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데뷔작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로 헤밍웨이재단-펜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뉴요커The New Yorker>지가 선정한 40세 이하 미국유망작가 20인에 선정되는 등 미국문단의 주목을 끌어온 한국계 미국작가 이창래(Lee Chang-Rae)가 한국전쟁(1950~1953) 발발 60년을 맞는 올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개인들의 상처를 다룬 소설 『항복자들The Surrendered』을 선보였다. 작가의 네 번째 장편인 이 작품은 500면에 가까운 분량에 준, 헥터, 실비 등 세 주인공들의, 1934년의 만주와 1950년대 초의 한반도, 그리고 1986년의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삶과 죽음의 궤적을 담고 있는 야심적인 작품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점에서 공통된 세 인물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서울 근교의 고아원에서 만나 맺게 되는 인연을 생생하고 구체적인 언어와 추리소설적인 구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소설은 출간과 더불어 미국 주요 언론매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왔다. 이처럼 한국전쟁을 비롯한 동아시아 현대사 속의 상처와 후유증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미국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현상은 미국 주류사회가 지난 60년 동안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으로만 기억한 점을 고려할 때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전쟁의 주요 당사자이면서도 그 사실조차 외면해 온 미국사회가 마침내 한국전쟁의 참 의미를 대면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 발표 후에 행한 인터뷰들에서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한국전쟁 중 작가의 부친이 체험한 내용을 들은 데서 받은 충격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대학시절에 아버지의 한국전쟁 체험에 대해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평소 언급을 피하거나 애매하게 얼버무리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해준 이야기 중에 피난길에 탄 화물차에서 떨어진 동생이 열차에 치여 다리가 잘리면서 출혈로 죽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목격한 일화가 있다. 작가는 이 충격적인 실화를 소재로 작품을 쓰겠다고 벼르다가 구상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하는데, 준이 한국전쟁 중에 바로 작가의 부친과 흡사한 경험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첫 장은 작품의 그 같은 기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준이 아버지와 오빠가 처형되고 끌려가는 것을 목격하고, 엄마와 언니를 폭격에 잃고, 동생들마저 사고로 잃어버리게 되는 사연을 담고 있는 첫 장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생존자들의 경험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곱 살 언니가 다섯 살 동생의 손을 슬쩍 놓아버리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와도 유사하게, 죽어가는 동생을 버리고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준의 도덕적 딜레마를 보여주는 『항복자들』의 첫 장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의 복합적인 면모에 대한 작가의 이해가 깊음을 암시하다. 자신들에게 거처를 제공해 준 마을사람을 죽이는 피난민의 모습이라든가, 헥터의 동료인 미군이 중공군 소년병을 상대로 행하는 잔혹행위에 대한 묘사 및 헥터의 무기력한 방관 등도 가해자와 피해자, 공산주의자들과 자유주의 진영을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적 렌즈를 통해 보는 주류 사고에 도전하는 것이다. 부모를 일본군의 잔혹행위에 의해 잃고 그 체험에서 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실비의 예 또한 2차 세계대전 중 자행되었던 잔혹행위 중에서도 나치에 비해 일본에 의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미국의 독자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환기시킨다. 무엇보다도 전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나치게 악착 같은 삶을 이끌어 온 준이나 자포자기 상태에서 알코올에 의지해 살고 있는 헥터의 삶이 한국전쟁의 지속적인 후유증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작가도 말하듯 이 작품의 초점은 한국전쟁이 아닌, “대규모의 물리적 충돌이 인간의 심리와 정신에 끼치는 영향”에 있다. 작품의 세 주인공 중 하나이며 한국전쟁 중 선교사의 아내로 서울 근교의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준과 헥터의 집착과 애정의 대상이 되는 실비의 상처는 한국전쟁보다는 크게는 그 이전 1934년 만주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만행에 기인한 것이며 작게는 자식보다는 봉사를 앞세운 선교사 부모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헥터의 상처도 한국전쟁에서 자행된 잔혹행위에 크게 빚지고 있지만, 참전 이전 자신이 아버지의 사고사의 간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도 연결된다. 작품의 소재가 한국전쟁이 아니라 그보다 더 일반적인 주제인 전쟁과 거기서 비롯된 상처이기 때문에 작품의 축을 이루고 있는 사건인 준과 헥터의 여정도 한반도를 향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잔혹상에 대한 인류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적십자 설립의 계기가 된 전쟁터였던 이탈리아의 솔페리노를 향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일본군의 만행에 기원을 둔 실비의 마약중독은 한국전쟁에 기원을 둔 준의 지나치게 악착 같은 생존력이나 헥터의 알콜중독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작품의 대부분이 특정 전쟁의 복합적인 전모를 묘사하기보다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바쳐져 있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항복자들』의 주요배경이 한국전쟁이라고 해서 작품이 한국전쟁을 충실히 묘사해야만 할 이유는 없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해서 전쟁의 비인간성, 그로 말미암은 상처와 지속적인 후유증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중요하고도 훌륭한 성과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항복자들』에 두드러지는 멜로드라마적, 선정적 요소는 작품에 내장된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안타까운 약점이다. 교통사고를 통해 준이 고용한 사설탐정과 헥터의 여자친구를 한꺼번에 편리하게 죽도록 해, 준과 헥터의 이탈리아 동행을 예상보다 쉽게 만들어주는 설정이라든가, 잔혹 행위나 성적 행위 등을 지나칠 정도로 자세히 묘사하는 것 등은 그 같은 약점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 같은 무리한 설정과 선정성의 또 다른 면은 작품의 주인공들이 겪는 잔혹행위의 모습에서, 비슷한 체험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어딘지 구체성과 개별성이 결여된 추상성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얼핏 다채롭게 이어지는 듯 보이는 헥터의 삶은 자포자기한 ‘항복자’의 삶이라는 면에서 복합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실비가 체험하는 일본군의 만행과 그 경험이 그녀에게 미친 효과는 일차원적인 선악 이분법의 도식을 별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준의 전쟁체험의 경우, 그 같은 구체성의 결여는 미국사회 주류의 도식적 인식을 뛰어 넘어 한국전쟁을 더욱 복합적으로 제시하려 하는 작가의 의도가 전쟁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실감과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이고 선정적인 묘사로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단순성으로 귀결되도록 만든다. 가령 피난민들이 그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한 마을사람을 습격하는 장면은 피난민들도 토착민들도 결코 미화하지만은 않은 작가인 박완서나 문순태 등의 작품에서 보이는 당시 사람들의 정서와는 크게 거리가 있다. 또한 북한 병사에 의한 강간장면의 묘사는 해묵은 반공영화를 연상시킬 만큼 일방적이고 단순하며, 성폭행에 관한 한 북한군보다는 미군을 더 무서워했던 전쟁 당시 한국인의 경험과는 어긋난다. 전쟁터라면 어디서나 있을 법하지만 실제 전쟁이 있던 개개의 터전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복잡한 모습일 수밖에 없는 진실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항복자들』의 위와 같은 약점의 일부, 즉 그 멜로드라마적, 선정적 요소는 전쟁 일반의 비인간성과 그 후유증을 그렸다고 해서 이 작품을 칭찬하고 있는 미국의 서평에서도 빠지지 않고 지적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약점이 이 작품에서 특정 전쟁의 실상과 효과를 복합적으로 묘사하는 데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약점이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랬더라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전쟁의 비인간성을 추상적으로 성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나라가 깊이 연루되어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제대로 대면하지 않고 있는 전쟁을 상기해 보고, 그에 비추어 현재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성찰할 계기가 주어졌을지도 모른다. 미국 주요매체들에 수록된 서평들에서 눈에 띄는 사실 중 하나는 그 어느 한 곳에서도 올해가 한국전쟁 60년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 사소하다면 사소한 사실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항복자들』을 읽는 일이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행한 역할에 대한 성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작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에 대한 성찰은 얼마나 구체적이고 온전한 것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