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에 죽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1942~1970)가 새 음반을 내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요즘 빈번하다. 이미 멤버 두 명이 세상을 떠난 비틀즈가 완전히 새롭게 단장한 리마스터링(remastering) 음반을 내는가 하면 마이클 잭슨(Michael J. Jackson, 1958~2009)의 미발매 트랙들은 이미 몇십 년에 걸친 발매 계획이 세워졌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지미 헨드릭스의 미발매 트랙들을 담은 새 음반 <밸리스 오브 넵튠Valleys of Neptune>에는 모두 12곡이 들어 있다. 크레디트(credit) 제작자, 작곡가, 작사가, 가수 등 음반 제작에 참여한 자들의 정보에 엔지니어 에디 크라머(Eddie Kramer)의 이름이 보인다. 지미 헨드릭스의 명반들을 녹음했던 1960년대 최고의 레코딩 엔지니어의 한 사람이다.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람답게 현대적인 믹싱 기법을 통해 사운드 질을 향상시키면서도 오리지널의 분위기를 살려내는 데 비교적 성공하고 있다. 록 음악은 스테이지의 음악이면서 동시에 스튜디오의 작품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대로 지미 헨드릭스에게 사운드 스튜디오는 예술적 집이자 또 하나의 무대였다. 그 집에서 산 시간들의 기록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새 음반에는 이미 발표된 곡의 미발매 버전도 있고 타이틀곡처럼 완전히 처음 공개되는 곡도 있다. 록 팬이라면, 40년 만에 공개되는 지미 헨드릭스의 ‘최신 곡’을 들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리라. 물론 이 음반에 담긴 곡들의 가치를 가령 불후의 걸작 음반인 <일렉트릭 레이디랜드Electric Ladyland>(1968)에 수록된 마스터피스들과 똑같이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후에 나온 많은 음반들이 라이브 음반을 제외하고는 생전에 발매된 음반들의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죽기 전에 영원의 작업을 마친 상태의 초인은 그 이상의 자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번 음반에서도 <블리딩 하트Bleeding Heart>나 <레드 하우스Red House> 같은 곡에서 지미는 명연주를 들려주지만, 이미 수많은 이본들을 통해 확인된 경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 음반은 특별한 매력과 흥미로운 의문들을 제시한다. 타이틀곡 <밸리스 오브 넵튠Valleys of Neptune> 같은 괜찮은 노래가 그동안 왜 목록에서 빠져 있었을까. 자세히 들어보니 답이 나온다. 후반부에 지미 헨드릭스라면 반드시 솔로를 했어야 할 대목이 있는데, 빈자리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 곡은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닌 것이다. 이런 불완전함 자체가 내게는 역설적으로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리듬기타 반주를 하면서 그 위에 더빙될 자기 자신의 솔로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지미 헨드릭스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약간의 머뭇거림, 기대감, 그런 것들이 리듬기타를 치는 손의 터치에서 전해진다.

보컬 트랙이 빠진 <룰러바이 포 더 서머Lullaby for the Summer>에서는 지미 헨드릭스가 더 오래 살았으면 어떤 방향으로 갔을까를 짐작하게 한다. 헤비한 음향들의 중첩보다는 리듬을 보다 중시하고 펑키한 맛을 살리는 쪽으로, 다시 말해 리듬 앤 블루스의 정통성에 대해 자각하는 쪽으로  지미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까.

음반의 마지막 곡인 <크라잉 블루 레인Crying Blue Rain>은 가사가 완성되기 이전의 단계를 보여준다. 단지 허밍으로 보컬 라인을 짚어나갈 뿐. 그런데 듣다 보면 가이드 보컬의 읊조림이 너무 자연스럽고 스스럼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현장감은 완성된 가사가 입혀진 후의 보컬 트랙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살아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후반부로 가면 아직 멜로디 라인도 완성되지 않아 리듬 파트만이 묵묵히 곡의 프레임을 쌓아올리는데, 이 미완성의 골조가 노출하는 여백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들린다. 거 참 이상하지. 비록 1987년에 오리지널 드럼 파트, 베이스 파트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의 오리지널 멤버들인 노엘 레딩(Noel Redding)과 미치 미첼(Mitch Mitchell)이 재녹음하긴 했으나 곡의 구성이라든가 리듬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이 또렷이 들리는 재미난 곡이다.

이처럼 레코딩 현장은 늘 그 시간의 공기를 붙들어 낸다. 소리는 공기의 떨림이기 때문이다. 지미 헨드릭스가 세상을 떠나기 네 달 전인 1970년 5월의 공기가 40년 후 내 귀로 전달된다. 그것이 이 음반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다.
최근에 이렇다 할 록의 대가들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너바나(Nirvana) 이후로, 뭐랄까, 록은 젊은이들의 문화 현장에서 약간 레저로 취급받는 감이 없지 않다. 거장들의 휴지기라고나 할까. 그러니 팝은 자기 무덤을 파헤쳐 발굴한 옛 대가들의 신화를 통해 연명하는 수밖에 없다. 반면 록 음악계 자체는 계속 성숙해 가고 있다. 록 음악도 이제 환갑이다. 헨드릭스의 새 음반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Aron Presley, 1935~1977)의 등장을 기점으로 이미 환갑이 되어가는 록 음악의 나이를 실감하게 한다. 늘 젊기만 했던 록 음악에도 언제부턴가 ‘클래식 록’이라는 장르명이 자주 쓰인다. 지미 헨드릭스는 클래식 록의 가장 중요한 뮤지션. 왜냐하면 그가 록 음악의 사운드를 완전히 뒤집어 지금의 스타일로 물길을 잡아놨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신화는 록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화려해져만 간다. 어쩌면 영원히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는 그의 신화를 이번 새 음반이 반증하고 있다.

음반 <밸리스 오브 넵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