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삼국지』가 들어온 것은 적어도 조선 선조(宣祖, 재위 1567~1608)의 집권을 전후한 시기인 듯하다. 『선조실록』에는 『삼국지』를 두고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말이 매우 많다”고 한 기록이 있다. 물론 이 때의 『삼국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설 『삼국지』다. 소설 『삼국지』,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는,  지금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 명(明) 홍치(弘治) 년간인 1494년에 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소설 『삼국지』는 간행된 지 백 년이 못되어 우리에게 들어와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진수(陳壽, 233~297)가 쓴 역사서 『삼국지』는 물론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로부터 소설, 연극, 영화, 드라마, 게임에 이르기까지 천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삼국지 이야기는 다양한 장르로 전환(adaptation), 전승되어 오고 있다.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허우범의 『삼국지 기행』은 삼국지 이야기의 전환에 새로운 장르를 더하고 있다. 지은이는 역사와 소설 장르로서의 삼국지를 근간으로 삼아 이야기가 펼쳐졌던 땅과 길, 산과 강을 직접 누비면서 그 옛날 삼국지를 오늘날 우리의 것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도대체 삼국지의 무엇이 이와 같은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일까? 보편성과 구체성을 아우르는 인간 삶의 스펙터클이 그 안에 있다는 진단만으로는 진부하다. 더하여 우리 사회에서 삼국지가 유통되는 방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삼국지 열풍은 대입 논술고사와 무관치 않은 상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더불어 이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기제들, 즉 작가, 출판, 광고 등의 기제가 삼국지를 움직이지 않는 정전으로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삼국지 이야기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오늘날의 텍스트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욕망의 이면에는 본질적인 삼국지에 대한 어떤 그리움. 즉 ‘상상(想像)’이 있다. 그리하여 지은이가 말하고 있는 대로 “‘삼국지 기행’이 만나는 유적들은”, “역사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그리고 허구적인 유적과 유물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허구적 대상에 ‘실재’를 투영하고 싶은 욕망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허구와 실재가 혼재된 흔적의 물화를 통해서 우리는 본질적인 삼국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하지만 본질적인 삼국지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 『삼국지』는 그 자체가 허구다. 역사서 『삼국지』도 완전한 순도의 사실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삼국지 기』이 반증하고 있는 것처럼 삼국지는 수천 년이 넘는 시간을 흘러오면서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왔다. 그 재구성 과정 안의 허구의 세계, 상상의 세계는 말 그대로 우리가 그리워하고자 하는 무엇을 만들어낸다.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하는 욕망들이 거기에 있다. 아무리 실재하는 땅과 길을 확인하고 산과 강을 넘는다 해도 그것들이 이미 천 년 전의 그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발자취’, 즉 흔적의 물화, 흔적의 실재화, 흔적의 본질화를 통해 재구성되는 삼국지는 단지 시공을 초월하는 차이만을 고증하는 작업에 머무르지 못한다.

물론 때로는 오늘과 옛날, 여기와 그곳을 명징하게 나누고자 하는 인식의 경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식의 경계는 자주 뒤섞이고 모호해진다. 영웅에 대한 기대, 리더에 대한 희망, 더불어 민심이 천심이라는 상이한 이데올로기들이 얽혀 있는 허우범의 『삼국지 기행』은 여전히 삼국지가 우리 삶의 복잡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가 우리에게 재구성되는 과정에 얽혀 들어 있는 다양한 맥락적 기제들에 대한 의식적 경계(警戒) 또한 놓칠 수 없는 일이다.

[삼국지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