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로 사용중인 마치야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의 수도인 도쿄(東京)가 근현대 일본의 모습을 외부인 혹은 내국인에게 투사한다고 한다면, 교토(京都)는 전근대 일본의 모습을 상징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여 년 전 풍수지리학에 따라 교토 분지 안쪽에 헤이안쿄(平安京)가 수도로 건설된 때부터 교토는 ‘교토스럽다(京都らしい)’라는 언어적 표현으로 현재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본 고급문화의 역사적 실재가 되었다. 교토스러움이란 전통적인 것, 일본적인 것 그리고 아름다움의 추구 등을 의미하는데 교토에는 아직도 의식주 전반에 걸쳐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5월 교토 시내 곳곳에서는 <라쿠마치라쿠야(?町?家)>라는 행사가 개최되었다. 2005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는 이 행사는 매스컴과 관광안내에서도 접하지 못함은 물론 주변의 도시, 문화 계통 연구자들에게도 생소한 행사였다. 이는 <라쿠마치라쿠야>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테마가 교마치(京町)라는 시민의 전통적인 주거공간이기 때문이다.

로마(Rome)의 도무스(domus)나 우리나라의 한옥과 같은 상공업자, 즉 중간계층의 전통적인 주거형태를 마치야(町家)라고 하는데 교마치는 교토의 마치야를 일컫는 표현이다. 교마치의 역사는 1200여 년 전의 중세 도시 헤이안쿄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이안궁(宮)을 둘러싼 성곽 안에 동서남북의 사신을 배치하고 북쪽의 이치죠(一?)로부터 남쪽 쿠죠(九?)까지의 가로축, 거기에 세로축의 길들이 바둑판처럼 교차하던 그곳에 주거 내지 상업공간들이 존재했는데 당시 시민들이 살아가던 집이 교마치였다.

그러나 이는 황궁이나 사찰, 기온(祇園)의 기모노(着物)를 입은 게이샤(藝者)의 후예들처럼 교토스러움을 대표하는 여러 이미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변에 위치한 풍경이다. 즉 교토스러움에 충실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토를 찾아갈 때 기대하거나 방문하는 목적으로는 삼지 않는, 다시 말해 선전 문구나 매스컴의 보도로는 이어지지 않는 요소인 셈이다. 존재하지만 무관심의 영역에서 방치 당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 일본의 건축물들은 버블의 붕괴와 한신(阪神) 대지진이라는 두 사건을 만났다. 실용적이면서도 지진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건축물에 대한 필요성이 여느 때보다 크게 대두되었다. 문화와 미학과 전통이 사람들과 풍광을 휘감고 있는 교토라고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시대는 바뀌었고 마치야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더 이상 중간계층의 상공업자도 기술자도 아니었다. 게다가 마치야는 사시사철 지내는 방은 물론 화장실도 불편할 뿐더러 끊임없는 유지관리까지 필요로 했다.

미치아 풍경

한편 교토의 마치야를 아끼는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활동을 통해 그 불편한 것이 소중한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알리고자 했다. 1992년 연구회를 조직한 이래, 그 노력이 시 행정과 결합하여 2001년에는 정보센터를 설립했고 마치야와 관련된 사람들 간의 정보 공유의 장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치야의 가치를 알리고 실제로 체험케 하고자 하기 위해 기획한 행사가 바로 <라쿠마치라쿠야>였다. <라쿠마치라쿠야>는 마치야 가옥을 공개하여 견학할 수 있는 프로그램부터 ‘찾다/배우다/보다/만들다/맛보다/듣다/먹으며 듣다’라는 일곱 개의 테마를 구성하여 다양한 공간의 쓰임새를 방문객들로 하여금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게 했다. 그러나 실제 마치야 거주자들의 협력을 얻어 진행되는 행사이기에 내용이나 개최 장소, 심지어는 기간(올해의 경우 5월 15일~6월 13일)까지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하여 이 시기 교토 곳곳의 마치야에서는 몰래 몰래 전시회나 워크샵이 열린다. 하루 방문객 또한 평균 20~30명 정도인데 그들 역시 <라쿠마치라쿠야>라는 행사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보다는 지역 거주자, 장소 제공자 혹은 프로그램의 핵심 관계자들이 더 많다고 한다.

마치야의 새 입주자인 한 사람은 올해부터 젊은 학생들이 이끌고 있는 이 행사의 운영에 대해 통렬한 의견을 이야기해 주었다. 먼저 마치야에 접근하기 위한 금전적 조건이 너무나 높다는 것이었다. 마치야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주로 노년층인 집주인으로부터 승계 받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교마치야정보센터를 거치게 되는데 이 정보센터는 시내의 부동산업자들과 연계해 구입 혹은 임대 가능한 마치야의 정보를 입주 희망자들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마치야에 대한 개·보수 작업을 거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새로운 거주자들이 될 젊은이들에게는 어려운 금액이라고 했다.

또한 이 행사는 NPO(Nonprofit Organi zation)적인 자발적 활동에 의해 뒷받침되어 있는 관계로 결국 실질적인 스태프는 학생 등의 젊은이들이 이끌게 되는데, 학생들은 열정적이고 창의적이지만 지속성과 전문성이 결여되어 현장의 참가자(거주자)들과의 마찰이 생기기 쉬운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3년째 <라쿠마치라쿠야>의 한 축으로 참여해왔다는 그의 이야기는 일본의 NPO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그대로 압축해서 말해주는 듯했다. 결국 마치야는 나이 들고 돈이 있는 사람들만의 우아한 취미가 되고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들어오지 않는 공간은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물론 <라쿠마치라쿠야>가 네임밸류(ネ―ムバリュ―)를 가지지 못하는 까닭은 마치야 자체의 특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단 찾기가 힘들다. 각 집들이 골목 안에 위치한 데다 전철역에서부터 안내할 정도의 홍보력이 이 자발적인 조직에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교토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어 몇 번이고 버스를 타야 한다. 실은 자전거를 타고 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는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내부의 거주자들에게만 열린 수단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이곳저곳 숨어있는 마치야들을 찾아야하는 데다, 찾았다 해도 안이 보이지 않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공간 또한 넓지 않아 불편하다. 하지만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치야에 살고 있으면 계절의 변화를 느껴요. 여름의 안쪽 정원과 겨울의 안쪽 정원은 정말 다르죠.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낄 때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제가 부동산에서 일해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아파트들은 어떻게 하면 ‘차단’할 수 있는가에 맞춰서 지어져요. 마치야하고는 전혀 다르죠.”

“처음 이곳에 살기 시작했을 때 어쩜 이렇게 쓸모없는 공간이 많은지 생각했어요. 부엌은 길게 트여있고, 정원 같은 것도 있고, 화장실 가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고. 왜, 우리 사는 아파트랑 다르잖아요. 그런데 그 길게 트인 공간이 바람을 통하게 하는 거더라구요. 다 쓸모가 있는 거였죠.”

마치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연의 소재로 지어진 공간 속에서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더위와 추위, 소리와 냄새 그리고 바람. 그러나 현대식 건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모든 것들과의 차단을 주거공간에 바란다.

그것이 편리한 주거이기 때문이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마치야는 불편함과 쓸모없음 그 자체다. 하지만 마치야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잣대는 과거의 사람들로서는 억울할 만한 것이다. 마치야는 철저히 그 쓸모에 의거해서 설계된 까닭이다. 바뀐 것은 기준이다. 우리네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는 주거공간에서 모든 불편함을 차단하는 것이 과연 편리한 일인가. 용적률이 낮은 마치야를 없애고 좀 더 공간 활용이 가능한 현대식 건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은 쓸모 있는 일인가. <라쿠마치라쿠야>는 그러한 물음을 조용히 던지고 있다. 이와 같이 생활의 편리성과 가장 멀리 떨어진 활동을 꼽으라면 바로 문화적 활동, 즉 예술을 들 수 있지만,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마치야는 예전에는 몰라도 현대의 우리에게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다. 그것도 박물관에 박제되지 않은, 소소히 지나치는 일상 속에 존재하는 예술이자 도시의 구성물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자본을 생성하지 않는 노동의 뒷받침, 즉 자발적 봉사로 문화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라쿠마치라쿠야> 속에 숨겨진 발칙하고 흥미로운 특성이 아닐까.

미치아 풍경들

한편 ‘계속해서 진화하는 마치야’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에서는 올해 행사에 연주가로서 참여한 패널들이 마치야에서 하는 연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치야에서 연주하면 여타의 곳과는 다른 소리와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는 연주자 본인이 가장 먼저 깨닫는다고 한다. <라쿠마치라쿠야>의 실행위원이자 이날 클래식 기타를 들고 참여한 마쓰이(松井) 씨는 이를 배음(倍音)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한 음정의 소리를 들을 때 실은 대표되는 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음정들이 함께 울리고 있다는 의미의 배음이, 나무로부터 만들어진 악기와 나무로 만들어진 마치야 사이에서 더욱 깊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플루트와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Sonata for Flute and Continuo>를 합주했다. 통주저음은 바로크 시대, 반주자가 화음을 즉흥적으로 넣을 수 있도록 한 방법이며, 연주자가 작곡가의 영역에 시시때때로 들어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그 화음은 근대 이후의 음악처럼 정해진 코드를 짚어가는 것보다는 알기 어렵다.

보사노바 명곡 <이빠네마의 소녀Garota de Ipanema>의 합주도 울려 퍼졌다. 그때 아마도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상상했을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의 변화를 오감으로 감지하는 마치야라는 공간을. 전차와 버스로 찬찬히 들여다볼 수 없는 나의 동네 교토의 숨은 듯 잠자는 생활의 예술, 그 자체가 바로 마치야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