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에 대해 말해야겠다. 아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소설을 찾아본다면 저절로 기억하게 될 이야기다. 그저 온 세상을 짊어지고 강을 건넌 거인이 있었다고 해두자. 어두운 밤에 물을 헤치고 나아가 본 적이 있는가. 없어도 좋다. 그저 상상해 보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물살을 몸으로 버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입과 귀로 강물이 들어 차 숨도 쉴 수 없고 걸음을 디딜 때마다 발은 푹푹 묻힌다. 되돌아가려 해도 이미 너무 멀리 왔고 나아가기에도 겁이 난다. 그렇다고 포기해 버리면 그대로 물에 휩쓸려 죽고 말 것이다. 바로 이것이 청춘의 감각이다.

여기 네 명의 젊은이가 있다. 예민하고 조심스러우며 아프고 상냥한 사람들.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거나 그런 사람들이거나,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세상의 공기란 어두운 강물과도 같다. 잘못을 저지른 이는 아무도 없는데, 오직 그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슬프고 괴롭다. 또 한편으로 슬프고 괴로워서 그들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소설은 바로 그런 시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1980년대, 세상을 바꾸자는 열망이 휘몰아치던 시기. 그때 가장 섬세한 나이였던 사람들에게 몰아닥친 강물에 대해 말한다. 어떤 이는 가족을 잃었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이를 잃었으며, 또 어떤 이는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지 못해 몸부림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윤 교수는 서른셋이 되기 전에 요절한 작가들의 책을 모아 놓고 있다. 왜 하필 서른셋이냐고 묻자 그는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간 나이고, 알렉산더가 거대제국을 건설하고 죽은 나이”라고 답한다. 올해로 서른셋이 된 나 역시 어두운 강물을 건너던 시기가 있었다. 소설에 나오는 이들과 같지는 않았지만 역시 그때는 지독하게 아팠다. 하기야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강을 건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대체 어떻게 그런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 어두운 강을 건너올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강물을 건너고 있는 이와 이제 건너야 하는 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그저 눈을 감고 떴더니 물은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밖에. 정말 우스운 것은 그렇게 절박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때때로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누군가를 좋아한다거나, 관자놀이가 욱신거릴 정도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시간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아릿하게 손끝이 아프거나 조금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괜히 가슴이 떨렸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소설은 분명 언젠가의 우리를 닮아있다.

그러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깊은 공감을 불러온다. 한 세대 전의 젊은 영혼들의 이야기가 공감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를 찾기 위해 밤늦게 전화를 걸거나 이곳저곳을 헤맬 필요가 없다. 누구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고 인터넷으로도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불행한 시대상에 휘말려 사라지는 사람은 드물고 대학에서는 더 이상 낭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절박하게 누군가를 그리워할 필요도 없이,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지리멸렬한 일상을 반복하면서 가파르게 사회로 나선다. 그런데 우리가 소설에 나오는 이들과 같은 나이를 지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깊이 공감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어째서 이 소설은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것일까. 소설은 말한다. “나도 사회풍경도 나아진 게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더 불완전해졌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바꿔 말하면 세상은 한 세대 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모습 그대로 우리는 옷만 바꿔 입은 듯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주인공들의 아픈 청춘을 함께 할 수 있다. 다시 묻는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대체 어떻게 그런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

소설 속에서 윤 교수가 남긴 편지를 읽어주어야 할까, 혹은 크리스토프의 이야기를 지금이라도 들려주어야 할까.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저 살아있는 동안에 끝이란 없다고 말하겠다. 나머지는 각자의 몫이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서로에게 전화를 걸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다. 그런 때에 조금만 더 용감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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