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에 중국의 저명한 사상가 리 쩌허우(李澤厚)의 공자(孔子, BC551~ BC479)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글을 다소 흥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뇌리에 생생한데 어느덧 공자의 지위는 중국문화 혹은 중국의 한 상징으로 변화한 느낌이다. 공자라는 존칭을 쓰지 않고 공구(孔丘)라고 그냥 이름을 부르거나 “콩라오얼(孔老二)”공자를 경멸해서 부르는 말로 공씨 집안 둘째 녀석이라는 뜻이라고 부르던 게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이다. 문화대혁명(1966~1976) 당시에 사인방1은 존공파(尊孔派)의 대표자격인 펑 여우란(馮友蘭, 1894~1990)을 동원해서 공자를 반동적 인물로 매도하는 대대적 군중운동을 벌이기까지 했다. 원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수천 년 전의 인물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부침을 거듭하는 것은 아마도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일 게다. 도대체 공자 더 나아가서 유가(儒家)사상이란 중국인들에게 어떤 것일까. 근자엔 신좌파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는 깐 양(甘陽)이 중화인민공화국의 함의는 바로 유가사회주의공화국이라는 주장을 펼쳐 파란을 일으켰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년의 의미를 탐색하면서 제기한 주장인데 우리에겐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영향력은 사상 문화계에서 결코 간단치 않다. 그에 따르면 중화의 의미는 중화문명인데 중화문명의 주축은 유가를 주로 하여 도가, 불교 및 기타의 문화요소를 포함한 것이다. 인민공화국의 의미는 자본의 공화국이 아니라 노동자, 기타 노동자를 주체로 하는 전체 인민의 공화국임을 표명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회주의공화국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유가사회주의공화국이라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서 중국의 세 가지 전통의 융합을 주장한다.(通三統) 세 가지 전통이란 첫째 마오 쩌동(毛澤東, 1893~1976) 시대가 형성한 평등과 정의의 전통, 둘째 개혁개방 이래의 전통 즉 시장 경제가 중심이 되어 도출된 자유와 권리의 전통, 셋째 중국문명이 수천 년 동안 형성해온 문명전통 즉 유가전통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전통을 연속적으로 잘 융합시키는 것이 중국이 나아갈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건 그의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작금의 중국의 현실을 관찰해 볼 때 중국은 사실상 이런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중국의 변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 <공자>는 주목해야 할 영화이다. 우선 공자와 같은 사상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중국적 특색”이 있는 현상이다. 생각해보라. 소크라테스(Socrates, BC469~BC399)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그리스나 유럽 혹은 미국에서 만들어졌는가. 과문의 소치인지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공자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인 『논어(論語)』를 읽어본 사람이면 느끼겠지만 공자를 영화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알다시피 논어는 공자와 제자, 공자와 당시 정치가가 나눈 대화, 혹은 공자 자신의 독백 등이 단편적으로 엮어진 책이다. 영화로 만들기에 좋은 무슨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공자처럼 중국문화의 한 상징으로까지 부상한 인물을 다룬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는 일이다. 잘못하면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사실 나중에 혹평을 많이 받았고 젊은 평론가로부터는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영화라는 비난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몇 가지 점은 흥미로웠다. 비록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상영되어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화려한 3D영화 <아바타Avatar>(2009)와 대결하는 형세가 되어 <공자>는 빛이 많이 바래 버리기는 했지만. 

먼저 공자를 손자(孫子)처럼 병법에 능한 전략가로 묘사한 부분과 노자(老子)와 공자가 만나는 부분이다. 협곡 회맹에서 공자는 기지를 발휘하여 제나라 군대를 물리친다. 이를 두고 증점(曾點)이라는 제자는 “전쟁이란 정공법으로 맞서고 기계(奇計)로써 승리해야 한다”는 공자의 평소 인식 때문에 승리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런 장면을 두고 공자를 손자처럼 그렸다고 혹평하지만 사실 공자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지략이 풍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휴삼도(?三都) 왕과 힘 있는 귀족이 연합해 대궐 같은 신하의 집이나 신하가 전권을 휘두르는 세 곳을 친 사건의 정책을 집행할 수 있었으며 천하를 주유하면서 난세에 여러 임금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또한 노자가 공자에게 가르침을 선사하고 공자가 겸허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감독이 공자를 높이기 위해 편협하게 다른 사상가와 공자를 서로 배타적으로 그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이 점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공자를 ‘상갓집 개’처럼 묘사한 장면이다. 이 부분에 민감한 이유는 2007년에 『상갓집 개(喪家之狗)』라는 논어 해설서가 출판되었다가 논쟁이 벌어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리 링(李零)은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로 고문헌 고문자학 방면에 탄탄한 실력도 갖춘데다가 글을 통쾌하고 리버럴하게 잘 쓰기 때문에 상당한 독자를 거느린 학자이다. 그런데 ‘상갓집 개’라는 제목 때문에 리 링은 유가를 옹호하는 문화보수주의자들로부터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다. 이어서 리 링의 저작을 옹호하는 측과 비판하는 측이 한바탕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까지 하였다. 당시 이러한 논쟁을 접하면서 깜짝 놀랐다. 이 표현이 21세기 중국에서 그렇게 민감하단 말인가. 공자에 대한 이런 풍자적 표현은 『사기(史記)』라는 역사책에 본래 나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유가문화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이 제목은 상당히 불경스럽게 생각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사기』에 나오는 그대로 “상갓집 개를 닮았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암 틀림없고말고!”라고 공자가 자조하는 장면이 나왔으니 감독이 용기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최승호 시인 「들장미」라는 말놀이 동시에 “들장미야 너 왜 거기 혼자 있니? 장미들이 싫어. 그래서 들장미가 된 거야. 나도 개들이 싫어 들개가 됐어”라는 구절이 있지만 공자도 사실 당시 임금의 ‘개’가 되기 싫었기 때문에 천하를 떠돌다가 ‘상갓집 개’와 같은 행색을 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 공자와 위(衛)나라 영공(靈公, 재위 BC534~BC493)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영공은 묻는다. 위나라의 인상이 어떠냐고. 공자는 대답한다. 노(魯)나라에 비해 인구가 많음을 느꼈다고. 인구가 많으면 혼란스럽기 마련인데 어떻게 하면 혼란스럽지 않게 만들 수 있냐고 영공은 다시 묻는다. 그러자 공자는 부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영공은 이렇게 반문한다. 현재 부유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사회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고. 공자는 대답한다. 교화해야 한다고. 이 문답은 본래 논어에 나오는 구절을 약간 고친 것인데 일부분의 사람이 먼저 부유해졌지만 심한 빈부격차 때문에 불안한 중국 상황을 잘 풍자하고 있다. 나아가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공자의 사상을 빌어 조화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공자> 포스터(좌) | 『공자, 최후의 20년』 표지(우)

이처럼 <공자>를 비교적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영화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번역 출판된 왕 졔ㄴ원(王健文)의 『공자, 최후의 20년』 덕분이다. 마침 공자의 일생을 다룬 시기도 영화와 비슷하다. 영화가 공자의 일생 가운데 51세 때 중도재(中都宰)라는 벼슬에 오른 시기부터 생을 마감하는 73세까지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55세 때 조국 노나라를 떠난 시기부터 다루었으니 시기가 거의 중첩된다. 일본 속담에 『논어』를 읽은 자가 『논어』를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논어』를 읽은 사람도 공자의 일생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타이완 역사학자의 저작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 비교적 부합한 공자의 최후 20년의 면모를 알 수 있게 된다. 그에 따르면 공자의 마지막 20년은 좌절, 유랑, 초조, 상심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공자의 이상과 당시 현실의 사이에 놓인 간극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별달리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이상을 견지한 공자와 현실을 택한 초기 제자 자로(子路), 자공(子貢), 염유(苒有)의 갈등에 주목한 점은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또한 이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본다면 후 메이(胡?) 감독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공자와 제자 사이를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영화엔 물론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다. 영화에서는 애제자들인 안회(顔回)와 자로가 천하주유하는 기간 중에 죽은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나 사실은 그 시기가 공자가 노나라에 돌아온 다음이다. 안회가 물에 빠진 책을 건지다 죽은 것도 영화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타이완의 역사학자나 대륙의 영화 감독이 바라보는 공자의 일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성인으로서의 공자보다는 인간 공자의 고뇌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왕 졔ㄴ원은 공자의 이상이 실현되기 어려운 몽상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면 후 메이는 ‘예악인화(禮樂仁和)’라는 공자의 꿈이야말로 현대 중국이 실현해야 할 목표라는 점을 공자의 비극적 인생을 통해 드러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공자> 주연 저우 룬파

리 쩌허우는 앞서 말한 글에서 중국 문화심리 구조의 형성에 끼친 공자사상의 심대한 영향을 지적하면서 좋건 싫건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문화대혁명 때처럼 비판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당시엔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세월이 흘러 공자에 대한 영화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의 말이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공자 더 나아가서 중국의 전통문화의 부활을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