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인트로]


지난 12월 3일부터 6일까지 인천CGV 12관에서 ‘영화, 인천을 캐스팅하다’라는 상영회가 열렸다. 인천영상위원회가 2008년 제작지원한 다큐멘터리 및 독립영화들을 처음으로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란 무지막지한 영화를 본 것도 바로 이 상영회에서였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밴드 ‘타바코쥬스’의 드러머 백승화가 연출한 94분짜리 100% 리얼 다큐멘터리다.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후지필름 이터나상 수상), 제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009 서울독립영화제(관객상 수상)에도 초청된 작품이다. 또한 백승화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도 <나루토아저씨>,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등으로 인터넷 짤방1계에서 맹위를 떨쳤다고 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펑크 레이블 ‘문화사기단’의 중심인물이었던 이규영은 여자친구가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음악인으로서의 생활을 접고 고향인 인천으로 귀향한다. “록음악도 전기도 짜릿하긴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전기관련 국가공인 1급자격증을 따고 성실한 가장이 된 것도 잠시, 뜬금없이 부평의 모텔촌 한 가운데 인디레이블 ‘루비살롱’을 열고 밴드를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자칭 모텔촌의 오아시스, 루비살롱에서 활동하는 ‘갤럭시 익스프레스’―그들의 라이브 공연은 로큰롤의 신과 접신하는 굿판 같다. 그들의 팬들은 로큰롤의 은혜를 받으려는 신도처럼 보인다―와 찌질이들의 대마왕, 진상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밴드 타바코쥬스가 펼치는, 지금껏 보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음악 장편 다큐멘터리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연장면]


중간 중간 삽입된 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이나 U2 등의 명언보다도 더욱 소중하고 감동적인 것은 바로 여과없이 보여주는 그들의 삶 자체다. <원스Once>처럼 달콤하지도 <필승ver2.0 연영석>처럼 선동적이지도 않지만, 함께 부대끼고 뒹굴며 만들어낸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뜨거운 록의 정신을 보여준다.

[인터뷰하는 이규영]


사실 화면 자체는 매우 거칠다. 초점이 맞지 않고 불편할 정도로 흔들리는 카메라, 답답하고 컴컴한 화면들은 UCC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인터뷰 곳곳에서 난무하는 끊임없는 비속어들도 불편하다. 하지만 매력적이다. 그 거침과 낯설음이 거북스럽기는 커녕 관객들로 하여금 록에 미쳐 음악을 평생의 길로 삼아 달려가는 루비살롱, 진짜(?) 찌질해 보이는 타바코쥬스와 동화하게끔 만든다. 술에 취해 자기 공연순서를 놓치고, 형인 보컬 권씨가 밴드를 그만두겠다고 뛰쳐나갔다가 다시 슬그머니 돌아와 동생 앞에서 각서까지 쓰고, 또 술 퍼먹고, 첫 앨범 발매기념 콘서트를 마치고 관객에게 큰 절을 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 등은 우리를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백미는 비좁은 자취방에서 소주에 취해 기타와 실로폰을 연주하며 목청이 터져라 <눈물의 왈츠>를 부르는 타바코쥬스의 모습이다.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의 대형무대보다, 근사한 라이브 홀에서의 공연보다, 다른 어떤 화려한 무대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영화<삶의 정주, 함께 살게 하는 마을 >중에서 벽화 그리는 사람들]


인천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은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삶의 정주, 함께 살게 하는 마을> 또한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이 영화는 ‘퍼포먼스 반지하’ 라는 단체가 2008년 한 해 동안 만났던, 우리에게는 배다리로 널리 알려진 창영동 작은 마을의 일부분을 담은 삶의 기록물이다. 그래서 주인공도 결론도 기승전결도 없다. 대신 시간을 지나 버티며 지금 지속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들어있고, 그 삶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영화는 개발과 탐욕의 시대, 살고 있는 곳은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으로 여겨지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의 방식이 과연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창영동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어 소통함으로써 그들의 일상 속에 담긴 공동체적 가치들을 기록하고, 다음 세대로 전승되어지기를 소망하며 그곳에서 그렇게 몇 년째 함께 살아가고 있는 퍼포먼스 반지하의 이야기다.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픽션 같은 논픽션, 우리가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이야기들이다.

위 영화들은 두 가지 다른 형태의 감동을 준다. 하나는 구구절절히 써놓은 것처럼 그들의 록 정신을 지키는 삶과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묵묵히 지키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 이런 영화가 인천에서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하는 감동이다.

인천영상위원회가 2006년 출범 이후 인천의 영상문화 활성화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분히 막연하고 추상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처럼 인천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이 없었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영화들을 직접 보니 그 중요성이 새록새록 느껴진다. 인천영상위원회의 영상제작지원 프로그램은 인천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작지만 진정성 있는 영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 지원 프로그램은 인천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삶과 때로는 우리가 미처 바라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인천영화 생산의 소중한 산실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나아가 더딜지언정 인천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는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어떻게 배급하고 공유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점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듯 느껴진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천영상위원회가 좀 더 분투하기를 바란다. 인천시민들과 좀 더 소통하기를 바란다. 다양한 영상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영화<삶의 정주, 함께 살게 하는 마을>에 나타난 창영동 _위,아래]


독립영화전용관으로 만 2년 넘게 자리를 지켜왔던 ‘인디스페이스’가 사라진다고 한다. 인디스페이스는 그간 독립영화의 활성화와 안정적 배급을 고민하며 지난 2007년 11월 개관해 그간 1년에 30여 편의 독립영화를 개봉해왔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 초청된 서울독립영화제의 진행 장소이기도 하다. 인천에도 전국 유일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예술영화 전용관 ‘영화공간 주안’과 CGV에서 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 상영관 등이 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인천영상위원회의 몫이다.

두서없는 글은 인천시민의 소감을 인용하며 마치고자 한다. 이 소감이 모든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인천영상위원회 제작지원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인천영상위원회여 약속해 달라! 어떤 어려움과 시련에도 굴복하지 말고 ‘반드시 계속 지원할 것’을.

1 짤방은 짤림 방지라는 의미로 게시물에 추가로 넣는 이미지 등을 의미 한다. 디시인사이드라는 웹사이트에서 시작된 독특한 문화 중 하나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기 위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로 확대되어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었음.

金昌吉 1971년 수원생. 인천민예총 사무처장. 최근 글로 「행복한 인천연극」 등. chinki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