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부터 1950년대까지는 한국근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전환기로 미술계의 논의 또한 묵직한 주제들로 가득찬 시기다. 해방 직후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논의된 미술계의 왜색(倭色)탈피 문제와 소위 해방공간에서 전개된 미술계의 좌우 분열, 새로운 미술건설을 위한 움직임은 그 전환기의 첫 대목에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수립되고 이어 출범한 국전(國展) 곧,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전쟁복구 과정에서 수용된 앵포르멜(Informel)미술1 등은 그 후반부를 장식하는 주제들이다.

<해방 전후 비평과 책展> 포스터 

이 거대한 전환기, 과도기의 미술을 재구성하는 데는 당시 문헌자료의 중요성이 절대적이다. 그 이유는 미술작품이 대단히 적은 수량밖에 남아 있지 않은 탓도 있지만, 문헌자료들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헌자료 가운데에는 일제식민지 잔재를 비판하거나 각각의 정치적 입장에 입각하여 제기한 미술시론, 전시회 감상기 등이 있고, 한국미술사를 새롭게 체계화하려는 글들도 포함된다. 필진들 또한 비평가뿐만 아니라, 다수 작가들의 이름도 눈에 띈다.  
<해방 전후 비평과 책展>은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까지의 상황에 비추어 대단히 의미가 깊은 전시다. 30명의 비평가 및 작가의 약력과 사진, 그리고 당시의 신문과 잡지의 기사 원본 스크랩과 단행본 서적 등 101점의 전시품이 아담한 전시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월북 비평가, 미술가의 비평문들은 1940년대 한국미술사를 복원하는 데도 한없이 소중한 자료들로 공공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또한 개관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네 번째 기획한 전시라는 사실의 의미도 작지 않다. 1984년 당시 덕수궁에 자리 잡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한국근대미술자료展>을 제외하면 사실 이 정도 내용을 갖춘 전시는 국공립미술관들도 시도하기 어려운 전시다. 
주목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정부 수립 후 미국을 등에 업은 보수우익계 미술가들이 한국미술계의 주도권을 쥐게 된 과정이다. 그 내용을 논한 최열(崔烈)의 글이 전시카탈로그에 게재되어 있어 이 시기 미술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만, 미술비평에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김용준(金瑢俊,1904~1967)과 김주경(金周經, 1902~1981), 길진섭(吉鎭燮, 1907~?), 그리고 이쾌대(李快大, 1912~1953)가 북으로 간 것은 이후 미술계로서는 큰 손실이었다. 

두 번째는 당대 미술계에 대한 미술가들의 적극적인 발언이다. 해방 직후 친일잔재의 청산에 대한 견해를 밝힌 오지호(吳之湖, 1905~1982)나 안석주(安碩柱, 1901~1950)의 글에 이어 1949년 출범한 국전의 운영에 대한 화가들의 비판은 많은 미술가들이 공감하고 있던 문제들을 당사자인 그들이 직접 지적하고 의견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미술비평의 역할이 모호해지고, 비평가의 글들이 한낱 미술가들의 유명세에 기대고 있어 비평가의 존재가치마저도 의심하게 되는 오늘날의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세 번째는 아서 맥타가트(Arthur J. Mc Taggart, 1914~2003)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 1889~1961)와 같은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미술을 다룬 글들이다. 이중섭 개인전이나 국전에 대한 소감을 밝힌 점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잘 알려져 있는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의 예가 그렇듯이 근대 이후 ‘강한 타자’인 서양의 시선은 이후 우리들의 모습을 규정하는 데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글로벌시대라고들 하는 오늘날도 그와 같은 시각의 연장선에서 우리들 스스로를 규정하는 예 또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술비평계의 선구자인 고 이경성(李慶成,1919~2009)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기리는 행사로 열린 이번 기획전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전시였다.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미술계의 114’ 등으로 불려온 김달진 관장이 개인의 노력으로 일구어온 미술자료 수집이 마침내 박물관 설립으로 이어지고, 전문가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된 점은 미술 분야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미술자료 수집이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성과를 맺는 일은 전적으로 연구자의 몫이자 그들에게 부과된 과제다. 전시된 여러 자료들과 오래된 신문의 빛바랜 스크랩은 먼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디지털아카이브가 일반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으로 인해 날로 약화되어가는 아날로그 마인드를 환기시켜주었다. 그만큼 의미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전시를 포함하여 네 번째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기획전이 가속화되어가는 디지털테크놀로지에 대한 향후 대응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