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창작센터

광주시립미술관이 한국 국공립미술관 최초로 중국 베이징(北京)에 창작센터(이하 북경창작센터)를 마련했다. 지난 해 12월 말 개관하여 현재 제1기 작가 다섯 명이 입주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소수 정예의 작가를 선정하여 세계 속에 광주미술을 알리고 다양한 창작지원 활동을 통해 지역작가의 세계 진출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경창작센터는 베이징 최대의 창작지구 중 하나인 따산즈(大山子) 환티에(環鐵) 창작예술지구에 위치해 있다. 최근 중국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하여 중국을 찾는 세계의 국가원수나 명사들을 비롯해 관광객이 즐겨 찾는 문화예술복합지역 따산즈798과도 근접해 있다. 입주 작가들은 숙식이 가능한 작업공간에서 중국 현대미술을 직접 체험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입주 작가들에게 한국-중국 왕복 항공권과 함께 현지 체류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제1기 작가는 김일근(조각·설치), 김진화(설치·회화), 김해성(회화), 전현숙(회화), 조강현(회화) 등이고, 제2기 작가는 기현숙(한국화), 김광철(행위·회화), 김영태(사진), 박수만(회화), 최요안(회화) 등이다.

개관식 및 오픈스튜디오전은 지난 5월 10일 진행되었다. 개관은 지난 해 말이었으나 날씨가 추운 관계로 뒤로 미루어 개관식을 가졌다. 박광태 광주광역시장을 비롯한 한국 측 주요 내빈과 우창지앙 중국미협 부주임을 비롯한 중국 측 주요 내빈, 그 외 한중 미술인 500여 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으며, 개관식 이후에는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작품 감상을 하며 활발한 교류활동을 가졌다.

북경창작센터 개관식

북경창작센터는 약 2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개관했다. 이는 한국 국공립미술기관이 외국에 개설한 첫 창작센터이자, 중국 내에서도 외국계 국공립미술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자리를 튼 역사적 사건이며, 최소한 미술사적 사건이다. 이를 역사적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앞으로 끼칠 영향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흐름에서의 전개란 어느 한 사람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호응을 얻게 되면 어떤 사건으로 진행되며, 또 그것이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졌을 때 점차 세력을 이루게 되고 종국에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이미 세계 예술의 중심지가 경제의 흐름에 따라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작금의 세계 경제의 흐름은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으며, 그 중심에 중국이 있다. 그에 따라 예술의 중심도 점차 아시아로, 특히 중국의 베이징으로 넘어오고 있음을 보고 있다. 이에 작게는 광주의 예술자원을, 크게는 한국의 예술자원을 그들과의 경쟁으로 성장시킬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필경 큰물에는 큰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마인드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을 필요로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는 국가의 경쟁력이 그 나라의 문화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1996년부터 중국에 살면서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예전에 중국 사람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은 대륙의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 군주를 황제라 부르지 못하고 왕이라고 불렀던 나라, 그런 나라가 근세의 역사 속에서 그들보다 좀 더 잘살게 되었다는 정도로만 보았다. 그러던 것이 중국 TV에서 한국 드라마가 폭발적 인기를 끌며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그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이러한 전환의 분기점이 되었던 사건은 드라마 <대장금> 방영이다. 당시 이 드라마는 거의 중국을 휩쓸었다. 심지어 중국의 고위층 간부들도 이 이야기를 주제로 한국 사람들과 대화했을 정도며, 이는 곧 그만큼 한국문화가 그들의 생활 속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음을 말한다. 또한 지속적인 한국 드라마의 TV 방영으로 중국 사람들의 생활 속에는 한국적 유교문화가 역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하여 사회주의에서 부정했던 전통에 대한 부활에도 일정한 자극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중국 정부는 ‘단오’ 등의 중국 전통문화를 되살려 놓았다. 이처럼 뛰어난 문화는 곧바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며, 그들은 그 문화를 전파한 사람들을 무시하지 못한다. 이는 개별적 일들을 진행할 때에도 일이 잘 풀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곧 국가 경쟁력을 의미한다.


북경창작센터

북경창작센터는 작게는 광주미술이 크게는 한국미술이 중국미술, 나아가 세계의 미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 매 기수마다 누군가는 그 속에서 세계적 예술가로 성장할 것이고 이는 한국문화의 영향력 제고, 곧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그러한 내막을 아는 정부기관이나 다른 지방의 미술관련 기관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미 서울시립미술관이나 기타 지방 시립미술관 등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해외 미술기관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다른 국공립미술관들도 북경창작센터에 영향을 받아 유사한 사업을 해나간다면 한국미술계는 물론 한국문화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개관을 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들을 거쳤다. 우선 이러한 문화사업의 효과는 바로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한국 내 관련 기관들의 협조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광주시가 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며 관련 인사들의 미래지향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을 합치하여 일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작업실 참관행사

장소 선정에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현재 중국은 급변하는 시기로 사회 제반제도나 시스템이 불안정한 상태다. 현재 베이징에는 크고 작은 예술구들을 합쳐 약 20여 개의 예술구들이 있다. 그런데 많은 예술구들이 베이징의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철거당하고 있다. 준비 기간에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한 이유 중 하나는 보다 안정적인 지역을 택하기 위해서였다. 시민의 혈세를 투자하여 설립한 시설이 얼마 안 되어 헐린다면 그 또한 참으로 애석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 장기적인 안목으로 안정적이면서도 작가들이 중국 내에서 활동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장소를 선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경창작센터는 개관 이후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여러 가지 성과를 거두었다. 막 개관했을 때는 중국 내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서서히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먼저 베이징 내 최대 규모의 예술구인 쑹좡(宋庄) 예술구의 한 갤러리로부터 초대받아 한중 작가 교류 전시를 진행 중에 있고, 주중한국문화원에서 있었던 전시에도 일부 작가가 초대받았다. 4월 말에 있었던 아트베이징(아트페어)에도 독일계 갤러리인 슐츠화랑의 초대로 전시를 했으며, 또한 중국 내 유명 경매회사인 상해호산 경매에도 일부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개관식 및 오픈스튜디오전에도 많은 관계자들이 다녀가는 등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평소에도 중국 내 기획자나 평론가, 화랑 관계자들의 방문과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만약 개인이었다면 여러 가지 한계에 봉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경창작센터는 광주시립미술관이라고 하는 인지도를 가지고 출발하였기에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는 이미 중국미술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관심이 북경창작센터로, 또 그에 소속된 작가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중요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화는 절대 단 시간에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하여 보다 거시적이고 원시적인 마인드를 기대한다. 비록 아직 거대한 성과는 아니지만 북경창작센터는 단기간 내에 이미 적지 않은 성과들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한 나라의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줄만한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욱 더 깊숙이 중국미술계로 침투해가야 할 것이다. 현재 중국에는 많은 한국계 갤러리들이 들어와 있지만 어딘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치 <대장금>이 중국인들의 생활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듯이 창작센터의 활동들도 좀 더 깊숙이 중국미술계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중국미술인들과의 교류를 주선해야 할 것이며, 중국미술계 내의 언론이라든지 미술관, 갤러리 등의 연락처 등을 확보하여 보다 깊은 홍보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 이러한 작업들은 진행 중이다.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시간을 더할수록 중국 내에서 점차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이는 곧 문화의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