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 상하이(上海)영화의 담론, 재현, 미학, 여성, 문화 그리고 상하이인(人)의 정체성 등을 살펴보면서, 로컬(local)로서의 상하이 그리고 상하이영화, 상하이인을 둘러싼 문화적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리어우판(李歐梵)이 지은 『상하이 모던: 새로운 중국 도시문화의 만개, 1930-1945』(2007)가 담론 층위적 논의에 머물지 않고 사적 자료를 함께 찾아가는 방법으로 1930년대 상하이의 모더니티를 찾아가는 궤적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로컬적인 것과 영화, 그리고 문화와의 만남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 조금 더 천착하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우선 ‘상하이영화를 명명하기’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다. 상하이영화라는 명명(命名)이 시작된 것은 중국 외에서의 이론적 담론들과 더불어 중국 내 정치적 맥락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간의 ‘상하이 노스탤지어’를 둘러싼 서구의 논의와는 방향을 달리한 「상하이영화연구 입론」에서 임대근은 중국 내에서의 맥락을 탐구한다. 최근 베이징(北京)영화가 중국영화의 주도권을 잡게 됨으로써 중국에서 외화가 처음 수입되어 상영되었으며, 1930년대 ‘영화도시’로 황금기를 누린 상하이라는 도시 공간과 베이징 간의 묘한 자존심 대결이 일어나고 있다. 상하이영화라는 명명은 이처럼 중국 내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담론적 모색 과정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2부에서는 상하이에 대한, 상하이의, 상하이를 둘러싼 영화적 재현의 문제로 이어진다. 상하이영화들은 193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의 상하이, 상하이인, 상하이 여성과 남성, 역사적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중 노정은의 「상하이 좌익영화의 미적 허위성」은 1930년대 상하이 좌익영화에 대한 흥미로운 미학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좌익계열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on-screen reality’를 믿도록 조장하기 보다는 일상에서 ‘off-screen reality’에 대응하도록 관객을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즉 영화의 리얼리즘적 재현과 그 미학적 시도는 실패했지만 영화제작은 영화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중국 관객들의 심미적 취향에 맞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로써 상하이의 리얼리즘 영화는 대중과의 타협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중국영화의 미적 스타일은 바로 ‘오락을 가장한 선전’ 혹은 ‘선전을 가장한 오락’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이제 영화 텍스트에서 벗어나 상하이라는 도시 공간으로 이동할 차례다. 상하이의 특성은 전 지구적 대도시의 맥락보다는 오히려 중국 내 다른 대도시와의 비교를 통해 두드러진다. 전 세계 대도시의 모습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이 반복해 온 것처럼 높은 빌딩, 많은 사람들, 빠른 속도와 변화,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호텔 체인과 커피숍 그리고 도시의 필수요소인 거지까지 유사한 외면으로 구성되고 개방성, 포용성, 혼종성이라는 공간의 논리로 닮아 간다. 이는 상하이도 다를 바 없다. 반면 1843년 개항된 도시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시작해 1930년대 조계지의 경험으로 외래문화의 ‘용광로’가 되었으며, 30년의 사회주의 중국의 길을 함께 걷기도 했지만 개혁개방으로 도시의 모습을 빠르게 변화시키기도 한 상하이의 특성은 베이징, 광저우(廣州), 충칭(重慶) 등 중국 내 대도시와 확연히 다른 로컬적 문화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3부는 상하이라는 공간에 대한 중국의 내적 맥락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도시 공간과 그 속에서 생성된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장이다.

최근 영화연구의 방향은 영화사적 맥락 속에서 극장 공간, 관객성, 매체 등의 연구로 확장되거나 아예 뉴미디어로 전환되고 있다. 포스터(Gwendolyn Audrey Foster)가 『포박당한 육체들: 영화에서의 탈식민적 주체성Captive Bodies: Postcolonial Subjectivity in Cinema』(1999)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근 영화연구와 문화연구에 대한 위기와 회의는 오래된 것이다. 그는 문화/영화 연구자들이 ‘경계에 서있는 지식인’으로서 연구대상은 대중문화 전반이 되어야 하며, 특히 문화연구는 음악, 문학, 영화, 텔레비전 등 연구대상의 분열적인 틈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정은의 「상하이인의 도시경험과 영화경험」은 이러한 연구적 관점을 같이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영화라는 매체에 한정된 재현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여전히 공간적 문화연구의 틀 속에 갇혀있다. 하지만 상하이영화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동시에 상하이영화 미학과 도시 공간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컬 문화 연구의 좋은 텍스트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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