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인구의 10%가 65세 이상의 노인이라고 한다. 너도 나도 노인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노인에 대해 부쩍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화, TV, 연극 무대 역시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대나 스크린 속의 그들은 관심과 연민의 대상이었고, 나아가 희극적 성격으로 재발견되기도 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이 잦아질수록, 노인은 실제 삶을 벗어나서 이미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연극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의 묘미는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데 있다. 등장인물이나 이야기가 작가의 실제 체험에 기대어 있다니, 모처럼 ‘진짜’를 만난 셈이다.

연극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 한 장면

극장에 들어서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오롯이 관객을 마주하고 있는 영정 사진 하나다. 허공에 떠돌던 향내가 코끝에 스밀 무렵 무대가 밝아온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목탁소리가 잔잔하게 빈 공간을 채우자 노년의 두 남자가 허둥거리며 뛰어 들어와 사진 앞에 엎어진다.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은 죽은 친구의 영정을 앞에 두고 세 친구와 전처가 나누는 이야기이다. 인물들이 속내를 풀어 보이자, 삶의 속살이 허물을 벗듯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플롯은 주목할 만한 사건 없이 죽은 친구를 떠나보내는 등장인물들의 추억과 회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극의 가장 큰 장점은 삶의 질곡을 보듬으며 그 바닥을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네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솔직함에서 온다. 툭툭 불거지듯이 던져지는 인물들의 언어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 그 바닥을 짚어본 자의 절실함이 묻어난 사유의 흔적은 화려하지 않더라도 고졸한 진정성으로 넘쳐난다. 극장을 벗어나면서 몇몇 대사를 입속에서 되뇌었던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반복되는 상갓집의 풍경이 그다지 새로울 것 없이 전개되자 이야기의 긴장감은 떨어지고 만다. 죽은 인물의 전처인 홍여사가 등장하고 나상일과 홍여사 사이의 과거 하룻밤에 있었던 사건이 일순간 뜻밖의 긴장감을 불러오지만, 젊은 시절의 실수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처럼 갈등이나 사건이 없이 인물들의 대사에만 기대어 극이 전개되자 중반 즈음 관객의 시선은 무대로부터 흩어져 버린다. 죽음이 소재여서인지 음울한 노년의 자조적인 푸념 역시 관객의 관심을 느슨하게 풀어버리고 만다.   

권성덕의 연기가 유독 빛났던 것은 나상일 역을 통해 편안함과 진정성으로 관객을 매료시킨 때문이다. 서우만 역 이인철의 희극적 성격 역시 음울한 무대 풍경에 삶의 활기를 불어 넣었던 요소이다. 두 배우는 극 중 인물들의 연륜이 자신들에게 근접해서인지 인물들의 심리를 묘파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탁월하다. 그러나, 이영호 역 이호성과 홍여사 역 손봉숙의 모습은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이호성은 노인의 모습을 외형적으로 만들면서, 손봉숙은 홍여사의 역할에 잦아들지 못하면서 불편함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특히 살풀이 장면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결과로, 대사가 전하는 노년의 고독과 회한은 정서로 몸을 통해 관객이 감지해야 하지만, 설명적으로 보이기에 감정의 소통은 차단되고 만다. 극의 말미에서 친구의 화장을 끝낸 인물들의 모습이 밝은 조명 속에서 한결 밝게 빛났던 것은 이들의 심리가 조명을 통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소주를 마시는 마지막 장면은 이 공연의 백미로 자조적인 분위기를 극복하고 삶의 낙관적인 여운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메타극적 요소로 극적 구성을 한결 정교하게 조각해낸 데서 탁월하다. 
      

이미지 제공_ 극단 산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