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s여성,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다 展>포스터
  

  
‘신여성’이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하면,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새로운 여성, 공부 많이 한 여성, 유행을 따르는 여성, 된장녀, 엣지녀 등. 정확히 시대와 인물을 열거하지는 못하지만 단어의 이미지로 추측해서 대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1920년대 신여성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한다. 그들은 대중문화의 첨병이었으며 유행의 선도자였고, 사생활조차 대중들의 소문과 흥미의 대상인 스타였기 때문이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시된다고 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부평역사박물관을 찾았다.

‘1920´s 여성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전시실의 내부는 그리 넓지는 않지만 신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로 가득 찬 전시실은 아니지만, 1920년대 신여성에 대한 정보는 충분했다.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는 신여성들의 삶은 여전히 흥미로웠으며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전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진채신여성풍속도(眞彩新女性風俗圖)>경기대박물관 소장처럼 1920년대 신여성들의 삶의 파노라마가 추억의 풍경처럼 펼쳐져 있을 뿐,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처음은 ‘그녀들 이전의 삶’으로 시작한다. 장옷을 입은 여성의 사진과 내훈 등의 책자를 통해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1920년대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 여성들은 장옷을 벗고 통치마와 구두로 한껏 멋을 내며 책보를 끼고 학교에 간다. 최초의 여성기관인 이화학당(1886), 경성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1895), 순성여학교(1899),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1906)에 대한 소개와 당시의 교복, 교과서, 수학여행과 소풍사진을 통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당당하게 실천하는 신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920년대는 유성기와 레코드, 무성영화, 라디오 등이 등장하면서 도시의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갔다. 도시에 사는 여성들은 피아노 등의 음악적 취미와 운동을 필수적인 교양으로 갖춰야 했으며, 이것은 학교를 통해 보급되었다. 학교는 현대적 교양을 가르치고, 엄격한 규율로 학생들을 통제 하였다. 교육을 통한 또 다른 현모양처의 내면화는 아닌지 하는 생각과 함께 앞에 있는 편물노트를 보았다. 그러자 문득 목도리 시비가 생각났다. 1923~1924년 뜨개질이 유행하면서 신여성들이 목도리를 유행시키자, 그 목도리의 색깔이나 길이를 가지고 대중들은 그들을 논란의 중심에 세웠던 것이다.

  
이제 여성은 ‘장옷과 비녀를 벗어 버리’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높은 굽을 딸깍거리며 도시를 거침없이 거닐었다. 트레머리꼭뒤에다 틀어 붙인 머리 모양에서 단발, 통치마, 굽 높은 구두는 1920년대 신여성을 가리키는 대명사다. 신여성들의 옷차림은 관심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소비는 사치스러움의 상징이 되어갔다. 전시실 한 가운데 놓여있는 화장품과 가방은 ‘1920′s, 시간속의 여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여성들은 자유를 꿈꾸며 백화점과 음악회를 활보하였다. 나혜석(羅蕙錫, 1896~1949)의 작품 <무희>국립현대미술관 소장와 무용가 최승희(崔承喜, 1911~1969)의 공연 포스터, 그리고 광고지는 그들이 누리던 여가생활이었다. 

지적이고 우아하고 화려한 이들을 바라보는 당대의 시선은 어떠했을까?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었다. 전시관에서는 심훈의 『상록수』(1935)와 김동인의 「김연실전」(1939)을 통해 긍정과 부정의 예를 보여주었으나, 실제로 당시의 신여성들은 대부분 소비의 주체이며, 스캔들의 주인공인 문제적 대상으로 언급되었다. 신여성들이 다니는 학교생활과 그들의 일상생활은 거의 모두가 기삿거리이며 시비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억압과 압박은 점점 강해졌다.

“남자에 지지 아니하는 여자, 여자 때문에 권위를 요구하는 여자, 여자로서 공정한 취급을 받으려는 여자, 그러한 여자들은 언제든지 남자에게 권위의 유린을 당하고 극히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다”<신여성> 4권 10호 26년 10월 「여성계 유기(遊記)」 중며 여성이 지켜야할 십계명 등을 만들어 어머니로서, 현모양처로서의 역할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미 새로운 세계의 문은 열렸고 그 문을 향해 나아가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잡을 수 없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신여성들의 목소리 보다는 당시 대중들이 신여성을 바라보았던 시선에 중점을 두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행동했는가는 보여주어 호기심은 충족되었지만, 왜 그렇게 행동했고, 왜 그렇게 대우받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나오면서 전시실 한 쪽에 소개된 인천출신의 신여성들을 보았다. 김애식(金愛息 1890~1950), 김활란(1899~1970), 김애마(1903~1996), 하복순(1896~?), 하란사(河蘭史, 1875~1919) 등. 그런데 하란사는 평안남도 출신인데 남편이 인천사람이다. 여성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인식되는 것은 9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