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관련한 논의는 표면적으로 논의의 스케일 혹은 논점이 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그러한 관념의 축조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속칭 물건, 즉 작품이다. 가끔 예술에 대한 열띤 토론이 막을 내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들 때가 있는데 그것은 마치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바라보고 있는 심정과도 같다. 이른바 관념을 작품으로 축조하지 않은 경우다. 이런 형상은 대체로 창작자들에게서 일어나기 마련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콘크리트 먼지를 들이킨 듯 기침하며 이렇게 말하곤 하는 것이다―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 작품으로 말하려는 한 무리의 작가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위와 같은 논의의 붕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점을 제외하더라도 이들의 목소리에 특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는 희곡이 본업이 아닌 작가들이 희곡에 대해 희곡으로 말하는 작품집이다. 차라리 『시란 무엇인가』나 『소설에 관하여』였다면 모를까. 이를테면 적어도 이들의 논의란 『희곡이란 무엇인가』 혹은 『희곡에 관하여』와 같은 형태는 아닌 것이다. 저마다의 대사와 지문 그리고 여백으로 때로는 진지하게 또는 유머러스하게 희곡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개해 나간다. 그런데 이들의 물건은 각각의 풍모가 어딘지 익숙하다.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연장선의 개념으로 상정하는 작가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그리 주목할 만한 지점은 아니다. 또한 여기서는 장르 역시 주된 초점이 아닌데, 말하자면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의 특징은 희곡이라는 장르로부터 연유하며, 이에 따르는 질문은 그래서 단순하고 본질적이다.
왜 희곡인가. 선택은 작가 개인의 몫이지만 선택의 근거는 사회적으로 도출되기 마련이다.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에 참여한 작가들의 기본적인 취지는 희곡에 대한 애정 혹은 자기 표현 영역의 확장이지만 문제는 그러한 움직임이 차츰 지속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장정일과 김경주가 기획한 이번 작품집에 이어 황지우, 김정환, 김연수 등이 동일한 시리즈의 차기 작품집을 준비 중이며, 이후로도 이러한 작가들의 희곡 시리즈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비단 산문과 운문의 결합이라는 글쓰기로서의 본래적 매력만이 현재 국내를 대표하는 문제적 작가들을 희곡으로 끌어들인 까닭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현대 예술의 특징 중 하나인 장르 허물기가 단순히 장르라는 특성의 한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희곡이 새롭게 창출된 장르가 아니라는 점은 이들의 작업을 더욱 관심 깊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시, 왜 희곡인가.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의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이 질문에 대해 마치 논의의 구성이라도 분담한 듯 체계적으로 답하고 있다. 하일지의 뼈아픈 주제의식과 정영문의 문제적 언어유희,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서준환의 독창적인 감각과 김경주의 상상력―이것은 두 말할 나위없는 희곡의 기본적 특성이자, 이들이 희곡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무엇이었으리라. 다만 한 발 더 나아가 무대상연을 전제로 한다는 희곡의 존재근거를 감안한다면, 이들의 작업을 비롯한 일련의,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들로부터 문학이라는 표현양식 혹은 작가들의 의식을 수용자들에게 보다 전면적으로 표출하려는 뉘앙스를 느낄 수 있으리라. 마냥 부정하기엔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의 태도가 배우가 관객을 대하는 방식만큼이나 적극적인 까닭이다. 아니면 오히려 텍스트로서의 희곡에 대한 가치를 제고하자는 목적인가.
그러나 증명은 이들의 몫이자 시간의 몫이다. 이들의 논의는 앞으로도 작품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논의의 붕괴 위험은 줄어들기 마련일진대, 그 전개양상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선예술 후담론과 선담론 후예술을 공시적으로 만든 이들의 논의 속에서 희곡은 또 다른 가능성을 내포할 것이다. 보다 치열해진다면 논의의 붕괴나 축조가 아닌 혼란이 찾아올 테지만 그럴수록 질문은 더욱 단순하고 견고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왜 희곡인가. 이에 대한 카오스가 희곡이 지닐 가능성의 전제인 셈이다. 그것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쟁점이 되어야 한다. 대저 예술이란 그러한 혼란의 진원인 까닭이며, 그리하여 내심은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가 이를 위한 기폭장치로 작동하기를 잠잠히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