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아크김해 미술관 전시관 내부]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商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자신의 소설 <허생전>에서 허생이라는 가상인물의 입을 빌어 허례허식과 명분에만 치중해 있던 당시 지배층의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조선후기,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을 겪으면서 백성들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그러나 당시 지배층은 성리학(性理學)1중심의 정치질서를 극복하지 못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기론(理氣論)2과 형식적인 예학(禮學)에만 치중함에 따라 백성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자기반성적 비판의식은 ‘실학(實學)’이라는 새로운 풍조의 학문을 탄생하게 한다. 즉, 실학은 조선후기의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의식하고 기존의 도덕관념으로부터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 학문이다.  

 [제1 전시실]

2009년 10월 23일, 이러한 실학의 사상체계를 재해석하고 현대적으로 계승·발전하기 위한 취지로 실학박물관경기도 남양주 소재이 문을 열었다. 박물관은 북한강 줄기와 고즈넉한 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유적지와 마주한 곳에 위치해 있다. 유적지에는 정약용 생가인 여유당(與猶堂)과 다산의 묘 그리고 다산기념관이 있어 실학박물관을 가기 전에 천재 실학자의 업적과 자취를 엿볼 수가 있다.

실학은 앞서 언급했듯이 눈으로 보이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개념용어로 사용되는 무형의 자산이다. 불특정 다수를 관람객으로 하는 박물관에서 다소 관념적인 주제를 전시로 풀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학문의 사상체계를 주제로 할 경우에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이를 보다 알기 쉽게 재해석하여 보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박물관 측의 고민과 노력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실학박물관의 전시는 크게 3개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은 실학이 형성된 배경과 탄생, 제2전시실은 경세치용학(經世致用學)3, 이용후생학(利用厚生學)4과 실사구시학(實事求是學)5 등에 대한 설명을 통해 실학의 전개와 발전양상, 제3전시실은 서양의 자연과학지식의 전래로 발전한 조선시대 천문학과 지리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전반적으로 실학에 대한 개념설명과 실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전시된 유물은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반계수록(磻溪隧錄)』, 정약용의 『경세유표(經世遺表)』,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와 김정호(金正浩, ?~1864)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목판본, 박규수(朴珪壽, 1807~1877)의 평혼의(平渾儀) 평면의 원에 별자리를 표시하여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 등 그들이 창조하고 발견해 낸 발명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연구결과가 기록된 전적류들의 경우 그 자체만으로는 어렵고 지루해서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기에 부족한 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실학의 형성배경과 천문지리 관련 영상자료와 실학 디지털북, 어업과 해양에 대한 실학자들의 관심을 테마로 한 <바다로부터 세계가 보인다> 3D 애니메이션, 해좌전도(海左全圖)6 입체지도 만들기, 별자리 체험코너, 터치스크린 등의 설치를 통해 전시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흥미를 유발하고자 하였다. 덕분에 전시를 관람하는 어린이들 대부분이 이러한 장치 요소 요소에 흥미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실학은 한국에만 있던 독자적인 학문이 아니라 같은 시기에 서양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아시아 삼국에 공통적으로 존재하였던 사상경향이다. 따라서 각국의 역사적 조건에 따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발전하여, 개항 이후 서구문화의 수용주체로 이행하게 된다. 실학박물관 전시실에서는 중국의 고증학(考證學), 일본의 고학(古學)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여 중국의 고증학자인 고염무(顧炎武, 1613~1682)의 『일지록(日知錄)』 등의 저서와 일본의 대표적 실학자인 미우라 바이엔(三浦梅園, 1723~1789)의 초상화와 그가 발명한 <현어도(玄語圖)> 등을 전시하였다. 이러한 유물들을 통하여 동아시아 각국의 실용주의 사상이 형성, 발전해 간 양상을 놓치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한국의 실학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제2 전시실]

실학박물관은 작은 규모의 박물관으로 관람시간은 대략 40분정도면 충분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경우 다소 불편한 점은 있지만 뛰어난 경관과 다산 유적지를 끼고 있는 위치도 나쁘지는 않았다. 보는 전시를 벗어나서 관람객들이 직접 만지고 체험함으로써 실학을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 배려도 돋보였으며, 실학을 주제로 하는 최초의 실학박물관이라는 가치와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개방성을 느낄 수 있어서 뿌듯했다. 

다만, 전시된 유물 대부분이 복제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버릴 수 없었다. 물론 교육적인 효과나 실학이 갖는 사상적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할 때 복제품이 도움이 된다면 크게 문제될 것 없지만, 실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건립된 박물관으로서 전시유물의 50% 가량이 복제품이라는 것은 앞으로 실학의 중심기관으로 거듭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향후 실물자료의 수집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4 전시실]

또, 패널의 문구가 지나치게 어렵고, 구성마저 교과서 형식을 빌고 있어 보는 이를 쉽게 지치게 만든다. 패널은 유물이 갖는 정보를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가능하면 쉽고 짧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박물관의 주변은 북한강과 팔당호 등의 휴양지가 있기 때문에 여름휴가를 즐기고 잠시 박물관을 들리는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많을 것이다. 이들을 다시 박물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학술용어로 범벅이 된 패널보다는 알기 쉬운 설명과 그림으로 구성된 패널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실학과 실학자들을 알리는 박물관, 과연 이 박물관이 실용적인 박물관인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 해답은 필자가 아니라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의 몫일 것이다. 시대를 앞서 조선의 부흥을 꿈꾸었던 당시의 실학자들처럼 실학박물관도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미래지향적인 실학의 중심기관으로서 성장하기를 바란다.

1 중국 송·명나라 때에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로 이기설(理氣說)과 심성론(心性論)에 입각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중시하는 실천 도덕과 인격·학문의 성취를 역설하였음.

2 이(理)와 기(氣)의 원리를 통해 자연·인간·사회의 존재와 운동을 설명하는 성리학의 이론체계.

3 민생의 안정과 사회의 발전 등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고 정치, 경제 제도의 체계적인 개혁안을 제출하여 처음으로 실학의 체계를 세움.

4 상공업의 유통 및 생산 기구, 서구 자연 과학의 도입 등 일반 기술면의 혁신을 지표로 하고 대외 무역을 통한 상공업의 진흥을 강조하였음.

5 문헌학적인 고증의 정밀함을 존중하고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과학적 학문 태도.

6 1822년경에 제작된 조선의 대표적인 목판본 전도로 산계(山系)와 수계(水系), 자세한 교통로 등이 동일한 기법으로 그려져 있음.

이미지 제공_ 필자
金來永 1983년 서울생.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최근 글로 「한국이민사박물관 활성화를 위한 전시 및 운영프로그램 연구」등 museum9@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