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천재 예술가들은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유명해진다. 사후에 진행되는 이들의 신화화는 죽은 자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그리움과 연민, 그리고 죄의식이 착종된 것이겠지만 대개는 대중적 상업화의 기획과도 맞물려 있다. 특히 그 죽음이 자살로 추정될 때 대중들의 호기심과 연민은 그 자체가 신경증이라고 할 정도로 격렬하게 고양된다. 요절한 예술가의 작품세계 혹은 그들의 삶이라는 텍스트보다, 그것이 대중의 잠재된 욕망과 결합되어 신화화되는 사회·문화적 메커니즘이라는 콘텍스트가 더욱 흥미로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965년 1월 11일, 31세의 비범한 엘리트 여성 전혜린(田惠麟, 1934~1965)의 돌연한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싸고 사후에 벌어진 신화화는 한국의 문화 풍토에서 보기 드문 강렬함과 지속성을 띠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독문학자로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전혜린은 에리히 케스트너(Erich Kastner, 1899~1974)의 『파비안느Fabian』(1931),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2002)의 『생의 한가운데Mitte des Lebens』, 하인리히 뵐(Heinrich Boll, 1917~1985) 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Und sagte kein einziges Wort』 등의 10여 편 남짓의 번역서와, 19세기 독일 리얼리즘의 선구자 프란츠 그릴파르처(Franz Grillparzer, 1791~1872), 초기 표현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uchner, 1813~1837) 등에 대한 연구논문을 남겼다. 더불어 1966년 발간된 유고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서』(이 책은 1981년에 수정을 거쳐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로 출간됨)는 <사상계>, <여원> 등에 게재한 에세이를 포함해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편지, 독서 노트 등이 ‘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광복 이후 50년간의 베스트셀러’에서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현재까지도 재판을 거듭하며 판매되고 있다. 또한 한국독자들에게 성장소설의 고전 『데미안Demian』(1919)을 탐독하게 만들어 1년에 5만부 이상 팔려 나가는 진기록을 남기게 한 것도 그의 독서 노트 때문이었으며,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1970년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도 그의 유려한 번역과 열성적인 리뷰 덕분이었다. 마치 열병처럼 젊은 세대를 감염시켰던 ‘전혜린 현상’은 ‘독서의 문화사’라는 새로운 지식 장에서 다뤄봄직한 매혹적인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4·19로 추동된 ‘1960년대적인 것’과 전혜린을 접속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작업은 일면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끄럽게 설명되지 않는 균열이 존재한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1959년 봄에 귀국한 전혜린은 서울대 법대 교양학부에 출강할 무렵 4·19를 맞는다. 그러나 그 날에 대한 감상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가르치는 일에 대한 회의와 “신뢰할 수 없는 학생”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1961년 1월의 일기에는, 정치에 의한 사회기구 개혁이나 사회와 인간의 개선이 자기에게는 “결국 헛된 노고로 달리는 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무지개처럼 주어지는 매혹, 환상, 만남” 등은 찰나적이지만 “인생은 길고 긴 회색 항로”라는 것이다. 다만 회의주의자의 낙인을 가슴에 품고서도 시지프스(Sisyphus)나,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1821~1867), 니체(Friedrich Nietzsche, 1821~1867)처럼 “용감하게 운명과 대면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양심 있는 삶”이라고 판단한다. 결국 인생은 무(無)이고,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것은 ‘포즈’뿐이다. 귀국 전의 일기에서도, 독일사회를 사례로 “자유로 믿는 것이 가상에 불과할 때가 허다하고 진보와 동시에 퇴보가 약속”된다는 판단을 적고 있고, 쿠바혁명 1950년대 카스트로(Fidel Castro)의 주도로 쿠바에서 일어난 혁명의 숙청 과정을 “피에 굶주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불쾌’로 기술한다. 요컨대 일체의 실천적 저항이나 혁명적 행위가 본질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허무주의를 전제하면서도 ‘양심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운명과 대면하는 포즈”를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낭만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자포자기의 속물주의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일,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탈속의 세계이다.

한편 5·16 무렵의 일기는 무척 흥미롭다. 밀수선을 나포하는가 하면 식당의 잡곡 혼식 여부를 감독하고, 무허가 댄스홀을 단속하는 쿠데타 세력의 ‘부정부패 척결’에 기대감을 드러내며 “깨끗한 정치가들이 정치를 해준다면 유니폼 입고 잡곡 먹고도 전 국민이 불만 없이 일할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 정권의 ‘정의로운’ 규율이 곧 독재로 나아가는 서막이었다는 것을 당시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전혜린의 기대가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 전혜린이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한 점은 다소 의외이다. 억압적 규율이 내포한 근대적 폭력성을 탈속의 금욕주의와 구별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혜린의 성장환경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혼동은 필연적이다. 전혜린의 아버지 전봉덕은 경성제대 법대 출신으로 고등문관시험을 패스하고 고위 경찰직에 오른 대표적인 식민지 엘리트로, 해방 후 이승만(李承晩, 1875~1965) 정권 하에서도 고위 관료를 역임했다. 또 1960년대 후반부터는 변호사와 법학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계몽주의의 숭배자이고 금욕주의자”였던 아버지의 훈육 탓으로 자연스럽게 “스토아적 육체, 물질의 경멸과 정신의 숭상”을 몸에 익히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에 맹목적이었던 전혜린이 공적 영역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우파 엘리트로서 권력지향의 화려한 행보를 보인 아버지를, 성인이 된 전혜린이 아무런 회의 없이 바라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법학에서 문학으로의 전과, 그리고 남편과의 결별 등은 어느 정도 아버지라는 절대 권위에 타격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비록 전혜린의 금욕주의가 아버지의 훈육에서 출발하였다 하더라도 독일 유학의 구체적 체험과 문학적 표현과 결합됨으로써 아버지의 건조함과는 구별되는 생동감으로 대중에게 향수될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치의 광기에 맞서 싸운 뮌헨대학의 정신적 전통을 누구보다 찬양했던 전혜린이 독일의 파시즘에 상응하는 일본의 그것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과연 이러한 정치성 혹은 비정치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일상, 평범하거나 비속한 일상을 극도로 혐오했던 전혜린은 “인식욕, 지식에의 열망, 관념에로의 도피, 자아 예찬, 성에의 기피와 죽음에의 승리” 등으로 요약되는 데미안의 세계에 자신을 동일시했다. 현대사회의 소외 문제를 심리적인 것으로 축소하고 정신성과 충동성을 이항대립적으로 양식화했던 헤르만 헤세(Herman Hesse, 1877~1962)는 낭만주의적 반자본주의를 갈등과 분열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전혜린의 지향성도 헤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질성에 기반한 일체의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개인주의 혹은 자유주의를 지향했던 전혜린에게 1950~1960년대 한국이라는 시간성, 장소성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전후 한국사회의 서구지향성 혹은 서구를 향한 동일화의 욕망은 지식 엘리트와 일반 대중을 막론하고 공통된 것이었고, 그 지향성의 알맹이는 결국 풍요로운 서구문명의 물질적 부였다. 가시적 세계의 파괴와 비가시적 세계의 해체는 인간적 존엄이나 도덕, 양심보다 치부와 출세의 욕망을 정면에 내세우도록 정당화시켜 주었다. 특히 1950년대는 김현의 말처럼 반공주의의 폐쇄성 속에서도 금지된 영역 밖에서는 서구문화의 수입과 향유가 무차별적으로 허용되는 개방성을 지녔던 시대였다. 따라서 부재하는 것도 많았지만 과잉도 흔했다. 비루함과 속물성은 도처에 넘쳐났다. 전혜린이 그토록 동경하고 탐닉했던 서구문화는 미국의 배금주의가 아닌 유럽의, 특히 ‘뮌헨적’ 금욕주의였다. 전혜린이 직접 체험한 뮌헨은 결코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유럽적인 것, 뮌헨적인 것으로 탈속의 금욕주의를 호명했다는 사실이다. 물질의 결핍과 가난에도 “외계나 속물과 타협하려고 들지 않는 자기 유지의 노력”을 강조했던 전혜린에게 1950~1960년대의 한국사회는 그런 의미에서 화해 불가능한 속물성의 세계였다.

4·19가 비록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개인의 발견’이나 ‘인식의 전환’을 자극함으로써 근대적 시민의식의 성장 기반을 마련해 주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한국전쟁(1950~1953) 후의 베이비 붐 현상, 과잉된 교육열과 무관하지 않으며, <사상계>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의 발간, 번역서를 비롯해 문학과 인문서 위주의 전집 출간 등은 분명 ‘1960년대적인 것’의 성장에 필요한 문화적 자양분을 제공하였다. 대중들은 전혜린의 수필과 『데미안』을 읽으며, “회색의 포도(鋪道)와 레몬빛 가스등”으로 묘사되는 이국의 풍경을 상상하고 순수한 관념의 자유를 동경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이데올로기적 통제 아래 주어진 제한된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불구적이며, 만성화된 자기검열에 노출되기 쉽다.

전혜린은 ‘세계성’에로 열려 있으면서 ‘속물성’을 혐오했던 지식 엘리트였지만, 공동체가 들어설 여지를 봉쇄하고 현실의 고향과 민족을 괄호 쳐 버린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최상층의 예외적인 계급 출신이지만 세태에 대한 부적응과 고립, 여성이라는 위치로 인해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규정하고 싶어 했다. ‘전혜린 현상’은 교육자나 번역가, 수필가로서의 객관적 평가에 추동되었다기보다 자살로 마감한 돌출된 개인사와 타고난 비범성, 서구 추수적 지향성에 대한 대중의 동경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대중들은 동일화의 욕망을 통해 전혜린이라는 텍스트를 전유하지만, 낯선 존재에 대한 타자화 방식을 통해 향수하기도 한다. ‘전혜린 현상’은 전후 한국사회가 추진한 자본주의 근대성의 빛과 그늘, 그 잡종성의 병적 징후들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1960년대적’이다.

니체는 학문과 사회의 지속적인 발달과 진보를 믿으면서 개인의 삶에 내포된 비극적 모순을 부정하는 ‘교양속물’들을 경계했다. 니체에 탐닉했던 전혜린도 현 존재와 기성질서, 사회도덕을 맹신하는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 1758~1794)보다 생의 무의미성과 부조리에 회의하는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1794)을 선호했다. 경쟁의 메커니즘이 사이비 교양인을 생산하고, 물질주의의 속화가 다양한 가치를 압도하는 현재 시점에서, 30, 40년 전의 ‘전혜린 현상’은 그 자체가 아득한 신화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이라는 시간성과 장소성을 고려한 속물성 비판은 그 어떤 가치보다 절실하다. 어쩌면 속물성도 경쟁력을 높이는 자질 리스트에 이미 올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