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 전시관

마침 사월초파일이었다. 이날 찾은 것이 무의미한 듯하나 죽은 이를 태우고 가는 상여에 장식되어 있는 꼭두를 떠올리면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라 하겠다. 죽음이 또 다른 탄생이라는 점은 불교의 윤회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쉽사리 이해되는 까닭이다.

꼭두박물관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2층에 자리하고 있다. 꼭두박물관에 근무하는 제자가 교통이 좋지 않다기에 지레 겁먹고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갔다. 그러나 대학로에 도착해서 보니 차로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도 많았지만 상큼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낙산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동숭아트센터에 이르러 보니 입구 오른편에 걸린 대형 걸개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설전인 <조선후기 꼭두>, 기획전시 <나의 꼭두인생 30년>, 그리고 놀이공간 <꼭두야 놀자> 등의 세 가지 걸개가 걸려 있었다. 걸개만으로도 이곳에 꼭두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으리란 호기심을 자극할 만했다. 실상 이 박물관은 동숭아트센터의 대표로 있는 김옥랑 관장의 소유물이다. 여기에서 소유물이란 꼭두에 한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관심과 열정의 소유자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유물이나 자료의 소유를 뜻하지 않는다. 청계천 골동품상에서 굴러다니던 꼭두들을 모아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 열정이 없었다면 아직도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먼지를 쓰고 앉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민속품을 모으고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리고 그들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낸 열정에 대해 존경의 박수를 보낼 만하다. 이러한 김옥랑 관장의 열정은 『한국의 나무꼭두』(1998)를 발간했을 때부터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 꼭두가 대중의 품으로 되돌아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말은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카페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 물었던 첫마디이기도 하다. 답변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쾌했다. 박물관을 개관할 만한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의 흐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라도 대중들과 해후를 하고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걸개그림을 뒤로 한 채 꼭두들을 빨리 만나고픈 욕심에 계단으로 이어진 박물관의 입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옥랑 관장의 안목이 담긴 꼭두들의 면면 또한 만만치 않은 문화적 수준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입구로 들어가는 공간 또한 꼭두를 주제로 삼아 청화(靑華)와 철회(鐵繪)를 이용한 타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전시된 유물이 무엇인지를 한눈에 확인시켜주는 디자인으로부터 역시 김옥랑 관장의 눈썰미가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안내실 왼편에 있는 상설전시실의 조그만 문으로 들어가니 입구 오른편에 있는 상여 위에는 각 위치의 명칭과 꼭두들의 배치를 그려놓았다. 꼭두들의 출신 성분을 잘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꼭두박물관에 수집된 유물들은 대개가 상여에 장식된 대표적인 민중예술의 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치장은 당대의 민중들이 꿈꿔왔던 이상향의 표현들이며, 그런 표현 속에 민중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제는 <불꽃의 새, 봉황>이었다. 봉황은 말 그대로 전설 속의 새다. 용과 학이 교미하여 낳은 것으로 봉과 황은 한 쌍의 새를 말한다. 성군이 출현하거나 상서로운 일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며, 우리나라 청와대의 휘장에도 봉황이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봉황을 맨 앞에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봉황은 원래 한 쌍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음양의 조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입부에 봉황을 배치한 것도 세상과의 조화를 꿈꾼다는 표현이 아닐까? 또 다른 측면에서 봉황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할도 하는데 전시실의 설명문에는 희망의 불꽃을 상징한다고 쓰여 있었다. 봉황의 머리는 다양한 붉은색 벼슬로 표현되고 있으며, 그런 벼슬의 모습이 불꽃을 연상하게 만든 것으로 유추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초록의 머리를 한 봉황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실 가운데 설치한 독립장에도 봉황을 세웠는데 아쉽게도 쌍이 아닌 한 마리의 봉황이었다. 그렇지만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봉황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다음 주제는 꼭두 인물상으로 꼭두를 대표하는 유물들이라는 점에서 전시실 가운데 배치한 것으로 보였다. 꼭두 인물상은 몇 개의 유형군으로 나뉘어 있었다. 먼저 단독으로 나타나는 꼭두들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피리를 부는 듯한 잽이(피리는 유실되었음)와 줄타기를 하는 사당패의 모습도 있으며, 그 끝에는 거북이 등에 푸른 토끼와 사내아이가 서 있는 꼭두를 배치했다. 이들 독립된 꼭두들의 얼굴은 평범한 얼굴이 아니라 희노애락을 담고 있는 우리의 얼굴이자 우리 조상들의 얼굴이다. 우리의 문화를 역동적으로 이끌어온 민중의 얼굴인 것이다. 이들 꼭두가 상여에 배치되었으니 분명 슬픔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연희집단이 배치되어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 꼭두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등장한다. 바로 우리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기획전시관

그 옆으로 연결되는 유물은 기승(騎乘) 꼭두들이었다. 이들이 타고 있는 동물들은 말, 호랑이 그리고 해태인지 모를 영수(靈獸) 등이었다. 무언가를 탄 인물들은 대개 문관이거나 무기를 들고 있는 무관이다. 즉 죽은 자를 호위하고 있는 인물군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타고 있는 동물들인데 호랑이나 영수 등은 아무나 탈 수 있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연결되는 것은 남녀 부부상과 여시종들, 그리고 마지막에 배치된 것은 풍물패였다. 이들 역시 죽은 이의 넋을 호위하고 풍물을 울리면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배웅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인물상들을 지나면 다시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대개 용수판에 표현된 용들이었다. 이들 역시 죽은 이가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동물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전시물은 두드러진 양각 형태의 용들이다. 특히 뿔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일반적인 용수판이 판목에 용의 모습을 새긴 형태로 나타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렇게 상설전시실을 둘러본 뒤 영상실을 통해 이웃한 기획전시실로 들어갔다. 이 전시를 놓친다면 평생 후회할 것임이 분명했다. 오히려 상설전시실이 기획전시실이었다면 좋았을 정도로 탁월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소장자인 김옥랑 관장이 유물의 구입 시기별로 꼭두를 나누어 놓았다는 점이었다. 즉 꼭두에 대한 소장자의 관심이 시기별로 점점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상설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물들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천장에 매달려 있는 학들이었다. 이들은 죽은 이의 넋을 천상으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커다란 동자상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들을 통해서 상여장식에 도교적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사각지주 스타일로 반쯤 꺾어 만든 꼭두나 서양 인형처럼 만들어 놓은 꼭두 또한 쉽게 보기 어려운 유물들이었다.

전시실을 나와 눈에 띄는 것은 화장실로 향하는 벽면이었다. 아마 화장실 입구를 이렇게 아름답게 꾸민 박물관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의실의 소담한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박물관 앞에는 문화상품들도 전시해 놓았는데 앞으로는 자체 문화상품을 개발해서 특허를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것 또한 박물관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의무일 것이다. 먼저 박물관의 입구를 쉽게 알리는 노력이 약했다. 대행 걸개에 방향표시를 했으면 더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자창 표지의 화살표만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계단에라도 표시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전시실마다 각 주제별 설명문은 붙어 있지만, 전시물에 대한 각각의 레이블은 부착되어 있지 않았다. 레이블은 전시물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소개인데 그런 성의가 약했다. 각각의 전시물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관람객에게 의미부여를 하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무언가를 새롭게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각각의 꼭두가 지닌 표정들이었다. 장승의 얼굴을 한국인의 얼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승의 우락부락한 얼굴보다는 꼭두의 그것이 더 친근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인물의 표정 하나하나가 순수한 한국인의 얼굴, 우리의 전통적인 얼굴상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꼭두의 얼굴을 통해 깊이 있는 내면의 우리문화를 읽어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1970년대 꼭두와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 김옥랑 관장도 그런 느낌을 가졌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