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45년 8월 15일 제국 일본은 해체되었다. 강상중(姜尙中)의 표현을 빌자면, 근대 일본은 ‘내국 식민지’라 일컬어지는 홋카이도(北海道)나 오키나와(沖繩)를 비롯해, 일본 열도를 벗어나 “전 방위에 걸친 집약적인 방사형의 식민지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제국의 해체와 동시에 이 권역 내의 사람들은 마치 제자리를 찾아 흘러가기라도 하는 듯 이동하였다. 이 같은 사람들의 이동은 그들이 생활해온 사회경제적인 모든 관계의 격변을 동반하는 동시에 제국적 질서의 종언을 의미하는 탈식민화의 일환으로서 전개되었다.

특히 제국의 신민(臣民)으로서 식민지에서 생활해온 사람들의 귀환을 두고 이른 바 ‘인양(引揚げ)’이라 부른다. 지금도 역사 용어의 하나로 사용되는 인양이라는 말은 애초 두 가지의 착시가 예정된 용어였다. 하나는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본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균열과 단절 없이 존속한다는 착시이다. 사실 일본의 패전은 전시기의 국민 혹은 일본인이라는 결속에 균열과 단절을 표면화시켰다. 옛 종주국과 옛 식민지의 차이에서부터, 남성과 여성, 전재민(戰災民)과 비전재민, 본토거주자와 인양자, 전사자 가족의 유무, 옛 식민지민과 일본인 등과 같은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 성별, 계층, 체험의 차이, 지역, 심성 등 전시기와 전후 상황의 차이가 모든 관계에 있어서 국민 혹은 일본인이라는 아이덴티티에 균열을 낳게 만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체험의 서사마저 그 용어 자체가 함의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쉽게 국민적 체험으로 전회됨으로써 제국의 해체 이후에도 균열과 단절 없는 국민의 연속성이라는 착시를 만들어내는 기제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양이라 하면 침몰선을 끌어올린다는 의미를 떠올리듯, 그러한 처지에 놓인 국민들에 대해서 국가권력이 인양의 시혜를 베풀었다는 착시 효과이다. 이렇듯 이 용어는 과거 제국의 역사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했다. 다양하고 개별적인 인양의 개인사는 ‘풀뿌리’ 식민의 역사를 누락시킨 채 국민국가의 서사로 환수될 운명이 이미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패전 직후 일본사회에서는 인양의 서사가 제국주의의 억압과 그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정통으로 삼은 역사관의 뒤에 숨어 그다지 이야기되지 못했다. 또한 그 시기에는 과거 ‘제국’의 역사를 말하는 것 자체를 ‘소아병적’이라고 할 만큼 금기시해 온 경향이 있었다.

2.
1950년대 말 일본에서는 ‘전후’ 논쟁이 벌어졌다. 그때 ‘이미 전후가 아니’라며 ‘전후’의 종식을 주창했던 논자들에게 ‘전후’란 식민지 역사로부터의 구속을 의미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이른바 ‘포스트 전후’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부 식민지 관료 출신자들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식민지 체험을 직접 발화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것은 제국의 역사, 즉 가해자로서의 과거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기획이었다. 사실 이 기획은 1958년 조선근대사를 위한 신진학자들의 모임, 즉 사료연구회가 주도한 것이었다. 이 사료연구회는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카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강덕상 등과 같은 한국 근대사 연구에 있어 기라성 같은 진보적 학자들을 배출한 모임이었다. 그들은 인양 사업을 주도하던 조선인양동포세화(世話)회의 후신인 우방협회의 핵심 멤버인 총독부 고관들을 불러 강연회를 개최했다. 강연자들은 “조선에 살았던 우리들이 과거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그 오랜 경험에 대한 자기비판을 기초로 하여 일반의 이해와 보급에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견지에서 식민의 역사를 직접 발화하기 시작했다.(그 기획의 결과는 가쿠슈인(學習院)대학의 동양문화연구소에 녹취기록물로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인양의 방대한 기록물들이 체험기나 사진집으로 제작되어 출판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마치 여러 민족이 혼거(混居)하던 사회가 최종적으로 붕괴하는 장면을 독자들에게 제공한 것이었다. 『해외 교포 인양의 기록-조국에 대한 간절한 모정(在外邦人引揚の記?-この祖?への切なる慕情)』(1970), 『1억인의 쇼와사 4-공습·패전·인양(一億人の昭和史4 空襲·敗戰·引揚)』(1975), 『1억인의 쇼와사-일본점령 1 항복·진주·인양(一億人の昭和史 日本占領1 降伏·進駐·引揚)』(1980)과 같은 사진집들이 발간된 예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인양은 오로지 고난으로 가득 찬 일본인의 체험, 즉 피해자적인 기억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문학계에서도 역시 일본의 ‘전후’ 문학의 종착점을 제시하고, 동시에 재일문학이나 식민 2세들의 문학을 그 ‘포스트 전후’ 문학의 안으로 포섭함으로써 역사화하려는 흐름이 일어났던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흐름 속에 식민 2세 출신자들의 체험기가 다수 출판되었고, 그 같은 식민의 기억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 국민적 고난의 역사로 전회되어 오히려 내셔널리즘 재생의 서사나 복고주의적 노스탤지어의 서사로 읽히기 시작했다.

3.
생사의 고비를 넘어 만주에서 남하하는 한 가족. 세 아이를 업고, 안고, 손잡고, 여자 혼자서 굶주림에 허덕이며 향하는 패전 국민으로서의 귀향길. 그들은 일본인으로서의 자기를 감추고 얼마 전까지 지배자로 군림했던 조선 땅을 지난다. 때로는 구걸도 하고 때로는 죄인이 도망친다는 손가락질까지 받았다. 생사를 넘나든 시간. 조선인의 작은 친절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지배-피지배의 위계가 전복된 시간. 식민지배의 과거는 없다.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떠나는 고행. 이윽고 부산에 도착한 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산을 뒤로 하고” 배에 오른 그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카타(博多) 항에 도착한 후 후지하라(藤原)가 처음 발견한 것은 바로 ‘나’와 일본 여자와의 차이였다. 자신도 여자였다는 새로운 자각. 내지의 동족 여자와 자기를 변별하는 화자의 의식은 바로 국민이라는 동일성에 대한 와해의 지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과의 상봉, 즉 국민적 동일성의 복구를 통해 그 와해의 순간은 봉합되어 안도로서 인양의 서사는 마무리된다.
이 내용은 패전 후 인양 서사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작품으로 역시 후지하라 테이(藤原てい)의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流れる星は生きている)』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번역된 이 작품은 원래 1949년에 처음 발표되어 이후 꾸준히 재출판된 것은 물론 영화, 연극, 드라마 등의 다양한 장르로 재창작되어 대중적 인기를 누린 베스트셀러이다.

1945년 8월 15일, 그날을 경계로 한반도에서는 일본의 통치기구 및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관계가 확연히 바뀌기 시작했다. 패전 당시 무려 70만 명이 넘는 재조일본인은 이른 바 ‘옥음(玉音)방송’ 즉 천황의 항복 선언을 듣는다. 일부 관료들의 경우 단파 라디오를 통해 전세가 불리해졌고 곧 패전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회고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반 민중의 경우는 그 방송 이후 패전을 인지했다. 그들 사이에는 허탈, 분노, 초조, 불안 등 여러 감정들이 착종하는 가운데, 관료 출신자들을 중심으로 경성 거주자 보호를 비롯해 만주 및 조선 각지로부터 온 피난민과 인양자에 대한 처우 등 민간인 대책을 실질적으로 담당할 조직을 만들어갔다. 그것이 이른 바 경성내지인세화(世話)회였다. 그것은 ‘군과 같은 힘도 없고, 관과 같은 조직도 없었던’ 민간조직이었다. 그들의 회고에 따르면, 당초 일본 정부는 식민지 거주 일본인에 대해서 “가능한 현지에 잔류하여 공존공영의 생활을 지속할 것”을 권고했기에 장차 거류민회로 개편할 것을 계획하는 등 잔류할 의사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무지각은 오래가지 않았고 조선 내 정세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성내지인세화회라는 조직명에서 내지인을 일본인으로 변경했다. 조선 및 조선인에 대해서 자신들을 상대화하는 동시에 본국의 일본인과 동일화하려는 이런 움직임은 실제 생활에서는 인양을 기다리며 일본인으로서 자기를 감추는 보신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미군정은 재조일본인들에게 귀국 희망자를 포함해 ‘분명한 직업이 없는 자, 체재가 필요 없는 자’에 대해서 조선에서의 퇴거를 명했다. 이듬해 1월에는 총인양(總引き揚)의 방침이 확정되고 4월까지 3만 명에도 못 미치는 일본인만이 남한에 잔류했다.

그에 비해 북한에서는 소련이 일본인의 송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양이 난항을 겪었다. 전투, 피난, 억류 등에 따른 북한에서의 사망자는, 한 통계에 따르면 군복무자나 만주로부터 건너온 피난민을 포함해서 3만 5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양의 서사물 중 극적인 면이 부각된 작품은 대개 북한 거주자나 만주 출신 피난민의 체험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다. 가령 앞서 언급한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는 물론이고, 만주 출신으로 고향 상실과 무국적(無國籍)적인 표류성을 그린 아베 코보(安部公房)를 비롯해 식민 2세의 자의식을 기반으로 해서 미야오 토미코(宮尾登美子), 고토 메세이(後藤明生), 모리사키 미나토(森崎湊), 이쓰키 히로유키(五木?之) 등 일본 문단 내 굴지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그 범주에 속한다. 이들은 대개 1960년대에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그들은 식민지 출신이라는 자의식이 만들어낸 ‘원향’으로서의 식민지=고향과 조국=이향(異鄕)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주로 그려냈다. 그것은 어쩌면 ‘전후’ 논쟁이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그 시대를 읽는 시대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평론가는 그것을 가리켜 ‘인양자 정신’이라고 칭한 바 있다. 그만큼 일본문학사에서는 이질적인 일면을 지닌 그들의 작품에는 일종의 아나키즘적인 상태에 대한 회귀 갈망이 내재되어 있었다. 한편,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면서 공동체에 대한 피해자 의식이 충만한 것이기도 했다. 공동체 의식과 전통 의식 안에서 쉽게 회수되는 일본인 안에서 그런 그들의 정신은 개인에게는 개인의 사정이 있다는 식의 너무도 확연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그 개인의 고난 서사가 쉽게 민족의 고난 서사의 차원으로 전화되어 읽혔던 전후 일본사회의 맥락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 우리는 왜 그들이 귀환해야만 했는가 혹은 인양되어야만 했는가 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서사의 원점에 대해 다시금 묻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