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展>은 소나무를 위시하여 한국의 자연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담아온 배병우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전시다.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소나무와 전남 신안지역의 섬, 제주도 오름 등 국내의 자연을 비롯하여 창덕궁 후원(後苑)과 스페인 알함브라(Alhambra) 궁전 사진을 두루 망라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작가적 위상과 국제적 명성을 드높이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소나무> 연작을 비롯하여 한국의 자연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후속작업의 방향 설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 연작은 부분적으로는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오랜 고민과 관심이 표출되어 나타난 결과물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갖는 상징성과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흑백의 농담 표현, 병풍의 형태로 보여주는 전시 형태가 그렇다. 소나무 둥치와 껍질을 감싸고 있는 묵직한 톤은 소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하늘의 담채와 대조를 이루고, 새벽녘의 엷은 안개는 농밀한 대기와 섞여 수묵화가 묘사해왔던 한국의 자연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법은 제주도 오름이나 남도지방 섬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으로 작가의 예술관을 규정하기는 어렵다. 지역이나 장소가 출발지점은 될 수 있어도 예술행위를 이끌어나가는 추동력이 되기에는 좁고 답답한 것이다. 오히려 그의 예술관은 자연에 대한 관조 혹은 명상에 가깝다. 그것은 다시 그의 세계관이 된다. 자연이야말로 모든 것의 근원이다. 자연에는 모든 것이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며, 자연을 보고 배우며 성장한다. 자연에 역행하는 속성 또한 자연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진이 담아낸 자연 속에는 그야말로 인간의 모든 것이 있다. 평온한 바다도 있고 불투명한 대기 속에 자취를 감추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도 있다. 서로 조화를 이룬 소나무들도 있고 동족을 가로막으며 거칠게 튀어나온 난폭한 놈도 있다. 배려와 존중이 있는 한편 경쟁과 질시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자연에서 인간을 본다. 오래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자연에 대한 관조에서 출발한 그의 명상은 다시 자연과 인공의 조화, 요컨대 인간의 세계에 들어온 자연으로 사색을 옮겨간다. 인간의 세계와 무관한 자연이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창덕궁 후원 작업은 이러한 관심의 결과물이다. 조선의 궁궐 중 자연과의 조화가 가장 잘 이루어졌다고 알려진 창덕궁 후원에 천착하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만으로는 살지 못한다. 문명사의 진행방향 또한 자연에서 벗어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최소한의 활동조차도 자연과의 갈등을 부르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제 아무리 자연친화적인 환경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조성한 것이라면 거기에는 이미 자연의 훼손이 있다. 이를 피해갈 수는 없다. 관건은 훼손을 어느만큼 최소화하여 공존하느냐에 있다. 자연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인간의 삶 속에 이식시켜 낸 자연, 요컨대 인공 속으로 들어온 자연 또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창덕궁 후원에서 작가가 찾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조화의 아름다움이다.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 작업 역시 이러한 관심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서양문명 가운데 자연과의 조화를 가장 훌륭히 이루어낸 정원으로 알려진 알함브라 궁전은 그런 면에서 창덕궁과 닮은꼴이다. 어쩌면 인간다운 자연은 야생 상태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그런 자연인지도 모른다. 이 두 편의 작업은 그렇게 자연에 대한 관조적 시선이 확장되어 나가는 모습일 것이다.

배병우,(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