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욕망의 금기를 깬 자유부인이여! 집으로 귀환하라

김현주

1950년대 대중문화 현상을 논할 때, 장편소설 『자유부인』의 출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의 표지는 당시 유행하던 ‘물방울무늬의 나일론 천’을 입은 부인이었는데, 물방울무늬의 옷감은 지금 눈으로 보면 단아하고 고전적으로 비춰진다. 그런데 그 당시의 시각으로는 모던함과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신세대의 패션 아이콘이었다. 마찬가지로 나일론 천 역시 비단의 비실용성을 대체하는, 게다가 모던한 감각을 살려주는 ‘꿈의 섬유’였다. 당연히 당시 독자에게 『자유부인』의 표지는 소설 제목과 함께 성적 ‘자유’에 대한 판타지와 모던한 감각을 모두 환기시키고 있다.

정비석, 『자유부인』, 1955년 초판의 표지

소설 『자유부인』이 1954년 1월 『서울신문』에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150회 분량을 예상하였으나, 인기에 편승하여 215회까지 이야기가 길어졌다. 연재 횟수가 늘어난 것은 소설의 내적 필연성이 가장 주요한 이유였지만 연재가 시작된 후 두 달 남짓 되어서 벌어진 논쟁도 한 몫(?) 하였다. 사회적 비판을 많이 받는 TV드라마가 오히려 시청률이 올라가는 역설적 효과를 거두듯이, 소설과 관련된 사회적 논쟁 역시 소설의 대중적 인지도를 확산시키는 경우가 많다. 『자유부인』이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논쟁은 황산덕 서울대 교수가 대학신문에 실은 글에서 발화된다. 황 교수는 “참다못해 붓을” 든다며 “대학교수를 양공주 앞에 굴복시키고 대학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으려” 하는 소설을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이에 정비석은 황 교수의 비난이 문학에 대한 몰이해이며 근거 없는 폭언이라고 강력히 항의한다. 다시 황 교수는 “남녀 관계만이 문학이고 성욕만이 예술”이냐며 재반론을 펴며, 『자유부인』이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되는 조국의 적”이라고 맹비난을 쏟아놓는다. 여기에 정비석은 “문학가를 모욕하는 탈선적 폭력”이며 “허무맹랑한 원성”이라고 맞대응하면서 논쟁이 점차 고조된다. 논쟁의 와중에 1954년 4월 1일 『제일신보』에 ‘遂! 자유부인 말썽-정비석 씨, 황산덕 교수 간에 난투극, 쌍방 중상으로 입원 중’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한다. 곧바로 만우절 해프닝으로 드러났지만, 자유부인 논쟁의 치열함과 대중들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자유부인』을 둘러싼 논쟁과 관심은 금기시되었던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독자와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소설 출간 당일 초판 3천부가 모두 매진되었고 총 14만부 이상이 팔리는 기염을 토하였다. 반면에 소설 연재가 끝난 후 『서울신문』의 독자가 5만 명이상 감소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소설 『자유부인』은 영화 제작의 수순을 밟게 된다. 영화감독 한형모! 그는 1954년에 <운명의 손>이라는 영화에서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키스신 도입이라는 신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파격적으로 성문제를 다룬 소설과 영화감독의 만남은 영화 촬영 전부터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인지 영화도, 그리고 그 영화에 삽입된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로 시작되는 OST(<댄서의 순정>, 박신자 노래)도 흥행의 새 기록을 연이어 세웠다. 여세를 몰아 69년, 81년, 86년, 90년에 동일 제명의 영화가 만들어졌으며, 2015년에 다시 리메이크를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직도 자유부인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대중을 끌어들이는 성적 마력이 숨어 있는가 보다.

『자유부인』의 대중적 인기는 당대 한국 사회가 아니면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전형적인 정치적 해프닝으로까지 번져간다. 북한이 이 소설을 대남 비방용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작가가 이적표현물 발간죄로 조사를 받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자유부인』은 사회적 문제가 표면으로 부상될 때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예컨대 “법은 정숙한 여성만을 보호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박인수 사건이나 성적 방종인가 성적 자유인가를 놓고 벌어졌던 50년대 후반의 아프레 걸 논쟁에서도 『자유부인』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곤 했다.

이처럼 『자유부인』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게 된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자유부인』은 전쟁 이후의 세태 현상, 곧 모든 계층에 걸쳐 만연된 윤리적 타락과 권력형 비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이 소설은 남편이 젊은 여인과, 아내가 젊은 총각과 바람이 났다가 가정으로 귀환하는 이야기인데, 이 과정에서 당대 풍속을 핍진하게 재현하고 있다. 즉 남편 장태연은 학자적 인품을 지닌 교수인데, 한글강습을 받고 싶어 하는 타이피스트 박은미를 처음 만난 날 양장 사이 언뜻 보이는 종아리에서 육체적 충동을 느낀다. 장 교수는 젊은 박은미를 만나면서 부인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야릇한 감각을 느끼고 가정까지 포기할 마음을 가져보는데, 갑자기 은미가 자신의 제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우울한 속내를 드러낸다. 게다가 장 교수의 부인 오선영은 평범한 가정주부로, 어느 날 동창 모임인 화교회에 다녀오고 나서 부에 대한 욕망을 분출한다. 그녀는 공무원 남편을 둔 동창들이나 국회의원인 오빠가 모두 권력형 비리로 치부하고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질투감을 느낀다. 이 질투감은 돈도 권력도 성적 매력도 없는 남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돈을 벌고 폼 나게 소비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취직한 양품점에서, 그녀는 양품점의 돈을 몰래 가로채는 방식으로 욕망의 갈증을 해결하고자 한다. 또한 자신의 남편에게 학점 청탁을 하는 학생의 돈을 스스럼없이 받아 남편 몰래 양장을 맞춰 입으면서 소비 욕망을 채워간다. 이렇게 돈과 소비에 대한 욕망은 조금씩이나마 채워가지만, “육체적 고독”에 대한 불만족은 해소하지 못한다. 선영은 댄스를 배우면서 사회 활동에서 요구되는 교양을 채워가는 동시에, 댄스 교사를 자처한 젊은 대학생 춘호를 통해 육체적 갈증을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춘호가 자신의 조카딸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버리면서 허사가 되어버린다. 육체적 갈증을 해결하지 못한 선영은 양품점 사장의 남편인 한태석을 통해 욕망을 채우려고 과감하게 가출한다. 이처럼 『자유부인』은 작가의 말대로 “우리나라 사회의 변천사를 연구하려”는 사회학자에게 도움이 될 정도로, 돈과 권력, 성으로 집약된 당대 “풍속을 현실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형성된 불안과 피해의식이 혼재하고 미국을 통해 유입된 자유주의가 윤리적 규범 없이 범람하던 시대인데, 그런 사회적 현상을 오선영이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요인 중 하나이다. 오선영의 성적 욕망은 불안불안하게 용솟음친다. 춘호를 통해서 채워지지 못한 분풀이로 한태석을 만나 풀려고 하지만, 그 역시 그의 부인으로 인해 실패하고 만다. 자유분방하게 성적 욕망에 따라 사는 친구 최윤주를 찾아가 해소하려고 하지만 역시 실패한다. 성적 자유를 외치던 친구 최윤주가 남자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이다. 결국 한글간소화 학술대회에서 연설하는 남편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경솔함을 자책하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발견하고 아이를 위해 용서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오선영의 욕망을 잠재우는 것은 돈과 권력의 충족이나 성적 충족이 아니라, 남편의 한글운동을 통해 민족과 국가를 재건하겠다는 이상과 명분이라는 점이다. 『자유부인』에서 여성의 공적 활동은 성적 방종을 조장하는 원인으로 묘사되는데, 그 현실적 이유도 남성의 이상과 명분을 세워주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끝난 후 남성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전쟁 중에 남성 대신 경제 일선에서 활동하던 여성 때문에 설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들이여 가정으로 돌아오라’는 구호를 내걸고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을 양공주 또는 유한마담으로 규정하고 공적 영역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러므로 황산덕 교수의 논쟁에서도 일하는 여성 박은미를 양공주(매춘부)로 호명한 것처럼 양장점에 취직한 오선영의 일상도 양공주로 전락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그러므로 소설의 제목은 ‘자유’와 ‘부인’을 결합하고는 있지만, 여성의 성적 ‘자유’를 문제 삼고 남성성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그럼에도 독자는 『자유부인』을 성적 자유로 환기하며 독서한다. 작가의 도덕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오선영은 사회의 부정부패를 인지하고 비판하는 현대적 여성이며, 육체적 자각과 아내와 어머니의 제한된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성적 욕망의 대리자인 것이다. 독자들은 독서를 통해 오선영이 인지했던 사회의 부조리나 욕망했던 돈, 사랑, 권력을 소비하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대리 충족한다. 또한 도덕적 뉘우침 없이 용서의 주체가 된 장태연 교수를 통해 가정의 울타리 밖에서 성적 판타지를 넘볼 가능성에 짜릿함을 느낀다. 이들 부부를 가정에 묶어 놓은 것은 서로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 가정 밖으로 나가려는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는 자기 통제력이라는 교양과 민족과 국가를 위한 명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부인 현상이 50년대 이후에도 계속 반복되는 것은 그 통제력과 명분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