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포로수용소유적관

거제도를 방문한 것은 지난 6월 4일. 인천 출신 화교(華僑)이자 중화루 손덕준 회장의 둘째 딸 W와 만주에 살던 백부가 조선인민지원군에 입대하여 통역으로 참전한 바 있는 조선족 S 그리고 조부모가 1.4후퇴 당시 함흥에서 흥남을 거쳐 월남하여 거제도에 정착한 월남민 후예 B에 더하여 중국학생인 S와 J가 가세하니 답사팀은 가위 동북아를 아울렀다고나 할까. 거제도로 향하는 고속버스 창밖을 보면서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의문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었으니 그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거제도는 과연 몇 차 방정식쯤 될까”라는 물음이었다.

거제도에 수용된 포로의 구성은 그야말로 복잡다단했다. 북한군 151,283명, 중공군 21,628명이라는 수치 속으로 들어가면 다시 북한정규인민군, 남한의용군, 민간인 억류자, 중공군 등으로 구분되지만 그 속에는 또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선 남북의 화교가 포함되고 만주에 살던 조선족들도 중공군 혹은 북한군에 스며들어 있었을 뿐 아니라, 국공내전(國共內戰) 당시 장제스(蔣介石, 1887~1975) 휘하의 국민당 군대에 소속되어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인민해방군에 재배치되어 조선인민지원군에 가담한 군인들도 있었다. 수용소 안팎에서도 타이완에서 보낸 선무(宣撫) 공작조를 위시하여 도쿄(東京) 소재 미군 극동 사령부에서 파견한 이른바 C.I.E(Civil Information & Education) 소속 목사들 그리고 전범을 다루는 방첩수사대 CID 등 허다한 갈래의 사람들이 좌우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푸른 색 깃발과 붉은 색 깃발을 각기 내건 채 열전과 냉전을 병행했다. 우익으로 변신한 포로들은 반공청년단을 만들었고 좌익을 고수하는 포로들은 일명 용광로라 불리는 해방동맹을 결성하여 수용소 안을 이데올로기 투쟁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인민군 포로와 중공군 포로가 서로 합작하여 미군 포로수용소 소장인 도드(Francis Dodd, 1899~1973) 준장을 납치, 전 세계의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만약 거제도를 영화로 다룬다면 포로수용소를 다룬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1957)나 <대탈주The Great Escape>(1963) 혹은 <제17포로수용소Stalag 17>(1953) 따위의 영화는 그야말로 애들 장난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버스가 통영에서 거제도를 잇는 다리로 접어들고 있었다. 초여름 햇살 아래 거제도 앞바다의 물빛은 더욱 푸르렀다.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찾은 것은 오후 3시 무렵이었다. 매표구에서 입장료를 치르고 옆에 놓인 안내 팸플릿을 집어 드니 겉표지에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 우리는 알아야 한다. 민족의 진실을!”이라는, 영락없는 관제(官製) 투의 문구가 눈길을 잡아끌었는데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강요라도 하는 식이었다. 이른바 ‘민족의 진실’이란 대저 무엇이던가. 그것을 알기는 알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알라는 말인가. 한반도의 남과 북을 1차 방정식이라 치자. 거기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자유중국이라는 중국의 양안을 겹치면 2차 방정식으로, 다시 거기에 미국과 소련을 더하면 3차 방정식이 된다.

거기에 6·25 직전인 1949년 장제스가 진해로 날아와 이승만(李承晩, 1875~1965)과 필리핀, 타이완 그리고 한반도의 남반부를 잇는 아시아반공동맹에 대한 구상을 도모하던 중 아울러 김일성(金日成, 1912~1994)과 스탈린(Iosif Stalin, 1879~1953)이 바로 그 즈음에 모스크바(Moskva)에서 조우한 사정들을 오버랩 시키면 최소한 4차 방정식은 나오는데,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민족의 진실을 어찌 풀어야 할 것인가. 민족의 진실이란 그 판도 전체를 살핀 연후에야 가늠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천으로 오려붙인 중공의 오성홍기

견문 없이 날림으로 꾸며놓은 여러 전시관을 지나 본관에 해당되는 포로수용소유적관으로 발길을 옮기니 당시의 이른바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 하나가 바로 깃발이었다. 수용소의 포로들에게 지급된 우의(雨衣)를 탈색하고 재단하여 바느질로 꿰맨 바탕에 별을 오려붙인 깃발이었다. 전시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별 다섯을 오려붙인 오성홍기(五星紅旗) 그리고 망치와 낫을 오려붙인 구(舊) 소련의 깃발, 거기에 동그라미 가운데 커다란 별을 박아 넣은 인공기(人共旗)가 나란히 걸려 있다면, 그 옆의 전시실에는 대한반공청년단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대한반공청년단의 깃발은 금실로 테두리를 두른 데다 가운데 오려붙인 비둘기 또한 인공기나 오성홍기의 궁색한 그것과는 달리 그야말로 ‘제대로 만든’ 것이라는 점. 그런데 그 깃발들이 보통 깃발은 아닌 것이 수용소 내 좌익과 우익의 권력을 재는 가늠자였던 까닭이다. 즉 인공기가 게양된 컴파운드(compound)집단거주지는 공산 측 포로들이, 태극기가 게양된 컴파운드는 반공포로 측이 지배권을 장악했음을 알리는 표지였다. 그 각각의 컴파운드 안에 수용된 포로들의 좌와 우를 둘러싼 행동반경이 깃발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깃발투쟁이라 하여 공산 측 포로들이 게양한 붉은 깃발을 미군이 내리려하자 유혈충돌이 일어나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거제포로수용소의 철조망

순간 귓전으로 두 개의 노래가 하나로 포개져 들려오는 듯했다. 하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침 조회 때마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반주에 맞추어 부른 노래였다. “나가자 씩씩하게 대한 소년아 태극기 높이 들고 앞장을 서서”로 시작되어 “무찌르자 오랑캐 중공 오랑캐”로 끝을 맺는 노래. 다른 하나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양반의 후예로 태어나 좌익에 몸을 담았다가 일생을 실의와 좌절로 보내다 생을 마감한 부친이 술을 드시고 한탄조로 부르던, “민중의 기 붉은 깃발은 전사의 시체를 싼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이라는 노래. 두 노래에는 모두 깃발이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그 깃발은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의 「깃발」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피 묻은 깃발이 아니던가. 민족과 국가라는 기치 아래 그 깃발은 얼마나 많은 젊은 영혼의 시체를 덮어야 했던가.

유적관을 나오니 계단의 저편으로 이른바 위령탑이 공원의 제일 높은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위령탑 양편 잔디 언덕 위로는 대한반공청년단에서 세운 나지막한 검은 비석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마치 위령탑을 호위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전시관 옆은 포로들이 생활하던 막사를 재현한 곳이었다. 거기서 단연 눈길을 끄는 곳은 64야전 병원이었다. 이 병원에는 특단의 사연이 감추어져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이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너어스들 옆에서”「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라고 했던 부산 제14야전병원의 거제도 분원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새로 발굴된 한 자료에 의하면 김수영은 부산 거제리 수용소에서 인민재판을 받고 거제도로 옮겨간 다음 거기서 ‘꾀병환자’가 되어 다시 부산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병원이 단순히 부상당한 포로가 치료를 받거나 요양을 하는 공간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선 의사나 간호사들 중에 미군이나 남한사람 외에 인민군 출신들도 있었다고 한다. 포로의 경우에도 인민군 포로와 중공군 포로가 함께 만나는 공간이다 보니 자연스레 양국 포로 사이에 비밀스런 접선과 모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단다. 아울러 말없이 거즈를 개키고 있는 김수영을 놀린 장본인이 정보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병원은 좌익 세력과 우익 세력이 함께 비밀모의와 공작을 벌인 각축장이기도 했을 터. 특히 김수영의 경우, 병원에서 미군 의료진과 환자를 이어주는 통역의 신분이었다는 사실에 한 가지 추정을 더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주(滿洲) 체류 시절, 곧 1944년 봄부터 1945년 8월이라는 약 1년여에 걸친 기간으로부터 그의 천부적인 언어능력(소싯적부터 한자에도 조예를 지니고 있었다)을 감안할 경우 중국어에도 일정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인민군 포로들과 중공군 포로들의 비밀접선이 그의 안테나에 포착되지 말라는 법도 없었을 터.

이런 추정과 가설을 펼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미완으로 그친 그의 소설 「의용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순오 속에는 그의 모습이 짙게 투영되어 있고 심지어 순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임동은이라는 인물은 좌익 문인의 거두(巨頭)인 임화(林和, 1908~1953)를 빗대 그린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를 감안한다면 순오가 북한군에서 탈출한 다음 포로수용소로 수감되어 병원에서 겪은 일들을 소설의 뒷부분으로 꾸밀 때, 거제도와 부산 제14야전병원이야말로 좌우가 가장 은밀하면서도 극적으로 부딪치는 공간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미완의 소설 「의용군」의 대미를 장식할 수는 없을 것인가.

이튿날 오전에는 고인의 미망인인 김현경 여사로부터 그의 거제도 시절 이야기 및 소설 「의용군」이 나오는 그 어간의 이야기를 녹취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중 뇌리를 찔러오는 발언이 있었으니 그의 입장을 가리켜 “좌익은 아니고 우익은 물론 아니고”라는 표현이 그것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광장」의 이명준처럼 제3국행을 택할 수도 없었다면……. 김수영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던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립도 아닌, 말하자면 설 자리와 입장이 묘연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무언가 미심쩍은 대목이 있는 것은 그가 은근슬쩍 남긴 “본의 아닌 우경 좌경을 하게 되었다”는 발언이다. 이를 더하면 보다 그럴듯해지는 것이 곧 좌익도 아니고 우익은 물론 아니지만, 우경하기도 했고 좌경하기도 했다고 풀어보자. 곧 양비론(兩非論)과 양시론(兩是論)이 아니라면 혹 ‘양시양비론’은 아닌가. 제대로 된 좌익이라면 좌경도 좋고 제대로 된 우익이라면 우경도 좋다는 것이 그의 입장 아니었을까. 문제는 한반도에서 그렇게 제대로 된 양날개를 구비한 좌우익을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 아닐까.

녹취를 마치고 찾은 곳은 동행한 B군의 부모님이 경영하는 이른바 ‘삼대냉면집’이었다. 올해로 92세이신 B군의 조모님으로부터 1.4후퇴 당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먹은 함흥냉면은 서울의 오장동 냉면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밑가지 않는 그런 맛이었다. 게다가 육수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어서 나는 그 자리에서 냉면 곱빼기로도 모자라 구수한 육수를 자그마치 여덟 잔이나 들이키고 말았으니……. 거기서 문득 김지하 시인이 제창한 ‘김치식 통일’에 더하여 이른바 ‘냉면식 통일’은 어떨까, 그 냉면발로 남북을 이어주는 것이 21세기식 통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