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개혁개방이 중국사회 발전의 전환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빠링허우(八零后)’, 즉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당시 변혁의 소용돌이로 새롭게 형성된 환경 속에서 성장해 왔다. 따라서 빠링허우 세대들은 소위 ‘개성’이라고 일컫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제1세대 소황제(小皇帝)라고 불릴 정도로 이는 이제 고정된 개념으로 굳어졌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토대로 출간된 『개미족(蟻族)』은 현재 중국 내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는 책이다. 가장 큰 특징은 리서치를 통해 현 실상을 파악했다는 점이다. 또한 롄스 역시 빠링허우 세대의 고학력자 출신이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팀원들 대부분 빠링허우 세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서치팀은 베이징 내에 개미족이 주로 집거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직접적인 접촉과 현지 인터뷰 등을 통해 그들의 인생역정, 성장과정 및 일상사를 담아냈다. 형식적으로 이 책은 사회학적 보고서의 전형적인 성격을 띄고 있지만 이에 대해 엮은이 롄 스(廉思)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 책은 학술논문이 아니라, 개미족에 관한 연구 과정을 담은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청년 실업자들을 왜 개미족이라고 지칭하는가. 개미족은 대부분 타지 출신의 빠링허우 대학 졸업자들로 비록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수입이 적은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부지런하고 지능도 높은데다 집단으로 서식하는 개미의 습성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신조어다. 한국의 ‘88만원 세대’, 일본의 ‘네트카페 난민’, 유럽의 ‘700유로 세대’와 유사하다. 책에는 일련의 사회학적 개념 문제를 비롯하여, 저자가 개미족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 문제의식 및 조사 진행방식 등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삽입된 도표, 사진 및 통계수치 등도 이해를 돕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현재 개미족의 실상을 뒷받침하기 충분하다. 비교적 많은 편폭을 할애하여 그들의 일상을 서술하고 있지만, 성공과 출세의 상징, 자부심으로 대표되는 수도 베이징에 대한 환상을 품고 상경한 개미족에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들은 도심 속에서도 비교적 낙후된 곳에 살고 있으며, 기본적인 생활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대학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꿈꾸는 이상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판매원, 식당 종업원, 일용직 등 일반적인 취업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이들은 최대한 절약해서 살아간다. 간신히 배만 채울 정도의 낮은 월급, 비정규직, 사회적 지위의 상실 등 어두운 현실 속에서 이들의 미래는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롄 스는 이 책을 통해 빠링허우 세대가 처해 있는 불황시대와 취업난이라는 중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동시에 이들의 대한 여론과 사회 구성원들의 부단한 관심의 필요성도 피력하고 있다. 국가를 막론하고 개인과 사회 양자 간에는 보이지 않는 소통의 장벽과 사회적 폐단이 존재하지만 물질 만능주의와 경쟁 중심의 분위기 속에 인간 소외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팽배와 글로벌 경제위기 하의 청년 실업시대, 비상하는 중국도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세계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문제들은 중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개미족은 중국의 현 양상을 반영하고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중국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불균형을 별로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중국사회는 빠링허우에 대한 기존의 편견에 사로잡혀 그들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하거나 혹은 불안정한 경제 시국에 모든 탓을 돌리려고 한다. 같은 세대의 입장에서 중국 청년들이 처한 암담한 현실에 무기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개미족이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대상은 당장의 취업난이나 생활고가 아닌 사회의 냉정한 시선이 아닐까 싶다. 벌거벗은 그들에게 올해도 잔인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일상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있어 소위 이십대의 열정과 청춘의 힘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힘겨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밑거름이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꿈은 여전히 빛나고 있으며, 이들은 오늘도 한 줄기의 희망을 향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광시사범대출판사 l 2009

韓知延 1982년 부산생. 베이징대 중문과 박사과정. 최근 논문으로 「궈 모뤄의 한인 소재 작품 연구」 등. ad203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