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지하도로 개설부지
 
 
인천 동구에 배다리로 일컬어지는 곳이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동구 금곡동 일대를 말하지만 우리가 보통 부르는 배다리는 그 품이 더 크고 넓다. 금곡동을 중심으로 해 창영동 쪽은 물론이고, 수도국산과 동인천역, 중구 도원동 쪽까지를 한 곳으로 아우르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크게 볼 때야 비로소 예전부터 불리던 배다리의 개념이 온전히 살아난다.
배다리는 한동안 개발과 보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배다리를 관통하는 도로 개설 문제 때문이다. 아직도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중구 신흥동에서 동구 송현동까지의 도로 계획이 1998년에 처음 세워졌으니 참으로 긴 시간이다. 금곡동과 창영동을 둘로 갈라놓는 지상도로 건설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섰고, 인천시는 도로 개설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며 맞섰다. 당국은 도로부지 평탄화 작업까지 마쳤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결사적이었다. 공사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지금은 이 도로부지가 흉물처럼 돼 있다. 그 사이 이 일대는 도시재개발 사업 대상지에 포함됐다.

아벨서점

최근 인천시는 배다리 부근 도로를 지하에 건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곳은 재개발 대상에서도 제외하겠다고 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그리고 그곳을 일종의 문화지구로 가꾸겠다는 약속도 했다. 배다리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배다리는 겉에서 보면 개발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의 입장처럼 볼품없다. 헌책방 몇 곳이 있고, 낡은 집들이 골목길을 더욱 초라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배다리를 보존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한편, 배다리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배다리는 우리에게 무엇이고, 우리는 배다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다리는 인천의 근대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수많은 인물들을 키워낸 산실이다. 개항 때부터 이어지는 산업화 과정의 흔적도 뚜렷이 배어 있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살았던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다. 그곳의 헌책방거리에 있는 아벨서점 분관(전시장)에 가면 오래된 흑백사진 몇 장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 일대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중 문화극장의 전경을 담은 사진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사진 왼쪽 꼭대기에는 처음 찍었을 때 쓴 것으로 보이는 “항도(港都)문화를 창조”란 글귀가 적혀 있다. 아벨서점 측에서 쓴 사진설명에는 “문화극장의 전경. 조선인촌(燐寸)주식회사 자리에 극장을 설립, 피카디리극장으로 사용하다가 현재 배다리 관통도로 현장. 1955년 7월 개관”이라고 돼 있다. 극장 2층에 내걸린 큰 영화안내판은 3개나 되고, 중절모를 쓴 신사와 뛰노는 어린아이, 오가는 사람들은 주변 상권의 번화함을 잘 드러낸다. 이 사진은 설명처럼 그곳에 한때 인천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던 조선인촌주식회사란 성냥공장이 있었고, 한국전쟁 직후엔 대형 극장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도로 건설 사업부지에 편입된 일련의 상황을 잘 드러낸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열쇠가 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항도문화를 창조’란 문구. 이 사진이 찍혔을 때인 1950년대 중반 배다리는 인천의 문화중심지를 지향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예전부터 배다리는 헌책방 골목이 유명했다. 그런데 그 인연이 참으로 묘하다. 인천양조장 주인이자 인천 최초의 치과병원 원장이자, 언론인이자, 문화예술인으로 활동했던 임영균(林榮均, 1904~1966) 선생의 집이 배다리에 있다. 선생의 부친이 인천에서 처음으로 책을 팔고, 빌려주는 책방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배다리와 임영균을 연결하면 책방으로 통하고, 인천의 양조장 사업의 내력이 떠오르고, 인천의 병원사를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창영초등학교                                             여선교사합숙소


영화초등학교

배다리에서 해방 후 국내 최초의 문예지가 태동했다는 점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강화 출신으로 해방공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자 언론인 중 한 사람인 김차영(金次榮, 1922~1997)의 회고에 의하면, 해방 이후 국내 최초의 문예지가 태동한 곳이 바로 배다리임을 알 수 있다. 1991년 『학산문학』 창간 좌담에서 밝힌 바를 보자. “광복되던 날 밤에 저는 쇠뿔고개현 창영동 조금 못 미쳐 영화학교에서 철로 변으로 가는 쪽에 있었던 송종호의 집으로 갔어요. … 아마 그날 8~9명 정도 모였을텐데, 거기서 동인지 발간이 발기되었고, 약 일주일 뒤에 지금 기독병원 아래에 허름한 사무실을 마련하고 ‘신문화협회’라는 것을 결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약 한 달간이나 고생한 끝에, 골필로 써가지고 『문예탑』, 『동화세계』 등을 낸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모두 미쳤던 거지요.” 배다리 일대가 당시 중요 문화예술인들의 삶터이자 활동공간이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항도문화를 창조”한다는 옛 구호가 허울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배다리는 인천교육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곳엔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교와 영화학당현 영화초교, 그리고 초창기 여선교사합숙소도 있다. 영화학당은 1893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초등학교였고, 1907년에 개교한 인천공립보통학교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 공립초등학교의 모범이었다. 이 두 학교를 나온 인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제강점기 산업화의 전초기지가 된 곳도 배다리다. 앞에서 언급했던 조선인촌주식회사는 1917년에 지어졌으며, 연간 7만 여 상자의 성냥을 생산했다고 한다. 당시 국내 성냥 소비량의 20%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동네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성냥갑 납품에 매달렸고, 당시 성냥공장은 인천공업의 대명사가 됐다. 남보원의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란 노래도 여기서 나왔다. 또한 배다리에는 양조장이 많았고, 대형 정미소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또 인천 최초의 어묵공장도 있었단다. 양조장과 정미소는 쓸 쌀을 배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어묵공장은 말할 것도 없다. 배다리라는 이름이 괜한 게 아닌 것이다. 당시에는 바닷물과 배가 드나드는 갯골이 여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1950년대에만 해도 중구 내동에서 싸리재로, 싸리재에서 배다리로 이어지는 좌우의 상점은 ‘인천의 종로’로 손색이 없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시는 장소와 기억이란 두 단어를 잘 맞아 떨어지게 한다. 어떤 장소는 그곳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 내게 하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은 역사를 깡그리 뭉갠 채 아무런 추억도 담아내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천 개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중구 일대를 말한다. 당시를 기억하게 하는 것도 많이 남아 있다. 장소와 기억이 갖는 상관관계가 잘 맞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곳은 너무 우리를 위축시킨다.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신도시이기 때문이다.

최성연(崔聖淵, 1914~2000)의 『개항과 양관역정』에서 중구 일대와 배다리의 모습을 비교해 놓은 대목을 보면 개항 직후 인천 중구 일대가 황금시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식 국제호텔은 초만원의 성황을 이뤘고, 제물포구락부는 밤낮으로 흥청거렸다.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인천으로 모여들었는데, 호화스럽던 중구 쪽 각 지계에는 거주할 수 없어 변두리싸리재 아래 동쪽의 배다리, 송림, 송현동 등에서 오막살이를 했다고 한다. 중구와 배다리가 만나야 온전한 인천의 근대사가 살아 숨 쉬게 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천시 당국의 얘기대로 송도가 인천의 현재이고, 미래라면 중구와 배다리를 인천의 근대로 삼자. 그 과거는 강화가 있지 아니한가. 강화와 중구·배다리, 송도가 하나로 이어질 때야 인천의 역사는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배다리를 되살릴 수 있을까. 배다리를 원래의 ‘배다리’로 만들면 어떨까. 바닷물을 배다리로 끌어 오자. 아니 지금도 드나들지 모를 배다리의 바닷물을 세상에 드러내자. 갯골을 메우고, 덮고 한 것을 걷어내자. 수도권 도심에서 이보다 더 환상적인 관광코스가 어디 있겠는가. 현실적인 방안으로, 인천문화재단과 같은 공공기관이 배다리에 입주하길 바란다. 배다리에서 “인천의 문화를 창조하자”는 외침을 다시 듣고 싶어서다. 배다리! 배다리는 인천을 발견할 수 있는 곳, 인천을 현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