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음악회 <조선을 노래하다> 공연이 있던 날,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로 한 겨울의 추운 날씨를 잊을 수 있었다. 이 낭독음악회에는 행사 관계자, 학생 그리고 일반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번 공연은 무료였고 선착순으로 전화 예약을 받아 진행되었다.

이번 공연은 기존의 공보문화원에서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우선 이 공연의 기획과 주체를 ‘간삼파트너스’라고 하는 한국의 종합건축사무소가 담당했다. 이 공연은 동아일보, 서울재팬클럽,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의 후원으로 개최되었으며, 1920년대 한국을 사랑한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와 그의 부인 성악가 야나기 가네코(柳兼子, 1892~1984)가 서울에서 열었던 음악회를 재현하는 무대였다.

메조소프라노 김신자 씨가 야나기 가네코 역을, 『야나기 가네코, 조선을 노래하다』(2009)의 저자인 다고 기치로(多胡吉郞) 씨가 야나기 무네요시 역을, 그리고 가수 유열씨와 간삼파트너스 홍보팀 실장 윤재혁 씨가 남궁벽(南宮璧, 1895~1922) 역을 맡았다. 낭독음악회는 1시간 남짓 이어졌다. 이날 공연은 야나기 가네코가 192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 현 서울에서 공연했던 프로그램을 재현한 것이다. 그 내용은 앙부르아즈 토마(Ambroise Thomas, 1811~1896)의 오페라 <미뇽Mignon>(1866) 중에서 가극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나라를Connais-tu le Pay>부터 야마다 고사쿠(山田耕筰, 1886~1965)의 <탱자나무 꽃(からたちの花)>(1925)야나기 가네코가 1968년 한국 방문 시 이화여대 강당에서 공연했을 때 불렀던 곡에 이르기까지 총 11곡의 가곡을 부르고 그 중간 중간에 야나기 무네요시와 남궁벽의 글을 낭독하는 방식이었다.

무대의 주인공 야나기 가네코는 조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통해 조선을 알게 되었고 3·1운동의 좌절로 인해 희망을 잃은 조선 사람들에게 노래를 통하여 사랑을 전하고자 했다고 한다. 조선 측에서도 시인 남궁벽을 필두로 하는 동인지 <폐허>의 멤버들이 야나기 부부의 뜻에 공감하고 예술을 통하여 재생을 소망하고자 하는 자리에 동참했다. 그녀의 노래는 조선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조선인과 일본인 모두가 기적 같이 사랑과 우정의 손을 내밀게 해 주었으며,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에 메아리쳤다고 한다. 1920년대의 야나기 가네코 독창회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당시의 사랑과 우정을 다시 느끼게끔 해주는 낭독음악회가 이번에 실현되게 되었다.

야나기 무네요시 연구자인 필자에게 이번 낭독음악회는 대단히 가슴 벅차고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이 날 공연에서 낭독되었던 남궁벽이 1921년 3월 5일에 쓴 일기에서 “음악은 사람을 숭고하고 존귀하게 만든다”라는 말처럼 당시 나라를 잃고 상심해있던 많은 조선인들의 가슴에 메아리쳤으리라 상상해 보았다. 조국을 잃고 상심에 빠져있던 많은 조선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존귀하다고 느끼게 해 준 야나기 가네코의 음악회에 많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모여 든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그녀의 예술 활동이 당시 조선총독부가 실시했던 고도의 식민지 통치인 문화정책이었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인 현실은 일시적인 것이고, 예술적으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때 양국 간의 우정은 돈독해진다”라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야나기 무네요시는 평생 비정치적인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낭독음악회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음악을 통한 한일문화교류의 가능성이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교류한다면 멀지 않은 시간에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나라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문화교류 프로그램이 한일 간에 만들어져 운영되었으면 한다. 그 결과 서로가 국경과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번 공연이 그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고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