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출판부│2009

지도교수님 연구실 책장 가장 아랫단에 꽂혀있던 논문 한 권을 기억한다. 빼곡히 꽂혀있는 재일조선인문학 관련 책 중 그 논문은 크기부터가 눈에 띄었다. 백과사전 한 권 두께의 검은 논문 겉표지엔 금박으로 박힌 글씨로 ‘張赫宙硏究(장혁주연구)’라 적혀 있었다. 그것이 장혁주(張赫宙, 1905~1997)1에 관한 국내 첫 연구저서이자 시라카와 유타카(白川豊)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다.

처음 재일조선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게 했던 것은 이양지(李良枝, 1955 ~1992)의 소설 때문이었다. 그를 통해 나의 모습을 뒤돌아볼 수 있었고, 재일(在日)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묵직함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차차 공부하면서 다양한 재일조선인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장혁주이다.

“김사량(金史良, 1914~1950)과 함께 재일조선인문학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작가로, 「아귀도(餓鬼道)」(1932)라는 작품으로 카이조켄쇼(改造懸賞)를 입상했다.”

그를 설명할 때 항상 등장하는 문구이다. 내가 공부할 당시 당시 그의 단편 하나 찾아 읽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그의 작품을 연구한 논문이나 책 또한 많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고 해도 좋을 듯싶다. 그런 장혁주에 관한 첫 연구논문이 작년 말 출간되었다.

『장혁주 연구-일어가 더 편했던 조선작가 그리고 그의 문학』은 1989년 시라카와 유타카가 동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을 골조로, 이후의 소논문을 몇 편 더하여 엮어낸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것은 장혁주의 작품뿐 아니라 장혁주와 당시 한일 양국에서의 장혁주 위상에 대해 논한 개괄적인 연구서이다. 저자는 1945년 이전의 장혁주 작품을 언어별로 구분하여 대략적인 줄거리와 작품의 성격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고, 작가 자신 또한 어떠한 반향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도 작품과 당시 작품평론, 기사 등을 통해 논하고 있다. 저자가 연구범위로 다루고 있는 범위가 넓다보니 심층적인 작품 분석이라기보다 장혁주의 작품성향 파악과 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본 연구의 성격을 지닌다.

장혁주는 언제나 김사량과 비교되었다. 이 저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침체기를 만난 일본 프로문학계프롤레타리아문학는 초기 장혁주가 보여주는 참신한 ‘동반자문학(同伴者文學)’ 2적 작품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아귀도」와 「쫓기는 사람들(追はれる人?)」(1932)이 일본 문단에서 받은 평가를 살펴보면, 작품 자체에 대한 호평보다 그의 작품평을 내세워 어떠한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여러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문단의 상황을 비집고 등장해 두각을 드러냈다. 어쩌면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평가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후 만주에서의 일본 국책사업 선전활동 등으로 그는 조용히 학계에서 묻혔다. 지금도 김사량의 작품이 꾸준히 연구되고 있는 데 반해 그의 작품은 변변한 작품전집도 없고 연구 또한 그 초입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역할은 줄곧 민족적 글쓰기를 했던 김사량의 그림자였다.

현재 장혁주 연구로는 2004년 타무라 히데아키(田村榮章)의 『식민지 시기의 일본어 문학과 조선(植民地期における日本語文學と朝鮮)』이라는 박사학위논문과 김학동의 『장혁주의 일본어 작품과 민족』(2008)이 있다. 전자는 식민지시기에 일본어로 작품활동을 한 장혁주와 김사량의 생을 통해 당시 조선과 일본의 사회상과 문학의 체재협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후자는 장혁주의 문학에 담겨있는 작가의 삶을 일본의 패전 직후 문학까지 다루어 소개하고 있다. 둘 다 시라카와의 논문이 나온 지 거의 20년 후의 것들이라 할 수 있으니, 이번에 책으로 발간된 시라카와의 논문이 장혁주 연구와 재일조선인문학 연구에 있어 어떠한 역할을 했을지는 자명하다. 일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한 나로서는 그의 이번 책이 좀 더 일찍 나오지 못했던 것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번역, 출간되었으니 후배들은 좀 편하게 장혁주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