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고향의 집'입구]


혹시누군가가 “짬뽕의 의미는?”이라고 물어온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아마 자장면의 라이벌, 한국에서는 빨갛고 일본에서는 하얀, 해물과 야채의 국물 맛이 입에 침을 고이게 하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중국의 면 요리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 또는 북한 국적의 재일코리안1에게 짬뽕이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경상도와 제주도 방언이 일본에서 그들의 한국어로 대체되어 반세기 동안 굳어지고 학습되어 온 한국말과 일본어를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 그것을 그들은 “짬뽕”이라고 부른다. 하긴 한국에서도 짬뽕을 ‘이것저것 섞인 것’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하니 아주 이해 못할 말은 아니다.

위의 ‘짬뽕’과 같이 재일코리안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하고 후세를 낳아 기르며 독자적인 문화를 가꾸어 왔다. 우리는 일본의 토지 수탈에 따른 농촌의 붕괴와 강제 징용이라는 노동력 착취로 ‘일본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재일코리안, 차별에 맞서서 운동하는 재일코리안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의 이웃인 일본 사람들도 그들의 생활과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오직 있어왔던 것들은 재일코리안 자체보다는 일본, 한국이라는 이미지뿐이었다.

반세기 동안 쌓여 왔던 이미지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민족과 국가라는 겉옷을 벗고, 젊음과 생활을 통해 그려내던 것이 바로 영화 <박치기>(2004년 일본 개봉, 2006년 한국 개봉)였다. 이 영화는 한일 양국에서 반향을 일으켜 2007년 2부가 제작되기도 했다. 어둡고 날카로운 이미지였던 재일코리안을 유쾌하게 그려낸 데에서 세대와 국가를 뛰어넘는 감동을 찾은 것이다. 1960년대 말의 젊고 치기가 넘쳤던 그들. 그들과 그들의 부모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09년 4월 교토(京都)역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박치기>의 무대가 되기도 한, 이른바 히가시쿠죠(東九條)라고 불리는 지역에 새로운 시설이 들어섰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고 하는 일본에서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노인복지지설이다. 카모가와(鴨川) 강변에 지어진 이 복지시설은 일본의 개호(介護) 일본어로 간호, 간병이라는 뜻보험법에 맞추어 24시간 관리가 필요한 고령자들이 입주해서 살아가는 특별양호노인홈 우리나라의 요양시설에 해당을 기본으로 재가요양, 방문요양 등을 폭넓게 지원한다. 또한 이곳은 최신 설비는 물론 유니트케어2에 맞추어 만들어진 데다 150명 정도 수용 가능한 지역 교류 공간인 문화홀까지 갖춘 ‘명품’ 노인요양시설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우메보시(梅干)와 김치를 함께 먹을 수 있는 노인요양시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고령의 재일코리안들을 위한 복지시설 ‘고향의 집(故鄕の家)’ 교토 지점이다. 기회를 얻어 시설을 견학할 수 있었는데, 정말 우메보시와 김치가 나오고 한국어와 일본어가 가능한 직원이 상주하고 있으며, 찻집 등 입주자들의 교류 공간이 충분해, 여러 가지 면이 고려된 시설임을 알 수 있었다.

['고향의집' 지점들이 있는곳]


한국 최초의 아동복지시설로 출발한 공생복지재단의 윤기(尹基) 명예회장에 의해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こころの家族)이 운영하는 ‘고향의 집’은 1989년 오오사카시 남쪽에 인접한 사카이(堺)시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1993년 오오사카 이쿠노구(生野區)일본에서 가장 재일코리안이 많은 지역으로,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쯔루하시(鶴橋)상점가 포함, 2001년 코오베 나가타구(長田區)코오베에서 재일코리안이 많은 지역를 거쳐 2009년 교토 히가시쿠죠에 ‘고향의 집’ 4번째 지점이 세워졌다. 위 4개의 지역들은 일본 관서 지역의 대표적인 재일코리안 밀집거주지역이다. 이러한 활동으로 윤기 명예회장은 국내외로 수많은 상을 수상하고, 국내의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에 따르면 그가 재일코리안을 위한 복지지설을 짓기로 결심한 것은 어머니인 다우치 치즈코(田內千鶴子)한국명 윤학자(尹鶴子) 여사의 마지막 유언 때문이었다고 한다. 목포에 공생원1928년 목포에 설립된 고아원을 설립한 윤치호와 결혼한 윤학자 여사는 윤치호가 6·25전쟁 때 실종된 후에도 치마저고리를 입고 공생원을 지켰다. 한국인보다 한국인스러웠던 그녀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일본어로 “우메보시가 먹고싶어”였다는 것이다.

[고향의 집 내부 시설]


“많은 하루모니 재일코리안의 할머니를 일컫는 말들이 나이가 들면 ‘짬뽕’이 돼요. 그러다가 더 건강이 악화되면 한국말만 하게 되죠.” ‘고향의 집’ 교토 지점 관계자의 한마디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와 군수공업과 토목, 광산업, 도시경공업에 종사하며 일본어를 익힐 수밖에 없었던, 지금은 80대 전후가 되어 있는 재일코리안 1세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일본 제국의 국민으로서의 권리도, 노동력으로서의 가치도 잃은 채 일본사회의 주변에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그들. 선거권 등 많은 차별들이 그들의 존재를 ‘일본 사회의 모순’으로서 눈에 띄게 했지만 최근까지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바로 1980년대 중반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고령화 한 그들의 복지 문제이다. 1982년 국적 조항이 제거된 국민연금법 때문에 연금 지불 대상에서 제외된 재일코리안들, 그리고 ‘짬뽕’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그들의 문화적 특성. 결국 일반적인 고령의 재일코리안들은 사회적 소외와 문화적 정체성의 소외라는 두 가지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들의 숫자는 약 60만 명의 재일코리안 중 13.8%에 달한다.3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행정기관보다 시민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고향의 집’도 한일 양국 시민들의 참여와 후원에 의해 만들어졌다. 2000년 개호보험의 적용 이후 생겨난 재일코리안을 대상으로 한 개호 서비스 센터, 코오베 나가타구의 KFC 하나의 모임(KFCハナの会), 교토의 에루화(エルファ) 등의 NPO법인이 그것이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


최근 일본의 사회복지에서 그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지역 커뮤니티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주거지원과 복지이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까지 공(公)기관에서 담당해왔던 역할을 지역 주민의 참여를 통해 보다 효과적이며 정서적으로 지원하는 공(共)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노인과 장애인으로 대표되는 사회복지시설의 입주자들이 그 시스템 안에서 지역에 인연을 만들며 지역과 호흡하는 것이다. 이는 국적과 민족을 떠나 일본사회에서 그리고 그곳의 지역 사회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온 재일코리안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처음부터 재일코리안이 지역과 호흡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지역과 고립된 채 그들이 일본사회의 음지에서 가꾸어 온 야키니꾸갈비와 호르몬곱창과 도부로꾸막걸리가 양지로 부상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현재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온 재일코리안들은 문화를 통해 지역 밖으로, 그리고 국경 밖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발신하고 있다. ‘고향의 집’ 교토 지점이 있는 히가시쿠죠 지역에서도 역시 그러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곳은 일본의 패전 이전부터 노동자들의 거주지구이자, 재일코리안과 함께 일본사회의 그림자인 피차별부락지역과 맞닿아있던 이곳은 통칭 0번지라고 불렸던 카모가와강변의 판자집 마을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판자집 마을을 공영주택단지로 바꾸는 등 생활 환경 개선 운동을 성공시킨 유서 있는 지역이다. 1993년부터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재일코리안 문화 축제 히가시쿠죠 마당, 2009년부터 열리고 있는 다문화 다공생을 생각하는 시민단체 교토 히가시쿠죠 CAN포럼은 그들이 뿌린 씨앗의 결실이다. 거친 운동과 주변 일본인들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문화로서 존재를 발신하고, 이어나가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이때 ‘고향의 집’ 교토 지점은 그들의 결합 장소 역할을 한다.

[고향의집 외관]


‘고향의 집’ 교토 지점과 히가시쿠죠 사람들은 민족과 문화 차이에 의한 차별과 편견의 극복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히가시쿠죠에는 외국인복지생활을 지원하는 교토모아넷이 있다. 그리고 2009년 11월 ‘고향의 집’은 2010년부터 실시할 ‘고령자시설과 소셜 팜(social farm)’ 사업의 실시를 발표했다.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에서 의미를 가져온 이 사업은 차이를 넘어, 차별당한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히가시쿠죠라는 지역의 문맥과 접해 있다. 또한 그 접점에서 보이는 것은 지역 자체만이 아닌, 일본 사회의 좀처럼 보이지 않던 그림자의 일부이다.

1 여기서는 주로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과 그 자손을 일컬음.
2 노인복지시설에서 개인실을 부여하면서 개인실이 모인 작은 단위(유니트)를 만들어 단위별로 관리하는 방법. 다인실에서 침해되기 쉬운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모이기 쉬운 작은 그룹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 받고 있음.
3 코오베정주외국인지원센터 편, 『재일마이너리티 고령자의 생활권 - 주로 재일코리안 고령자의 실태에서 고찰』,

2007.

이미지 제공_ 필자
全   輝 1982년 부산생. 오오사카시립대학교 문학연구과 아시아도시문화학 석사과정. diotima3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