시의 역사적 층위들을 급속하게 지우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전시용 건물들과 인위적인 고층 빌딩들을 그 자리에 대신 앉혔다.

도시의 성형(成形)에는 과거와 미래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 각기 다른 시간대에 다른 의미로 생성된 건축물과 공간이 공존해야만 비로소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공간 속에 시간을 드러내는 도시야말로 그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은 ‘과거 만들기’가 한창이다. 광화문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 복구되고 광화문 앞 육조거리는 조선시대 한양의 모습처럼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광장으로 복원되었다. 과거의 기억을 최대한 동원하여 서울의 ‘과거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울은 ‘미래 만들기’도 한창이다. 하지만 그 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과거’를 허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육조거리만큼이나 서울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던 피맛골의 재개발이다. 피맛골은 종로 1가에서 종로 6가 일대 총 3.1㎞에 걸쳐 형성된 비좁은 골목길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도성길 행차를 피해 접어들었던 그들만의 작은 해방공간이었다. 더구나 그 문화적 전통이 유지되어 6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던 타임슬립(time sleep)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피맛골은 개발계획에 의해 이미 일부가 철거되는 등 순식간에 정체성이 허물어진 기억 저편의 공간이 되었다.

이처럼 광화문 복원과 육조거리 앞 광장 재생과 피맛골 재개발은 그 양상이 아이러니컬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만들기’와 ‘허물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서울의 도시재생이 무엇을 근본이념으로 추구하고 있는지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오늘날 서울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축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음에도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과 개발논리로 인해 흔들리는 양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도시를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다. 도시에 필요한 것은 오히려 과거를 상상하는 것, 더 나아가 과거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이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는, 복잡한 현대도시의 치유과정이다. 도시의 미래는 도시 속에서 시간을 역류하고 반추하면서 진정한 삶의 모습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거대 고층 건물만이 덩그러니 서있는 곳이 도시는 아니다.

피맛골                                                                                          복원된 광화문 광장

청계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 현장

인문적 도시 만들기, 그 열린 가능성
서울의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서 반드시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은 옛 모습이 현대와 어울리지 않아 잘못 입은 양복처럼 자칫 촌스럽고 어색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두바이의 모습처럼 나르시스적 감성과 시각만을 자극하는 고층군의 서울도 아니다. 지금까지 서울의 도시개발은 인간을 위한다는 표면적 이유를 내세웠지만 개발의 논리에 의해서 철저히 인문적 요소들이 파괴되었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도시를 채우는 작업에만 치중하였다. 그 결과 도시 간 양극화가 심해졌고 사람들의 심성은 더욱 피폐해져 갔다.

도시재개발이 한창인 인천은 어떠한가. 송도, 청라, 영종 등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신시가지 개발이 한창이며, 이곳에는 151층의 송도타워, 69층의 동북아트레이드타워, 77층 타워 등 고층 건물이 도시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세워지고 있다. 이러한 인천시의 거대 공룡 프로젝트들은 자칫 도시의 이미지만을 지나치게 추구하여 ‘정신적 집합체’로서의 도시가 아닌 ‘물질적 집합체’의 보여주기식 도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제 우리의 도시들은 시민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조금은 불편해도 사람 사는 냄새나는 공간, 인간의 심성을 자극하여 더욱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그래서 도시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인문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도시 속에 서로의 가치를 올려주는 열린 공동체적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인천, 부산 등의 대도시들도 세계도시를 꿈꾸며 도시재생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복잡한 도시 공간을 비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차없는 거리, 광장, 생태공원 등으로 말이다. 도시를 시민들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분명 인문도시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몸부림이다.

삶의 가치와 의미가 깃들어 있는 공간, 인간에 의해 창출되고 인간의 주체성이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도시의 긍정적 가능성을 읽어내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오늘날 거대화, 공룡화 되어가는 도시 집합체에 한 가닥 긍정적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문도시의 긍정성을 서울을 비롯한 인천, 부산 등 여러 도시에 극대화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미래 도시의 모습을 새롭게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