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성이나, 그 남성을 지배하는 것은 여성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는 사회를 이루고 사는 구성원들의 논리를 조율하는 정치는 일단 남성의 몫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인류가 집단을 이루며 산 이래로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남성은 태생적으로 사회의 서열을 파악하고 그 정점에 서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 성향 때문에 정치란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때문에 현실에서도 혹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 욕망의 측면에서도 정치란 어디까지나 남성적인 ‘무엇’일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반영 혹은 욕망의 반영이라고 보는 TV드라마에서도 이는 다르지 않았다. 정치를 극의 중심에 끌어 놓는 드라마는 대개 남성적 색채가 강한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드라마에서 여성은 드라마를 꾸미는 도구, 하나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유일한 약점 혹은 남자를 움직이려는 팜므파탈(femme fatale) 그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정치를 남성의 전유물로 다루었던 TV드라마가 여성들을 극의 최전방으로 끌어다 놓고 있다. <장희빈>(KBS2, 2002~2003)이나 <명성황후>(KBS2, 2001~2002) 혹은 <황진이>(KBS2, 2006) 같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남성 영웅 드라마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던 정통 사극조차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정치 영웅 서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들을 정치이야기에 끌어들이면서 TV드라마는 어떤 판타지를 구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는 단순히 여권 신장의 논리로도 혹은 ‘알파걸’엘리트 집단의 여성 열풍의 일부로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욕망하는 것인가.

 
MBC의 <선덕여왕>(2009)은 대표적인 여성 중심의 영웅 사극이다. 주인공 선덕여왕(덕만)이요원 분은 물론이고 그와 정치적 라이벌인 미실 또한 여성으로 자신의 정치력을 행사하고 권력의 정점에서 고군분투한다. 물론 <선덕여왕> 이전에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여성을 그린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천추태후>(KBS2, 2009)나 <명성황후>의 여주인공들이 남성들의 정치 무대에서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발휘하고 최고에 가까운 권력을 지녔었다는 점에서는 <선덕여왕>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천추태후>와 <명성황후>의 여성들은 왕이라는 최고 권력자가 아니었고, 또한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선덕여왕>은 거의 유일한 여성 정치 영웅 서사라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극 초반에 주인공인 덕만의 모습과 행동에서 여성 영웅에게 기대되는 특유의 매력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덕만의 영웅적 성장담을 강조하기 위해 활용한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자신의 신분을 모른 채 예언의 희생자가 되었고, 공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모른 채 남자행세를 하며 어렵게 살아간다’는 설정은 시작부터 여성 정치가 특유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덕만이 여성성을 포기한 대신 영웅으로서의 기반을 닦기 위한 장치로 활용됐다. 훗날 덕만은 우연히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쌍둥이 언니 천명박예진 분이 자신으로 비롯된 사건에 휘말려 죽게 되자 공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신분을 되찾아 왕이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덕만의 어린 시절은 그의 이미지를 여성 영웅의 모습보다 남성과 다름없는 성향을 지녔지만 성별만 ‘여성’인 모습으로 규정하게 했다. 자신의 여성성을 적극 활용하는 미실과 달리 덕만은 중성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여기에는 주인공 덕만의 여성이라는 성별이 훗날 그의 성공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식으로 보이게 하는 약점 또한 존재한다. 공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보호받고, 사랑받기보다는 남성적인 모습으로 자라났다는 점, 출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남장을 하고 낭도로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덕만의 성별이 그저 장식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여성을 영웅 서사의 전면으로 끌어오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녀의 모습이 남성적 리더십과 다르지 않다면 여성 정치 영웅 사극의 의미는 퇴색하고 마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기도 한다. 때문인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더 주목받는 것은 미실고현정 분이다. 미실은 정치력의 한 수단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진흥왕이순재 분의 후궁으로서 그녀가 쥐었던 권력은 상당하다. 그리고 한때 화랑의 여자 수장인 원화(源花)로 또 새주(璽主)로서 그녀가 자리했던 것에는 남편과 동생, 자식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치밀한 계산과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함께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이런 미실에 비해 여성적 매력보다는 중성적이고 전형적인 남성 영웅의 캐릭터를 따라가고 있는 덕만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새롭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미실과 덕만의 모습을 벗어나, 그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는 방식은 조금 다른 형식을 띄고 있다. 미실은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한다. 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들, 동생조차 정치적으로 필요가 없어진다면 비정한 방식으로 버린다. 힘이 있거나 혹은 가능성이 있는 자는 적극 끌어들이되, 반대의 경우라면 그것이 누구라 하더라도 가차 없이 희생시켜 온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서기 위한 정치 논리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자신을 둘러싼 가장 기본적인 관계인 가족조차 보호하기보다 개인의 욕망을 위해 휘두른다. 미실의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성애를 지닌 여성의 모습과 위배되는 행태다. 왕후가 되기 위해 진지왕임호 분의 아이를 낳지만 진지왕이 배신하자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아이를 버리는 모습은 보편적으로 여성에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미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다는 면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준다고 하기 힘들다. 미실이야 말로 생물학적 여성일 뿐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 없는 것은 가차 없이 버리는 전형적인 남성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충성을 바치는 자에게 기회를 주고, 정치적 결단 앞에서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허용치 않는 것이다.

 반면 덕만의 경우는 겉으로는 남성적인 영웅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보여주는 리더십의 형태는 전혀 다르다. 덕만은 미실과 달리 철저히 감정적인 면에 의존한다. 엄마라고 믿었던 소화서영희 분가 죽고 난 뒤 출생의 비밀을 찾아 나서는 덕만은 매 과정이 정치적, 논리적 계산보다 본능이나 감정이 앞서는 모습을 보인다. 낭도로서 백제와 전쟁을 치를 때에도 철저히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부상을 당한 알천랑이승효 분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려 할 때 덕만은 ‘다수가 살기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이성적 계산이 아닌 ‘모두가 살아야 한다’는 감정적인 명분을 선택했다. 뿐만 아니라 덕만이 여자 쌍둥이 중 한 명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도망가려 했다가 천명이 죽고 난 뒤 공주로서의 신분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 또한 분노로부터 시작된 감정적 결정이다. 덕만의 이러한 감정적 결정은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타인들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실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부분이다. 덕만은 정치적 욕망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기보다는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능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단적으로 덕만은 키워준 엄마(소화)와 친구를 지키기 위해 죽을 사(死)가 적힌 장기알을 삼켰고, 자신에게 얽힌 출생의 비밀-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을 알기 위해 신라로 돌아왔다. 덕만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 동료를 지키고자 하는 이러한 감정적 결정들로 인해 왕이 되는 것이지 왕이라는 권력 자체를 동경하지는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나라를 이끌어 ‘백성들을 잘 살도록 하겠다’는 대의적 명분도 (아직) 없다. 권력 그 자체를 지향하고 동경하는 남성적 리더십에 비해, 관계를 중요시 하고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한 여성적 리더십의 형태는 이렇게 갈라지게 된다.

드라마에서 이러한 덕만의 감정적 결정은 권력을 위해 어떠한 수단도 서슴지 않는 미실에 비해 훨씬 따뜻한 것으로 비춰진다. 이는 일반적인 모성의 기준과 흡사한 듯 보인다. 자식과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행동하는 방식은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 감성적 결정의 힘이다. 또한 철저하게 계산된 정치적 결정은 때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들에게 해가 될 경우 도덕적인 비난을 감수해야 하지만, 여성이 보여주는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모성은 도덕적으로 크게 결함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덕만이 보여주는 여성의 리더십은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약하다거나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혹은 대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릴 수 있는 것이 남성적 리더십이라면 반대로 자식이나 가족이라면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끌어안는 것이 여성적 혹은 모성적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트렌디 혹은 멜로드라마를 표방했지만 정치적 의미를 적지 않게 전달했던 드라마 <시티홀>(SBS, 2009)도 여성을 정치 서사의 전면으로 끌고 들어온 드라마였다. 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여주인공을 그렸던 <시티홀>은 현대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형태였다.

시장실의 말단 비서였던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 분가 우연히 미인대회에서 우승하고, 이후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시티홀>의 기본 틀은 ‘캔디형 여주인공’과 그녀를 구원하는 ‘왕자님’이 등장하는 트렌디 멜로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현실 정치를 꼬집으며 신미래라는 여자 시장의 정치 활동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태생적으로 영웅의 운명을 타고 났으며, 왕이 될 수 있는 성골의 조건을 갖춘 덕만과 10급 공무원인 신미래를 주인공으로 한 두 드라마는 기본 배경과 이야기 진행 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주인공 두 사람이 추구한 정치 방식은 비슷하다.

신미래는 기본적으로 정치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상은 갖고 있지만 애초에 정치에 뜻을 둔 것도 욕망을 갖고 있지도 않은 인물이다. 때문에 10급 공무원에서 시장이 되는 신미래의 결정은 정치적 대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 인물들을 지키기 위한 과정들로부터 시작된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빚을 대신 갚기 위해 상금을 노리고 나간 미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녀는 약속된 상금을 받지 못하자 분노하게 되고, 이후에 이 일과 관련해 이웃들이 피해를 입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정치적 이해관계 속으로 휘말려 든다. 그리고 그 이웃과 가족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그녀는 정치적인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들과 맞닥뜨린다.

신미래의 정치 활동은 <선덕여왕>의 덕만처럼 지극히 감정적이고 관계 중심적이다. 덕만이 가족을 지키고, 언니 대신 복수를 하기 위해 왕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처럼 신미래 역시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가족과 이웃, 친구, 그리고 애인을 위해 시장 출마를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시장이 되어서도 그녀는 정치적 논리를 우선하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지켜야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자신과 함께 살았던 이웃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과 관련한 것들을 안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권력과 그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소위 대의-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과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안정은 발전과 반대되는 의미는 아니며, 단지 대의라는 추상적 가치를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고 안정을 취한다는 뜻이다. 시장으로서 그녀의 정치 활동 또한 맥락은 다르지 않다. 애초에 정치에 대한 뚜렷한 목적 없이 시장이 되기는 했으나, 신미래의 움직임은 권력이나 권위를 향하기보다 안정과 포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신미래의 정치적 참모들은 능력이나 쓸모에 의한 것이 아닌 관계에 의해 맺어진 이들이고, 신미래는 그것을 기반으로 리더십을 형성해 나간다.

그러나 신미래의 정치적 조언자이자 연인인 조국차승원 분은 끊임없이 정치적 논리에 대해 조언하고, 관계와 감정을 배제한 계산적인 현실 정치를 요구한다. 조국이 이야기하는 것은 권력 지향적인 전형적인 현실의 ‘정치’다. 부자 관계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상황은 <선덕여왕>의 미실이 보여주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곧 약한 자 혹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자는 그것이 가족이나 친구라 하더라도 내쳐야 하는 잔혹한 남성 리더십의 논리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사극 <선덕여왕>의 미실부터 현대물 <시티홀>의 조국까지 어렵지 않게 연결된다.

이러한 현실 정치를 바탕으로 신미래는 덕만과 마찬가지로 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감정을 우선시 하는 여성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자식의 약점을 끌어안고, 관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성적인 리더십인 셈이다. 물론 때로 이들도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분열을 조장하거나 혹은 정치적 계산을 바탕에 두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상황에 따른 잠시의 판단일 뿐 덕만과 신미래는 ‘관계와 감정’을 중시하는 리더십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덕만과 신미래라는 여성들이 보여주는 리더십을 특별하게 ‘모성적’ 혹은 ‘여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전의 사극이나 현대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궁을 배경으로 한 사극의 경우, 그 배경이 대부분 조선시대였으며 그 시대에는 여성이 태생적으로 최고 권력을 쥘 수 없는 구조였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정치적 활동 자체가 제약된 시대였다. 해서 대부분의 사극에서 권력을 가진 여성들의 활동 반경은 배우자를 통해 자신의 정치력을 확장하는 방법뿐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희빈>이다. 그는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왕비에 오르고 당파 정치에 개입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남성들이 지배하는 정치 논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덕여왕>의 미실과 같은 방법으로 냉혹한 정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었다. 물론 미실의 경우 좀 더 자신을 전면적으로 드러내 정체성을 부각시키고 다양한 면에서 넓은 안목을 보여주지만 근본적으로 미실이나 장희빈이 보여주고 있는 리더십의 형태는 잔혹하고 다소 폭력적인 형태 그대로의 남성적인 ‘무엇’이다. 그것은 <명성황후> 역시 다르지 않다. 명성황후 역시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반목하며 고종을 움직여 정치력을 펼쳤고, 외교 전략 면에서도 철저한 논리적 계산에 따라 일본과 러시아를 오가며 균형점을 찾고자 했다. 권력을 가진 배우자에게 의존했기에 남성적인 형태의 정치력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고, 남성적인 정치의 세계에서 남성보다 더욱 냉혹한 정치 논리를 펼쳐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이전까지 여성들을 정치의 한 축으로 내세운 사극에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발휘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남성적 리더십이 지배하는 정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들보다 더 강력한 방식의 리더십으로 그들 위에 섰거나 혹은 여성성을 이용해 남성들을 움직여 정치력을 펼친 것일 뿐,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리더십을 펼쳐 보인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의 경우는 사극에 비해 여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정치 드라마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정치 드라마의 대부분은 남성들이 주인공이었으며, 여주인공들은 대개 남성들의 보조자로서 존재했을 뿐이었다. 현대물에 이르러서는 정치나 사회 권력의 중심에서 여성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더욱 힘들다. 설령 조역으로는 있었다 하더라도, 드라마의 중심축을 담당할 만큼 강력한 캐릭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현대물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정치적이거나 권력 지향적이기보다는 관계 중심적이었고, 특히 그 가운데에서 자아정체성을 찾는 데 중심을 두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선덕여왕>의 덕만과 <시티홀>의 신미래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드라마 장르 자체로도 신선하지만 새로운 여성형 리더십을 지닌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맥락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보여주고 있는 관계와 감정을 우선시하는 리더십의 형태에 대해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낼 수는 없다. 정치와 외교는 주고받음이 서로의 필요에 정확히 맞을 때 적절한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고, 그 이성적이고 계산된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을 때 평화 역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계산적이고 잔혹한 정치 논리에는 그 논리에 앞서 있어야 할 정치적 목적이나 그 목적 안에 올바름이 결여된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현실 정치의 경우에는 그 경우가 더 많았다. 주었을 때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정치적 계산 그리고 주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무엇’에만 권력이 집중되게 되면, 힘의 균형으로 유지되는 평화보다 권력 그 자체를 향한 삐뚤어진 욕망으로 많은 사람이 다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때문에 계산에 우선하는 정치 논리는 약자와 필요 없어진 자들을 버리게 하고, 타인을 밟고 올라서기 위해 평화를 깨트리게 하는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 그것이 현실의 정치라고 자위하기에는 그 결과들이 때로는 참혹하고 서로 다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는 그 정치적 논리와 계산에 앞서 목적과 원칙에 우선해야 하는 것이고, 그 논리와 목적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정치 논리와 목적의 기본은 자신의 안위나 대의라는 추상적 관념을 위해 타인을 포악하게 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서로 사람다운 관계를 맺고 평화롭게 서로의 감정을 다독이며 살기 위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선덕여왕>의 덕만과 <시티홀>의 신미래가 보여주고 있는 여성적 리더십의 정체는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해 안정을 갈구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진취적으로 나아가 상대를 밟고 올라서서 성장하는 방식이나 철저한 계산을 통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은 아닐지 모르나, 적어도 모두가 양보하여 크게 다치는 사람 없이 울타리를 지켜가는 방향인 것은 맞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완벽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기존 현실의 잔혹한 정치 논리와는 달리 삐뚤어지지 않은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 또한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이렇게 두 드라마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여성의 리더십이 보여주는 것이나, 그것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는 데는 현실의 정치가 그만큼 잔혹하고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잠깐의 실수나 호흡을 놓치는 것만으로도 다시 올라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현실 사회에서 실수하거나  다쳐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챙겨줄 엄마와 같은 사회를 사람들은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위로 돌아가는 사회의 정치 논리 속에서 사람들은 지쳤기 때문에 도망치거나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텨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이 드라마를 통해 판타지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물론 드라마를 통해 나타나는 여성적 리더십의 실체는 없다. 그리고 이미 거대한 사회에서 관계와 감정을 중시하는 덕만과 신미래의 리더십은 드라마이기에 판타지로서 존재 가능한 것일 뿐 현실의 정치는 미실과 조국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드라마는 사람들이 꿈꾸는 욕망의 분출구라는 점이다. 드라마에 나타나는 관계와 감정을 중시하는 리더십의 정체는 분명 사람들이 바라는 안정과 따뜻한 감정에의 욕망이기도 한 것이다. 서두에서 말했던 두 드라마를 통해 드러나는 대중들의 욕구는 바로 그런 것이다. 두려움이나 권력을 가진 자에게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리더십이나 권위가 아니라 때로 도태된다 하더라도 사회가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에서 오는 리더십을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실체 없는 판타지라 할지라도 드라마가 보여주는 이상적 정치에 대한 갈구는 그만큼 현실의 정치에 대해 진저리 난 대중적 욕구의 표출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미제 제공_ MBC 홍보국 사진팀

당선소감
사람과 사람, 그리고 세상을 읽어 본다는 것에 대한 행복

조수빈

우선 감사합니다.
단 한 번도 평론을 쓴다 생각하고 글을 써 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것이 저에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늘 글을 쓸 때면 쓰고 나서 다시 볼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  버리곤 해서인지 다시 제 글을 보니 제 것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여전히 부끄러운 부분은 있어 상을 받게 되는 것이 쑥스럽지만 제가 말하고자 했던 의도를 잘 보아주신 듯 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늘 미디어를 좋아했고, 미디어로 표현되는 대중문화를 아꼈습니다. 고급과 저급을 떠나 대중문화는 개인화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공통된 욕망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분야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곳이 미디어라 생각했고, 세상과 사람을 읽는 하나의 방식으로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글로 풀어내는 것을 택해 왔습니다. 늘 사람과 세상을 아끼는 마음으로 미디어를 봅니다. 그리고 그 미디어 속에서 무언가를 읽어낸다는 느낌을 받을 때 소소한 기쁨을 누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에 새삼 행복을 느낍니다.

심의평-미디어평론
지의 일관성, 주관적 감성의 객관화 탁월

정준영_미디어평론가,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응모작들이 만화에서 드라마, 게임, 인터넷 문학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논지를 일관성 있게 끌고 가는 힘이 약한 편이고, 개인의 독특한 감상을 객관화시킨다는 평론의 의미와 동떨어진 글들이 많아 아쉬웠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선덕여왕>과 <시티홀>, 현실이 갈구하는 여성 리더십의 판타지」는 논지의 일관성과 주관적 감상의 객관화 측면에서 타 응모작에 비해 탁월하다. 특히 <선덕여왕>과 <시티홀>에 등장하는 히로인들이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적 리더십을 대변하고 있고, 이들 드라마의 인기가 현실정치를 지배하는 남성적 리더십에 대한 반감 내지는 좌절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은 그 시의성의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덧붙여 다소 지나치게 언어유희에 집착하는 듯한 다른 응모작들과 달리 차분한 어조로 논리를 풀어가는 모습 또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심의위원들은 이견의 여지없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평론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어야

이영미_대중예술평론가, 연극평론가

미디어와 대중문화, 대중예술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높은 반면, 전반적으로 평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정립된 글이 많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쉽게 알기 어려운 현상·작품의 핵심적 측면을 분석을 통해 논리적으로 추출하는 것이 평론의 기본 요건이며, 그것이 있어야 창의적인 주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응모작의 상당수는 상식적으로 많이 알려진 내용이나 표면적으로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었다.
당선작 「<선덕여왕>과 <시티홀>, 현실이 갈구하는 여성 리더십의 판타지」는 두 작품의 여주인공 분석을 통해 기존 남성 영웅 서사의 리더십과의 차이를 규명하고, 그것의 인기비결을 사회적 원인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평론적 입각점을 지니는 글이었다. 단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고정된 이분법으로 분석한 것에 대한 이의제기가 있을 수 있다. 또 TV드라마 속의 선한 리더들은 남녀불문하고 관계지향적이며 감정적인 ‘여성적 리더십’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는데, ‘여성적 리더십’을 여성영웅 주인공의 고유한 특성으로 본 것은 보편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한 논리적 결함으로 지적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