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여 전 박진영은 “이제 동아시아에는 중국판 비, 태국판 동방신기 같은 가수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스포츠조선>, 2007.7.2)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의 비즈니스맨 감각은 들어맞은 것 같다. 이미 ‘태국의 동방신기’는 존재한다. 케이오틱(K-otic)이라는 5인조 그룹인데,  2009년 10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송페스티벌Asia Song Festival>의 무대에 섰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룹의 멤버들 가운데 일본계가 두 명, 그리고 한국인이 한 명 있다는 점이고, 한국인 멤버는 가끔 한국어로 랩을 하기도 한다. 한국가요, 이른바 ‘케이팝(K-pop)’은 이제 아시아로 완성품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 ‘포맷’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박진영의 발언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그런 현지인 스타를 우리가 키우는 거다. 그래야 한류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발언은 아직 충분한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박진영의 회사인 JYP엔터테인먼트는 중국과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 스타의 발굴을 수행해 왔지만, 아직 ‘대박을 기록했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시장의 진출이 어려운 것이야 인종주의 등의 각종 문화장벽으로 설명하고 위안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이 만만하게 보는 중국시장은? 1년 반 전 쯤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발굴하여 데뷔한 발라드 가수 리우 씬(劉?)에 대한 더 이상의 뉴스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곳 사정도 만만치는 않은 모양이다.

오케이뱅(OK bang)

그 사이 ‘중국판 비’는 나왔는가? 비를 꼭 그 가수 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미 나왔다. 몇 달 전 한국의 인터넷 검색순위에도 오른 ‘중국판 소녀시대’인 아이돌걸스(愛?女孩), ‘중국판 빅뱅’인 오케이뱅(Ok Bang)이 그들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한국인 음악 팬들의 반응은 이들이 ‘짝퉁’이라는 견해가 우세해 보인다. 이러한 견해는 단지 이들의 특별한 케이스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문화 전체의 특징으로 비화할 때도 종종 등장한다. ‘한국대중음악이 워낙 인기가 있으니까 베끼는 것 아니냐?’는 식의 민족적 자긍심의 코드를 내세우는 반응도 있지만, 이런 견해도 중국문화 전체에 대한 비하를 전제하는 것 같다. 유투브(youtube)에 올라간 아이돌걸스의 동영상에 대해 “그만 좀 베끼고 창작 좀 해라. 남의 나라 꺼 베끼기만 하고.인구 많고 자원 많으면 뭐 하냐 국민의식이 이따구인데”라는 답글을 단 사람의 의견이 얼마나 일반적이지는 모르겠지만, 한 인터넷 신문의 기사 제목이 “촌스러워‥中, ‘짝퉁’ 빅뱅 ‘오케이뱅’ 등장”이라면 한국의 국민의식 수준도 그리 높은 것 같지는 않다. 국민의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식의 수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라는 논란은 차치하고 말이다.

그런데 상대방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과연 한국의 아이돌들은 ‘진정으로 오리지널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소녀시대가 처음 나왔을 때 일본의 걸 그룹을 연상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본대중음악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는 사람일 것이고, 빅뱅의 음악을 들어 보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영미 팝과 담을 쌓고 지낸 사람일 것이다. 가수 비가 2005년 12월 매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에서 공연을 가진 직후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서 “1980년대 뮤직비디오를 한국어로 더빙해서 틀어놓은 것 같다”라고 말한 것은 그저 미국인의 인종주의적 편견일 뿐일까. 기억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한류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1990년대에는 일본가요 표절이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왔다. 그때 일본인들 가운데 한국가요 전체를 ‘촌스러운 짝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없었을까?

이상의 진단은 중국문화를 옹호한다거나 한국문화를 폄하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대중음악을 논할 때 국가나 나라 등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대중음악은 세대, 인종, 성별 등의 정체성과는 긴밀하게 연관되지만, 국가적 정체성과는 생각만큼 밀접한 관계가 없다. 이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나 대용량 MP3플레이어에 저장된 음악 파일들의 목록을 훑어보거나, (아직 CD를 듣는 사람이라면) CD가 꽂혀있는 서가를 훑어보기를 권한다. 그런 뒤에도 ‘그래도 한국대중음악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음악들의 ‘한국적 성격’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국산 가요라는 것이 음악적 내용과 형식의 국가적 성격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대중음악에서 국산의 비중이 높은 것은, 역설적으로 대중음악이 다른 문화적 형식에 비해서 국경을 쉽사리 넘나들고 그 결과 차용(borrowing), 전유(appropriation) 등의 실천이 광범하게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유행에 뒤떨어진 용어를 사용하면 혼종화(hybridization)는 대중음악의 실천에서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다.

아이돌걸스(Idol Girls)


소녀시대와 빅뱅 없이 아이돌걸스와 오케이뱅을 생각할 수 없다면, 어셔(Usher)와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없이 비와 세븐을 생각할 수도 없다. 이런 말이 차용, 전유, 번안 등의 과정이 ‘별 것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은 이른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초국가적인하고 트랜스컬처럴(transcultural) 2개 이상의 문화에 걸친하며, 그 과정에서 창백한 모방이 나올 수도 있지만 뛰어난 (재)창조가 나올 수도 있다. 더도 덜도 없이 케이팝의 원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생각해 보면 된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차용하고 전유하는 방식에 국가적 특징이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을까? 이를 그 나라 민족 불변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아주 가설적이지만, 일본의 대중음악이 서양(아메리카)의 영향을 동양(아시아)이라는 필터에 의해 원만하게 매개하고 그 결과를 치밀한 방식으로 토착화한다면, 한국의 대중음악은 서양(아메리카)의 영향을 적절히 소화하지 않은 채 교잡시켜서 돌연변이를 만들어 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지배적 장르의 경우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케이팝이 제이팝(J-pop)보다 더 미국적으로 들린다”고 말한다면 말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아주 뛰어난 뮤지션이 가끔씩 혜성같이 튀어나오지만, 음악의 전반적인 질은 일본이 몇 단계 높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점과 무관치 않다. 

그렇다면 중국은? 또 하나의 가설이지만 중국은 주변의 모든 영향을 흡수하고 얼마 지나면 그것을 중국산으로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산 대중음악은 그 ‘주변의 모든 영향’ 중하나일 뿐이다. 이는 아이돌걸스를 보도하는 한 중국 미디어의 태도에서 드러난다.1 이 보도는 소녀시대를 원판(原版)이라고 부르고 아이돌걸스를 ‘루메이(陸妹)’대륙의 여동생이라는 뜻, ‘산차이(山寨)판’모방판, 복제판이라는 뜻이라고 칭하면서 두 그룹을 상세하게 비교한다. 한국에서 어떤 그룹이 외국 그룹을 참고한 것이 드러나면 오리발을 내밀거나 수줍게 시인하는 것과는 영 다르다. 또한 한국의 미디어들은 자기가 관련도 없으면서 ‘수치스럽다’고 할 텐데, 중국 미디어는 태연하다.

결국 짝퉁 소녀시대, 짝퉁 빅뱅 사건은 중국의 수입대체가 시작된 징후다. 한국대중음악이 중국에서 인기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인기로부터 기대할 경제적 수입은 많지 않다. 불행히도 박진영과 이수만의 현지화 전략보다 현지 연예산업에 의한 수입대체 전략이 더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따라서 ‘짝퉁’들은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차용과 번안의 실천 중 일각일 뿐이다. 그런데 케이팝이 이렇게 복제하기 용이한 생산물이라는 것을 한국인들은 애초에 몰랐던 것일까? 케이팝은 처음부터 트랜스내셔널했다. 이제 그 트랜스내셔널 플로우(transnational flow)초국가적인 흐름에서 내셔널 스톡(national stock)국가 소유의 상품을 주장하는 일이 쉽지 않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