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하면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와 함께 역사가 오래된 충청도의 중심도시로 알려져 있다. 청주의 상징을 말하라면 청주IC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진입로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터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자연환경의 관점에서는 우암산(牛岩山)과 무심천(無心川)을 말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청주시 운천동의 흥덕사지(興德寺址)에서 1377년에 간행된 『직지(直指)』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청주시의 각종 홍보물에 으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를 찾아내어 발굴하고, 이곳이 『직지』의 본향임을 처음으로 알렸던 필자로서는 더없이 기쁘고 보람을 느끼는 일이기는 하지만 아쉬움도 많다. 『직지』가 아직도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서고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쉽고, 인쇄문화의 꽃을 피웠던 청주가 현대도시로 탈바꿈하여 고도(古都)로서의 면모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남석교                                                     남석교 위에 생긴 육거리시장

청주는 백제(百濟, BC18~660) 때는 상당현(上黨縣)으로, 신라(新羅)의 삼국통일(668) 이후에는 서원소경(西原小京)으로, 그리고 고려(高麗, 918~1392)와 조선(朝鮮, 1392~1910)시대에는 청주목(淸州牧)으로 행정과 문화의 중심이었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이건만 지금 청주 도심에서는 이러한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시내 한복판에는 국보 41호인 용두사지철당간(龍頭寺址鐵幢竿)고려시대의 당간이 있고, 상당산성(上黨山城) 조선시대의 산성·흥덕사지·신봉동 백제고분군 등의 사적지 그리고 많은 지방문화재들이 있지만 고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성(古城)과 성문, 관아, 한옥 건물들이 일제강점기에 모두 없어져 버렸으니 아쉬움을 넘어, 청주사람에게는 통한이 아닐 수 없다.

청주읍성은 고려와 조선시대 청주목의 관아와 충청병영이 있었던 곳인데, 1911년에 시행된 시구개정사업이라는 미명하에 흔적도 없이 헐리었다. 또 1930년대 초에는 청주시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무심천의 유로를 변경하면서 청주읍성 남문 밖에 가로놓였던 남석교(南石橋)가 다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방치되다가 결국은 땅속에 매몰되고 그 위에 육거리시장이 형성되었다. 육거리시장은 전국적으로도 꽤 알려진 재래시장으로 매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이 시장의 아스팔트 포장도로 밑에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남석교가 묻혀 있다.

  조선 말기 충남 청양의 선비였던 조충현(趙忠顯)이 남긴 『하주당시고(荷珠堂詩稿)』(1894)에는 남석교 사적비문을 인용하여 이 다리가 “한 선제 오봉원년(漢 宣帝 五鳳元年)” 즉 기원전 57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박혁거세에 의해 신라가 건국된 해와 같은 해이다. 이 기록을 사실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오래된 다리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는 이 돌다리를 대교(大橋)라 하고, 하천 이름을 대교천(大橋川)이라 하였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등 조선 후기의 기록에는 무심천과 남석교라는 명칭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대교’라는 명칭을 통해서 규모가 큰 돌다리임을 알 수 있고, ‘남석교’라는 명칭은 곧 청주 고을 남쪽에 있는 돌다리를 뜻하는 것이니 지금도 이곳의 지명이 석교동이다.

남석교는 청주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읍성의 남쪽 정문인 청남문(淸南門)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여 청주의 관문과도 같은 다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 고려시대에 가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청주에 처음 축조된 서원소경성에 이어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청주시 북문로와 남문로 일대에 읍성이 축조되었고, 조선시대까지 변함없이 읍성과 병영성의 기능을 하였으므로 남석교는 청주읍성과 함께 축조되었거나 또는 그 이후에 가설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석교는 홍수나 하천 범람으로 붕괴되기 쉬운 교량의 특성상 여러 차례 수축이나 개축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두 차례의 개축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의 청주읍지인 『낭성지(琅城誌)』에 계묘년의 대홍수로 남석교의 3칸이 떠내려가자 최상정(崔尙鼎) 목사가 옛 모습대로 다시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상정은 봉조하(奉朝賀) 조선 시대에 종이품의 관리로 사임한 사람에게 특별히 주던 벼슬 최규서(崔奎瑞, 1650~1735)의 아들로 경종(景宗, 재위 1688~1724)과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때 벼슬을 하였던 사람이다. 따라서 계묘년은 1723년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충청도읍지』에는 목사 안정탁(安廷鐸)이 을묘년에 구휼을 베풀고 남석교를 개건하였다고 되어 있다. 안정탁은 1794년에 청주목사로 재임한 것으로 실록에 보이므로 을묘년은 1795년에 해당된다. 여기서 을묘년에 구휼을 한 것과 같은 해에 남석교를 다시 세운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당시의 지방관 재임기간이 매우 짧았던 것을 감안하면 남석교의 개축연대를 1795년으로 보는 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즉 18세기에만 1723년과 1795년에 개축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이에도 개축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기록만을 통해 본다면 1723년 교량의 3칸이 유실되어 일부를 개축하였고, 그로부터 72년 후인 1795년에 전체적으로 개건한 것이다. 아마도 18세기말에 개건된 돌다리가 일제강점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었고, 지금 땅 속에 있는 남석교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일 것으로 생각된다.

남석교 답교놀이


남석교 축조와 관련하여 애틋한 모정이 서린 전설이 내려온다. 신라시대 서원경 남쪽에 있는 남천 즉 지금의 무심천에 외나무다리를 놓고 고을 사람들이 문안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 어느 날 어린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고 있던 과부댁이 시주를 하러 온 대원사(大元寺) 수행승에게 아이를 잠시 맡기고 문안으로 볼일을 보러갔다. 그런데 어린아이를 맡은 수행승이 노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마루에 앉아 잠깐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어린아이가 밖으로 나와 남천 외나무다리를 건너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이 광경을 본 그 어머니는 크게 슬퍼하며 시체를 건져 화장하고는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대원사 주지스님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수행승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큰 불행을 당한 것을 심히 송구스럽게 생각하여, 그 외나무다리를 철거한 후 그 자리에 튼튼한 다리를 놓기로 하였다. 가까운 고을에 있는 중들을 총동원하여 동쪽 선도산(仙到山) 기슭에 막장을 치고 돌을 다듬어 남천으로 운반하는 다리 역사가 크게 벌어졌다. 밤낮으로 돌 깨는 소리와 어린이 영혼을 달래는 진혼경(鎭魂經) 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동쪽 막장에서 돌을 등에 지고 남천으로 이어지는 스님들의 행렬은 근 석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돌로만 조립된 웅장하고 견고한 돌다리가 남천에 놓이게 된 것이니 곧 남석교라는 것이다.

이밖에 『낭성지』에는 청주의 읍기는 본래 용두사(龍頭寺) 터로 절을 폐하고 읍성을 축조하였으나 앞이 개설되지 못하자 용두사 스님들이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대원사와 용두사의 절 이름은 달라도 스님들에 의해 남석교가 가설되었다는 내용은 일치하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남석교는 완전히 지하에 매몰되어 있어 맨홀 뚜껑을 열고 들어가 하수구 벽에 조금 들어난 일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인데, 2004년 11월 필자가 책임을 맡아 부분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오랜 세월 행인의 발길에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진 청판돌, 청판돌을 받치고 있는 멍에, 가석 위에서 청판돌을 고정하기 위한 장귀틀, 하상에 대석을 놓고 세운 3열의 돌기둥, 그리고 제방에 축조된 교두보 등 모든 석재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고, 다리의 규모는 전체높이 2.5m, 폭 4.1m, 길이 80.85m로 파악되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돌다리 중에서 규모와 보존상태가 단연 으뜸가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량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한 이런 돌다리가 하루에도 수만 명이 밟고 다니는 재래시장 도로 밑에 묻혀 있는 기막힌 현실이 너무 부끄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돌다리가 있다. 궁궐이나 사찰에 놓인 돌다리를 비롯하여 서울 중랑천에 놓인 살곳이다리와 충북 진천의 농다리, 그리고 전남 함평의 고막다리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남석교는 아직도 차가운 아스팔트 길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 남석교를 복원하자는 움직임은 1970년대부터 있었다. 필자 또한 2001년에 청주읍성과 남석교의 복원을 위한 학술조사를 실시한 바 있고, 2004년에 남석교에 대한 부분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남석교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파악하여 복원을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남석교를 전면 발굴하거나 복원을 하게 되면 생업에 지장이 있다는 시장 상인들의 거센 반발로 아직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이곳 시장 상인을 제외한 모든 청주시민들은 남석교의 복원을 간절히 소원하고 있다.

남석교는 청주의 명물로 옛날 서원팔경의 하나였으며, 정월대보름에는 어김없이 이 다리에서 자신의 나이만큼 다리를 건너는 답교놀이가 행하여졌던 추억의 장소였다. 남석교를 볼 수 없는 청주시민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청주문화원에서는 2002년부터 매년 정월대보름에 육거리시장 입구에 남석교 모형다리를 만들어놓고 많은 시민이 모인 가운데 답교놀이를 재현하고 있다. 남석교 복원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청주시 당국도 시민들의 염원을 너무나 잘 알기에 금년에는 복원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많은 난관이 예상되지만 청주시민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해 본다.

이미지 제공_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