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아리랑, 45년에 묻다展>은 현재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의미를 던져주는 전시였다. 이제 이주노동자가 인구의 2%를 넘나드는 시대에 1960년대 파독(派獨) 노동자는 과거를 통해 현재 한국사회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의미를 지닌다. 전시 공간에는 그간 내가 보아온 파독에 대한 책들인 『독일 아리랑』, 『독일로 간 사람들』, 『나는 독일의 파독 광부였다』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파독 광산 노동자들의 인터뷰, 작업장과 일상에서의 사진, 신문 등 당시 기록 등을 보며 이제야 이런 전시가 시작되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2000년에 독일에서 가져온 석탄으로 구성된 조형물들이었다. 독일에서 석탄은 돈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금칠을 한 조형물을 보며 가난을 벗어나고자 한 당대 파독 노동자들의 갈망을 상징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인 광산 노동자의 파독은 1963년에 시작되어 1978년까지 계속되었고, 1980년까지 7,936명의 광산 노동자가, 10,032명의 간호사가 국내로 송금한 마르크화는 차관경제가 본격화되기 전인 당시에 이른바 외화벌이의 수단인 동시에 고용불안 해결의 손쉬운 수단이었다. 이처럼 이들은 국내 잠재적 실업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들의 파독을 경제적인 것, 특히 빈곤을 탈피하기 위한 것으로 단순화할 수 있을까? 2008년 파독 간호사를 인터뷰해서 「이주노동자의 기억-두 파독 간호사 이야기Memories of Migrant Labor: Stories of Two Korean Nurses Dispatched to West Germany」1란 작은 글을 쓴 일이 있다. 당시 내가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던 이주여성의 이주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파독 노동에 대한 지배적 내러티브와는 달랐다. 국가와 민족의 경제성장을 위해 이들이 기여했다든지, 한인들의 성공적인 해외위주 이야기와는 꽤나 먼 거리가 존재했다. 물론 이들의 기억/이야기가 파독 노동에 대한 모든 기억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다만 당대 파독 이주여성들은 독일 병원, 호텔, 요양시설에서 가사와 청소 등 육체 노동서비스로 고생하고 있는 동시에, 빈곤 탈출, 가부장의 보호로부터 이탈해 문란하고 사치를 일삼는다는 지배적 기록과 두 여성이 현재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가 상당히 달랐다.

전시장에서 <고난의 벽을 넘어 기적의 라인강으로>란 다큐는 파독 노동에 대한 다양한 기억의 또 다른 단면이 아니었나 싶다. 가브리엘 마르케스(Gabriel Marquez)가 자서전인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라면, 그들의 독일에서 삶(의 일부)은 그들에 의해 긍정적이며 개인사적으로 하나의 기회였던 것으로 현재 기억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주를 통해 독일인 그리고 자신에게 인정받은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독일로의 노동이주는 가족과 본인을 위한 개별적인 선택이나 국가의 강제적인 조치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한국은 국가주도 산업화 과정에서 도농 간 격차, 도시로의 인구 집중으로 인한 실업 증가에 따른 사회적 균열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의 인력 수출과 이들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수출주도 산업화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독일 역시 독일인들이 기피하는 광산/간호란 3D노동 및 사회적 서비스를 담당할 이주노동자의 확보는 필수적이었다. 패전 이후 미국의 지원으로 급성장한 독일은 자국의 긴급한 노동력을 한국으로부터 공급받았으며, 이 점에서 독일은 서비스노동 분야에서 한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셈이었다.

끝으로 한 가지 제언을 한다면 파독 노동, 파월(派越) 기술자, 중동 파견 노동자 등 산업화시기 한국의 이주노동에 대한 관심을 넘어 체계적인 자료 구축이 필요한 점을 말하고 싶다. 단적인 예로 이들이 생산했던 문서 및 구술 자료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사회적인 관심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현재 이주노동과 과거 한국인의 이주노동/공동체의 연계성을 확보하는 일도 매우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기관, 대학의 자료 수집과 더불어 소박하나마 ‘파독 한인의 역사’를 상설적으로 알리는 전시관이나 박물관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간 해외민주화운동 일환으로 독일 한인사회에 접근하는 경우가 존재했지만, 독일 한인사회는 하나의 층위로 규정하기 어렵다. 파독 이전 경험, 파독 노동자 시기 경험 그리고 독일 정착 이후 경험 등 시기별로 한인사회 구성원들이 겪은 갈등, 어려움 등을 포괄하는 기억에 대한 수집과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독일 이외 지역으로 이주한 파독 한국인들의 공동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숙제를 풀기 위한 첫 단추가 이번 전시였다.

<독일아리랑, 45년에 묻다 展>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