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들과 함께

아랍을 통해 중국에서 생산된 도자기와 비단 등을 수입하던 영국이 정작 수출할 경쟁력 있는 상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인도와 버마 지역에서 재배하던 아편을 수출하면서 이를 받아들이라고 중국에 강압적으로 요구하던 무렵이 1840년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유럽이 세계경제의 중심에 우뚝 선 것도, 우리의 어렴풋한 짐작과는 달리 그렇게 오래되지 않는다. 영국이 산업화에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런던에서 만국박람회를 열었던 무렵인 1850년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유럽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만 해도 유럽 지식인들의 내면에서 그 이후에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럽중심주의적 사고를 발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옛 이란인 페르시아에서 아주 유명하였던 중세 시인 하피즈(H?fiz, 1320?~1389)의 시를 독일어 번역을 통해 읽고 영감을 받아서 그 유명한 『서동시집West-ostlicher Divan』(1818)을 창작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괴테는 비단 하피즈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의 역사 속에 등장하였던 숱한 시인들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일일이 설명하는 노고를 그 책에서 아끼지 않을 정도로 동방의 페르시아 문학에 심취하였다. 괴테가 에커만(Johann Peter Eckermann, 1792~1854)과의 대화에서 세계문학을 언급했을 때 그 세계문학에는 페르시아 문학뿐만 아니라 중국 문학도 분명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식민지 인도에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를 공부하였던 윌리엄 존스(William Jones, 1746~1794)가 파니니(P?nini)고전 산스크리트 문법을 집대성한 인도의 문법학자 문법 책 등을 보면서 이 언어가 고대 그리스 로마의 것에 비해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인도·유럽 어족’이란 특이한 분류를 했던 것 역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당시 유럽의 이러한 흐름을 가리켜 ‘동양 르네상스’라고 불렀던 것도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다. 16세기에 이르러 유럽인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정신적 유산을 비잔틴과 아랍을 통하여 새로 발견하면서 르네상스라고 불렀던 것을 염두에 두고 ‘동양 르네상스’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동방의 오랜 역사 속에 축적된 문화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유럽인들이 좁은 우물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류의 지적 저수지에 합류한 것이다.

참여작가 핸드프린팅

아득히 먼 곳에 위치한 변방 유럽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엿보기 위하여 유럽식 정원이 한때 조성되기도 하였던 베이징의 위앤밍위앤(圓明園)이 영국과 프랑스 군인들에 의해 불타는 것을 계기로 세상은 전혀 달라지게 되었다. 13세기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와 14세기 모로코 출신의 아랍 학자 이븐 바투타(Ibn Batt?tah, 1304~1368)가 각각 자신의 여행기에서 가난한 유럽과 대비하여 지상의 천국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던 중국이 유럽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예전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세계상이 만들어져 가기 시작하였다. 유럽인들은 유럽인들이 만들고 싶은 대로 이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고, 비유럽인들은 이러한 흐름에 저항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후에는 유럽의 잣대로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배우기 위해 유럽 추종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동양 르네상스’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문명의 유럽과 야만의 비유럽’이란 도식이었다. 식민주의는 야만을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무장되었고, 저열한 비유럽인들을 길들이기 위하여서는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유럽의 가치와 문학이 잣대가 되고 표준이 되면서 유럽과의 만남 이전의 풍부한 문학적 유산은 시급히 버려야 할 방해물이 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유럽인들이 이러한 문학적 유산을 경멸하고 무시하였지만 나중에는 비유럽인 스스로 앞을 다투어 자기를 부정하고 유럽을 닮아가려고 하였다. 의식과 무의식 전반에 걸쳐 침전되기 시작한 이 지독한 유럽중심주의는 한 세기 반을 지배하였다.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961~1941)처럼 유럽의 문학을 전유하면서도 여기에 함몰하지 않고 자신의 전통과의 독특한 종합을 성취했던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된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유럽이 고안한 근대세계가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자 유럽 안팎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고 근대를 넘어서려고 하는 노력들이 다방면에 걸쳐 행해졌다. 특히 그동안 유럽의 중압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비유럽의 지식인들이 추악한 유럽 근대를 목격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사태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이러한 노력은 많은 비유럽의 나라들이 유럽의 제국에서 벗어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정치적 독립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독립을 이루려는 노력이 문학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1950년대에 이르러 동력을 얻게 된 이런 흐름은 문학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1958년 당시 소련의 한 지역이었던 타쉬겐트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대회가 열렸고 이를 기반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협회가 만들어졌으며 이후에는 기관지 <로터스Lotus>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태생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 모임이 열렸던 타쉬겐트가 소비에트 연방의 한 지역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라는 사실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이 모임은 단적으로 냉전의 산물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내걸고 이미 존재하였던 미국 주도의 국제 펜클럽에 대항해서 소련 영향권 하의 작가 단체를 만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이 모임이었다. 여기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작가들의 개인 의사는 이와 무관할 수 있지만 전체 틀은 분명 이러한 맥락 속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이 모임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제외하였기 때문에 명실상부하게 비서구를 대표한다고도 할 수 없었다. 또한 작가들이 모이는 과정 자체도 국민국가체제를 넘어서려는 그 어떤 노력도 수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지구적인 노력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수평적인 작가적 네트워크 대신에 개별 국민국가의 수직적 파견 작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심각한 제약을 받았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던 이 회의는 결국 소련의 붕괴와 궤를 같이하여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고 시작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좌로부터 마카란드 파란자페(인도), 이데우베르 아벨라르(브라질), 김명인(한국)

유럽중심주의에 입각하여 구성된 세계문학의 틀을 해체하고 진정한 의미의 지구적 세계문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하나는 기존의 세계문학의 정전이 갖는 유럽중심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현재 다양한 세계문학의 선집이나 전집 그리고 문학사들은 19세기 후반 이후 정착된 유럽중심주의의 산물로서 지독한 편견에 젖어 있다. 특히 이 정전들이 구축될 무렵은 유럽이 제국주의 침략을 할 시절이기 때문에 이것은 더욱 심하였다. 따라서 이를 비판하는 작업이 따라야 하는데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의 일련의 작업은 이러한 의미 있는 노력의 성과였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럽의 작가라 하더라도 제국주의에서 자유로운 작가는 거의 없다고 하면서 그동안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던 유럽의 세계문학 정전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해체한 사이드의 이러한 작업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사이드의 많은 저작들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속했던 아랍문학을 제외하고는 비서구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거의 접근하지 않았다. 서구문학의 비판에 머물렀지 비서구 문학의 상호 이해와 소통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비서구 문학의 상호 소통과 새로운 ‘보편성’의 확립인데 이를 위해서는 비서구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을 읽어주고 이 속에서 새로운 담론들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기존의 정전의 틀을 확대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고 근본적인 전환일 수 없기에 이러한 작업은 지구적 세계문학의 구축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인식의 전환이다.

제1회 인천AALA문학포럼(인천아트플랫폼·인천 하버파크호텔, 2010.4.23~4.25)AALA는 아시아(Asia)·아프리카(Africa)·라틴아메리카(Latin America)의 약자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지구적 세계문학을 만들어 나감에 있어 획기적인 일대 사건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시아의 중국·필리핀·베트남·인도·팔레스타인,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이집트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쿠바·브라질 등의 유명한 작가, 비평가들이 참여한 이번 포럼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이란 20세기적 틀을 넘어서 탈제국 시대의 지구적 세계문학을 모색하는 것으로 ‘세계문학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대주제로 열렸다. 제1분과의 비서구 여성문학, 제2분과의 비서구 디아스포라의 문학, 제3분과의 탈서구적 세계문학 등의 소주제들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새로운 발상과 노력의 산물이다. 2007년 전주에서 열렸던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과 2009년 인천에서 소규모로 열렸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을 고려할 때 이번 문학포럼은 결코 평지돌출식의 이벤트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문학인들 중에서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문학의 틀과 전망이 필요하다고 느낀 작가들이 다양한 세계문학의 장에서 만나 논의하고 힘을 합친 소통의 축적이 바로 이번 인천AALA포럼이다. 유럽제국의 근대 문명이 한반도에 진출할 때 그 현관 노릇을 톡톡히 했고 이제 탈제국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관문 역할을 자임하는 인천의 역사적 위상은 AALA문학포럼이 출발하고 정착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제국의 아픔을 모르기에 과거의 상처를 보듬을 수 없거나, 제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빚어진 관성에 머물러 그 이후를 설계할 준비가 되지 않은 곳에서는 결코 꿈꿀 수 없기에 이러한 제국과 탈제국의 양면을 자산으로 안고 있는 인천이 이 새로운 기획에 나서는 것은 역사적 필연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