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버스

아직은 바람이 꽤나 쌀쌀하게 불던 봄날, 인천에서 아트버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계양구 임학동으로 향했다. 한참 도시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인천의 여느 동네와는 달리 아트버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임학동 ‘행복 나눔 지역아동센터’의 주변 경관은 드넓은 땅과 비닐하우스, 게다가 개천까지 흐르고 있어 이곳이 인천인가 싶을 정도로, 마치 한적한 시골에 와 있는 듯했다. 교육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해 작가이자 아트버스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호진 디렉터와 운영을 맡고 있는 백곤 전시팀장을 만나 프로젝트에 대한 취지와 진행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교육시간이 되자 지역아동센터로 들어오는 좁은 비포장도로에 거대한 노란색 아트버스가 천천히 그 위용을 드러냈다.

아트버스 체험에 참가한 아이들

사단법인 국제시각예술협회(Contemporary Art Network foundation Foundation)에서 운영하는 아트버스 프로젝트 ‘오! 재미’는 문화 나눔 희망지역(문화소외지역, 임대주택단지 등)에서 참여를 원하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술버스를 운행하여 젊은 작가들과 함께 미술 체험 및 문화행사를 체험할 수 있게 버스로 찾아가는 예술창작체험 프로젝트이다. 아트버스 프로젝트 ‘오! 재미’는 소외계층 어린이들에게 문화예술 체험의 기회 제공은 물론 젊은 작가 및 기획자들의 창작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적 특색에 맞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의적이고 실험적인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09년 6월에 시작하여 2014년 5월까지 5년간 지속되는 중장기 프로젝트로써 이미 작년에 서울 일대와 안산, 성남, 부천에서 수차례 진행하였고, 필자가 교육현장을 찾았을 때는 서울과 인천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아트버스 프로젝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교육공간으로 활용되는 이동 가능한 버스이다. 중고 대형버스를 구입하여 버스 내부의 좌석을 모두 떼어내고 교육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조를 하였다고 한다. 그간 대부분의 교육이라는 것이 건물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에 반해 아트버스는 어린이들에게는 최고의 아지트이자 교실인 셈이다. 버스 전체를 노란색으로 바탕칠하고 그 위에는 알록달록한 색상과 무늬들이 그려져 있어 멀리서도 아트버스임을 알아볼 수 있다. 버스 내부에도 다양한 색들로 천장과 바닥이 꾸며져 있어 누가 보더라도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아트버스 프로젝트는 주강사인 젊은 아티스트 외에도 에듀케이터, 코디네이터, 영상미디어 연구원, 자원봉사자 등 여럿이 함께 참여하는 가운데 어린이들과의 교육이 진행된다. 아트버스 프로젝트에서 진행되는 교육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재 활발히 작가적 역량을 넓혀가며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과정을 모티브로 하여 교육계획을 구성하고 어린이들이 쉽고 다양하게 미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매개한다는 점이다. 그간 송준호, 임선희, 이제, 김재환, 이명진, 양진우, 한경하, 채진숙, 정재호, 노상준 등 회화, 조각, 설치, 패션,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이 대거 참여해왔다.

교육시간이 되자 버스로 어린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인천지역에서의 교육은 김소연 작가가 주강사가 되어 어린이들과 ‘드로잉 공작소’라는 프로그램으로 8주 동안 진행했다. 첫 주에는 작가의 작품들을 학생들과 같이 감상하고 앞으로 진행될 교육내용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교육이 시작되어, 롤 페이퍼를 이용한 이미지 연결 드로잉, 연상 이미지 그리기, 자유주제 토론을 통한 드로잉, 작품 재해석을 통한 감상과 에티켓, 아트 버스 내에 작품 설치하기 등 작가의 작업과정을 매개로 어린이들이 생생한 예술창작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느덧 오늘은 그 마지막 수업이다. 김소연 작가는 색이 다른 종이에 여러 동물의 이미지들을 복사하여 준비하고 학생들과 동물의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또 다른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 보는 것을 제안한다. 선생님의 시범을 본 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은 학생들은 저마다 가위를 이용해 이미지들을 골라가며 오리고 붙이기에 빠져든다. 그러나 어떤 어린이들은 그게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에듀케이터와 스태프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참여한다. 작가를 비롯해 이들은 아이들과 많은 말 걸기와 이야기를 나눈다. 버스는 웅성거림과 함께 뭔가 열중하는 열기가 이내 가득해 졌다. 어느덧 아이들이 하나씩 작품을 완성해 가고,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동물들의 생김새에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반적인 동물이미지들을 가지고 순간적인 상상력을 통해 뚝딱 만들어낸 알 수 없는 새로운 종의 동물들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다. 즉 문화예술교육에서 중요한 예술적 창발(emergence)을 경험하는 순간인 것이다. 김소연 작가는 아이들이 완성한 작품들을 하나씩 보여주고 다양한 질문을 던져가며 아이들과 대화식 피드백을 한다. 아이들은 친구가 한 것을 보면서 귀엽다, 무섭다, 이상하다, 특이하다는 등 각양각색의 반응과 함께 저마다 제각각의 해석과 생각을 내어 놓는다. 자신의 눈높이와 자기 방식의 감상법인 것이다.

아트버스 내부

수업이 이렇게 마무리 되어 갈 즈음, 매 회기마다 그간 아이들이 수업 하였던 모습을 촬영, 편집하여 영상물로 만든 것을 모두 다 같이 모여앉아 관람한다. 영상물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들이 참여했던 과정에 대한 대단원의 환류과정을 갖는다.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8주 동안 어떤 것들을 해왔고, 수업에 참여했던 본인의 태도와 모습은 어땠는지는 물론, 자신의 눈으로 그 과정을 재인식하고 확인하게 되는 계기된다. 문화예술교육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교육도 그렇지만 교육의 마무리 단계에 있어서의 피드백(환류)은 교육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트버스 프로젝트에서의 수업은 이러한 섬세한 배려가 있었다.

아트버스 마지막 수업

아트버스 프로젝트 ‘오! 재미’는 예쁘게만 그려야하고,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닮거나 비슷하게만 그려야만 하는 기능중심적인, 그리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그러한 제도권 미술교육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실천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래서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대화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사고하고, 소통한다. 그렇기에 아트버스 프로젝트는 아이들과 젊은 작가, 교육자들이 만나 미술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소통의 장으로써의 역할과 기능을 지닌다. “오! 재미있는 미술”은 단순한 즐거움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미술과 즐거움의 의미를 체험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그 의미 찾아갈 수 있도록 대화한다. 젊은 작가들 또한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신들의 작업과 예술 활동에 영향을 받는다. 아트버스에는 일방적으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거나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가 주고받는 건강한 소통이 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아트버스를 배경으로 단체사진 찍고, 개개인별로 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도 하고, 정들었던 작가와 헤어짐이 아쉬워 얼싸 안아보기도 하지만 아트버스도, 작가도, 아이들도, 교육스태프들도 헤어짐에 모두가 아쉬움이 얼굴에 가득하다. 이렇게 아쉬움과 먼 기약을 남기고 아트버스는 오늘도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재미있는 미술’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미지 제공_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