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뭍을 그리지 않을 리 없다. 연육교(連陸橋)라는 말에는 뭍과 바다를 잇는 기능적인 의미 외에 본토인 뭍에 대한 본원적인 그리움이 배어있다. 그래서 섬(나라)은 항상 제 정체성의 본령을 제 땅 외에 내륙의?문화에?기대두고 있는지 모른다. 일본의 그러한 문화적 향수는 아주 본원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본원적인 문화에 대한 향수가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지경이 바로 문화, 특히 그림에서 두드러진다. 일본에게 있어 그런 그림에 대한 기호는 다른 여타 장르의 그것보다 더 가혹한 매혹을 그들 자신들에게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조선의 서화(書畵) 한 점을 구하기 위해 조선통신사 행렬에 연줄을 대보려는 일본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말도 그런 보편적인 향수를 증거한다.

<일본에서 돌아온 조선 그림展>이 표방하는?‘500년 만의 귀향’은?어쩌면?우리 옛것의 단순한 귀향이 아니라, 저 섬나라 일본인들의?마음, 그 미의식의 귀향이 아닐까 싶다. 저들 섬나라 일본 것에 부수적으로 보태졌던 우리 것이 아니라, 저들이 흠모해 마지않던 본향(本鄕)의 그림들 일부가 귀향한 것이다. 어쩌면 이런 노력의 일부는, 귀환보다 귀휴(歸休)의 성격이 강하지 않은가 싶다. 그동안 여러 형태로 이동해 간 우리의 문화재, 특히 서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 수많은 옛 그림들 중의 일부가 다시 수집되고 수습되어 우리 땅에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우리 문화재는 아직도 일본 땅에서 낯선 진경을 도모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조선 이후 우리 옛 문화의 진수가 우리의 오감과 영혼을 흔들기도 전에 섬나라의 문화적 볼모로 잡혀 있기에, 작금의 귀향은, 귀향이 아니라 일시적인 귀휴의 성격이 짙다.

이번 ‘돌아온 조선 그림’들의 연대는 고려시대에서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두루 편재한다. 이름이 있는 화원(畵員)의 것에서부터 이름 없는 무명 화인(畵人)의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다양성은 그림의 화재(畵材)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중국의 고사(故事)를 인물과 산수로 표현한 고사도(故事圖)나 영모(翎毛), 준마(駿馬), 맹호(猛虎), 서수(瑞獸) 등으로 대표되는 동물화, 북송산수화(北宋山水畵)의 영향이 느껴지는 조선 초, 중기의 산수화 및 근대적 화풍이 느껴지는 조선 말기 무렵의 산수화가 그것이다. 하여, 일본에서 귀향했다는-정밀한 의미에서는 유현재(幽玄齋)라는 개인수집가의 미술품의 일부라는 한계를 놓고 보더라도-이 전시의 흐름은 다분히 하나의 맥락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각기 다른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그림들은 <방목도(放牧圖)>라는 아주 정치하고 세밀한 15세기 전후의 견본수묵채색화에서부터 무명 화인의 평범한 화취(畵趣)가 느껴지는 학(鶴) 그림, 범(虎) 그림 같은 지본채색화(紙本彩色畵)도 있다. 물론 무명이라고 해서 다 치졸하지는 않다. 작가 미상의 16세기 전후의 <송파휴금도(松坡携琴圖)>나 정밀한 필치의 채색이 느껴지는 <세마도(洗馬圖)>나 <방목도>, 호탕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민화풍의 호랑이가족 묘사가 일품인 <호작도(虎鵲圖)>는 유무명에 관계 없이 충분히 눈길을 잡아끄는 매력이?넉넉하다. 거기에 더하여,?문인화가가 일컬어지는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선면도(扇面圖)>나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의?산수화는?일정한 화격(畵格)을 담지한 채 관련 그림들과의 조화를 꾀하는 듯 보인다.?

작자미상, <방목도>(15~16세기)

그러나 여전히 이번?전시가 가지는 한계는 그리 많지 않은 옛 그림의 숫자가 아니라, 이번 전시를 꿰뚫고 흐르는 그림들의 내면을 하나의 방향으로 조율하지 못하는 것이다. 각기 아무리 의의있고 매력에 값하는 가치의 그림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전시 속에서 녹아나지 못하면, 그것은 전시로서는 큰 감응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각각의 개성과 화취를 개성적으로 발현하면서도 그것들이 서로 삼투하고 발산하며 드러내는 공통의 화두나 공안(公案)이 없다면, 그것은 아수라의 흩어진 그림 조각들에 불과하다. 이미 기획자도 짐짓 기미를 감지했으리라 여겨지지만, 이?귀향전의 의미는 조선의 그림을 아꼈던 일본인들, 특히 그걸 소장하고 아꼈던 부류들, 섬나라 일본의 미의식을 올곧게 드러내는 데 있다. 그래야지만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경로로 일본에 넘어갔던 우리의 서화가 갖는 본원적인 아름다움과 화의가 오늘날 아픈 위로와 자긍심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건 아주 미세하고 정밀한 작업일 수가 있을 것이다. 같은 일본이라고 하더라도 소장자의 개별성과 미의식의 편차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극복하고 하나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번 기획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으면 한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일본으로 넘어갔던 그림들을 하나의 테마나 콘셉트로 규정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하지만?그것을 소장했던 계층이나 부류들의 소장기(所藏記)가 붙은 그림이나 그것을 주로 소장했던 계층, 혹은 역으로 당시 국내에서는 이름이 없음에도 섬나라에서는 귀히 보관됐던 국내 화인들의 아호나 예명이 주류를 이루는 그림들은 이번 귀향전이 앞으로 좀 더 맥락과 동기를 갖는 기획으로 진일보하는 계기가 아닐까 싶다. 앞서, 돌아온 조선 그림전이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귀휴인 것은, 그것이 다시 섬나라로 되돌아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아직도 섬나라 일본땅에서 우리 조상의 숨결과?고유한 미의식을 간직한 채?유폐돼 있는 그림들에 대한 끈끈한 문화적 혈연을 쉬 잊어버릴 수 없는 이유에서다.

이미지 제공_ 학고재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