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신도안>에 관련하여 작가 박찬경은 ‘미신의 집단지’라는 이미지와 ‘민족신비주의’에 대한 동경이 교차되었던 신도안(新都內)충남 계룡시에 있는 종교취락에 주목하며 이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을 뒤집어 보고 그 본질에 가닿고자 했음을 밝혔다. 이번 전시 즈음 작가는 어느 글을 통해 “세계, 한국, 서울은 이미 광명천지다. 밤은 전기조명에 의해 밝아졌고 눈과 머릿속까지 방송과 영화를 통해 밝아졌다. 그러나 계몽된 사회는 빛, 비전, 공동체로부터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유토피아의 기억이나 상상으로부터도 멀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작가의 관심은 집단화되어 온 편견과 사회적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이에 대해 새로이 성찰할 수 있도록 문제제기하는 것이었다. 과거에 다루던 냉전과 분단의 이슈를 벗어나 계룡산 문화와 한국의 왜곡된 근대화 그리고 오늘을 짚어 보려는 것이다. 작가가 관심을 갖는 산과 바위, 절과 마애불, 판소리의 차용은 의도된 현대와의 충돌이며 새로운 문화적 상황을 드러낸다. 실재와 허구,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미디어 작업을 해온 작가는 발상의 영역이 매우 넓다. 다시 말해 그의 관심영역이 넓다는 의미이며, 그 관심사의 시각적 표현은 두터운 의미적 층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의미가 구체적인 대상과 그에 대한 작가의 의중을 싣고 있음은 감지되지만 개념적 작업은 때로 수수께끼와 같이 직설적인 답을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기록영상물들을 편집하고 구성한 경우에도 단순한 기록이 아닌 특별한 분위기의 표출로 감상자는 여러 갈래의 연상이 가능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PKM갤러리에서 개최된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 작품인 <신도안>을 비롯해 북한산과 서울의 사찰들을 촬영한 사진들과 판소리 심청가(沈淸歌)를 모티브로 한 회화와 설치, 영상작품 등이 선ㄹ보였는데 그의 다양한 작업방식이 보여주는 조형적 감각은 매우 신선했다. 한 방의 네 벽에 설치된 영상물들은 각기 독자적으로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네 점의 영상물을 돌아가며 헤드폰을 끼고 감상에 몰입하다보면 각 작품들 사이에서 생성되는 묘한 분위기가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다큐멘터리의 실체감과 녹취 그리고 나레이션과 더불어 사방 벽면에 둘러싸인 방은 영계(靈界)사람이 죽은 뒤에 영혼이 가서 산다는 세계의 울림터처럼 여겨져, 이상하고 두렵기도 한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작가가 신도안을 방문했을 때 받았다는 형언하기 어려운, 낯설고 숭고한 느낌은 바로 이 느낌이었을 것이다. 또한 사진들은 어둠 속에서 스폿으로 드러나게끔 처리하여 영상물에서 받는 낯설고 신비한 느낌을 지속시킨다. 이와 같이 빛을 구사하는 섬세한 처리는 작가의 긴 시간에 걸친 고심의 결과로, 이번 전시에서는 이에 대해 더욱 세심하게 연구했을 것이다. 심청가 관련 텍스트 보드는 같은 내용을 하나는 백색 바탕으로 하고, 또 다른 하나는 검은 바탕으로 하여 나란히 병치시켰다. 이는 백색을 단순한 백색이 아닌, 광명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빛과 어둠의 대비로 설정한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금빛과 검은 색의 대비도 같은 선상에서 고려할 수 있다.

박찬경, 신도안_시천주(2008)


그런가하면 갓과 망건을 3D 도면으로 처리한 <3D-1, 2, 3>,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차용한 문구(文句), 행성의 운행도를 연상하게 하는 도면과 색점으로 이루어진 각국의 전통, 색면회화로 붙인 명제들 <사극>, <16:9>, <역사드라마>, , , 등의 다채로운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예지(銳智)를 여실히 드러내어 박찬경 세계의 자율적인 예술활동이 보여주는 또 다른 사유의 경쾌한 자유로움에 시선을 옮길 수 없게 한다.   

<광면천지 展>의 작가 박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