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사상선전대를 자청하는 그룹이 공장 노동자들 앞에서 정치선전을 하고 있다. 여기 40여 년 전의 흑백사진은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하 문혁) 당시 중국의 일상을 찍은 것이다. 이 마오쩌둥 사상선전대 뒤로 보이는 공장은 중국인들에게는 친숙한 건물이다. 1967년 이 사진을 찍은 장소가 바로 2010년 5월부터 10월에 걸쳐 개최되는 상하이(上海) 엑스포의 메인무대인 황푸강(??江) 기슭 장난조선장(江南造船場)이다. 극좌(極左) 노선이 횡행하던 문혁 당시의 모습과 물질문명, 향락주의의 홍수 속에 빠져있는 오늘날의 표정을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때 ‘동양의 마도(魔都)’라고도 불리던 상하이는 세계대전 이전 각 열강들의 조계가 있었던 곳이다. 아마 외국인들에게는 중국에서 가장 친숙한 도시가 아닐까. 실제로 전전(戰前)의 상하이 일본조계는 대륙침략의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서양 열강들의 조계가 있었던 까닭에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일본인들도 적지 않았다. 상하이는 김구(金九, 1876~1949),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등이 활동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언급할 때도 빠뜨릴 수 없는 도시다.

1967 문혁 당시 장난조선소, 현재 상하이 엑스포의 메인무대다

그 상하이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대표 상공업도시로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이번 상하이 엑스포로도 확연히 알 수 있듯 번영의 상징적 존재인 상하이는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도시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상하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우익(右翼) 도시이기도 했다. 1921년 중국공산당은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우익 작가인 루쉰(魯迅, 1881~1936)도 1933년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상하이에 머물렀다. 이렇듯 현재 가장 자본주의적인 도시 상하이는 다른 한편으로 공산주의적 도시의 자취도 간직하고 있으며, 문혁 당시의 사진과 현재 엑스포 메인행사장의 모습에서 오는 격차야말로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가 갖는 폭과 깊이라 할 수 있다.

올림픽과 엑스포, 즉 만국박람회(이하 만박)의 개최는 국제사회에서의 국가 인지도 향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같은 나라에서 올림픽과 만박을 차례로 개최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올림픽에서 만박 개최에 이르기까지의 리듬감은 그 사회의 성장에 대한 강한 인상을 국내외적으로 남긴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예다. 1964년 도쿄(東京) 올림픽에서 1970년 오오사카(大阪) 만박까지의 시기는 도쿄와 오오사카 사이에 토카이도신칸센(東海道新幹線)이 개통되고, 컬러TV와 같은 가전제품이 급속도로 보급되는 등 국가와 국민 모두가 번영과 성장을 향유하던 시기였다. 아직도 그 시절의 진보와 발전을 그리워하는 일본인들은 많다. 특히 오오사카 만박은 도쿄 올림픽을 통해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낸 일본이 그 성장과 발전을 구체적으로 어필한 무대이기도 했다. 2005년에 개최한 아이치(愛知) 만박과 비교해보면 오오사카 만박의 시대적 의의는 역력히 두드러진다. 사회가 한창 발전하는 시기에 개최되는 대형 이벤트는 국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1988년도 서울 올림픽, 1993년 대전 엑스포의 예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대국이었지만 근대화에 늦어 반식민지로의 전락을 경험하고 이후 전쟁과 혁명을 거쳐 다시 대국의 길을 걷기 시작한 중국의 경우, 그 영향이 더욱 클 것이다. ‘중화(中華)의 부흥’은 청나라 말기 이래, 중화민국시대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시대와 근현대를 거쳐 계속 이어져 온 중국인들의 비원(悲願)이었다. 19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을 제압하며 정권을 탈취한 중국공산당에게도 올림픽에서 만박, 즉 엑스포에 이르는 일련의 빅 이벤트는 고도의 경제성장과 국력 증강을 전면에 내세워 스스로의 정당성을 국내외에 재확인시킬 수 있는 세레머니였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대혼란에 빠졌던 2008년 금융위기를 비교적 작은 상처로 극복해냄으로써 중국의 현재에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이 눈에 띠게 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번영을 성세(盛世) 국운이 번창하고 평화로운 시대라 칭하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다.

상하이 출신의 홍콩작가 치엔콴중

상하이 출신의 홍콩 작가로 중화권의 화제작 『성세(盛世)』(2009)를 집필한 치엔콴중(陳冠中)은 “중국인은 한(漢) 또는 당(唐)나라 시대, 청조(淸朝)의 건가(乾嘉, 건륭乾隆과 가정嘉靖) 등을 성세라 말했던 적은 있어도 그 이후의 시대는 실패한 시기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근 2~3년 동안 다시 성세라는 말을 하게 됐다. 현대의 중국인들이 성세라는 단어로 중국을 칭한 것은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개화개방 30주년을 맞이했던 지난 2009년을 중국인들의 의식이 변하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꼽고 있다. 치엔콴중은 2009년 이후 중국 여기저기서 성세화탄(盛世華誕, 성세의 탄생)이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거쳐 상하이 엑스포를 앞둔 분위기 속에서 성세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느끼는 중국인들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상하이 엑스포를 포함한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들이 성세의 도래를 자축하는 분위기로 중국을 이끈 것이다.

반면 대외적인 효과는 무엇일까. 현재 대국화의 길을 걷는 중국에 있어 2010년 상하이 엑스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부흥하는 아시아 대국으로서의 국위와 존재감을 전 세계에 어필하고 지금까지의 발전과 성장을 실감케 할 수 있는 무대다. ‘세계의 공장’, ‘13억 거대 시장’ 등 지금까지 중국의 대국적 이미지들은 많았지만 금세기에 들어 막연했던 그 이미지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에 달하는 1조 달러 가량의 외자유치, 일본을 제외한다면 세계 제2위로 도약 가능한 GDP, 선진 병기로 무장하여 강병의 길을 내닫고 있는 인민해방군,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의 존재 등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와 현상을 일일이 예로 들기 어려울 정도다. 

국위선양의 의도가 강한 올림픽에 비해, 비즈니스의 거대한 전시장이기도 한 엑스포는 부와 번영을 상징한다. 뮌헨(Munich) 올림픽(1972)을 개최한 나치 독일과 모스크바(Moskva) 올림픽(1980)을 개최한 소련, 당시 세계 유수의 강국으로 존재했던 두 나라 모두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드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같은 정권 하에서 엑스포 혹은 그와 비슷한 이벤트를 통해 국가의 번영을 과시하지는 못했다. 상하이 엑스포는 베이징 올림픽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대국 중국의 이미지에 새로운 깊이를 더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국위선양은 주변 국가들에게 자칫 위화감을 부채질하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중국의 대국화와 함께 경제, 군사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중국위협론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 정권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후의 경제성장은 필수 요소이며, 이를 위해 주변 국가와의 선린우호(善隣友好)는 불가결한 조건일 것이다. 앞으로 더욱 확고해질 중국의 대국적 이미지를 부와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엑스포를 통해 문화적 색채로 포장하고 싶어하는 중국의 의도는 그래서 절실하다.

엑스포, 즉 만박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60여 년 전인 18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11일 런던(London)에서 처음으로 만박이 개최되었다. 행사장에는 기관차, 고속증기선, 대형 기중기 등 당시 최첨단 공업제품들이 전시되었다. 이렇게 ‘기술 최우선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전시의 경향은 오늘날까지 만박의 모습 또는 위상을 규정하고 있다. 지금껏 개최된 만박 중 획기적이었던 것으로는 1851년 런던 만박, 에펠탑을 건설했던 1889년 파리(Paris) 만박, 자동차의 대중화를 예감하게 만들었던 1939년 뉴욕(New York) 만박, 그리고 전신(電信)시대의 개막을 알린 1970년 오오사카 만박 등을 들 수 있다. 이 네 만박의 공통점은 신시대의 도래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8년 리스본, 2000년 하노버, 2005년 아이치 등 최근 만박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과학기술과 인간생활의 균형을 지향하려고 하는 분위기다.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이번 만박 또한 미래도시 건설을 보여주는 박람회로 기억에 남을 것인가.

행사장 선정방법은 크게 런던이나 파리와 같이 기존 도시의 중심부를 행사장으로 삼는 방법과 오오사카 만박과 같이 기존 대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를 행사장으로 하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개최지의 도시건설 방향을 확정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하다. 현재 파리의 관광명소가 된 에펠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9년 제4회 파리 만박 당시 만들어졌지만 결과적으로는 파리 중심부의 도시구조를 좌우하는 존재가 되었다. 파리 만박은 구 시가지를 포함하고 있는 파리 시를 정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반면 오오사카 만박의 경우, 오오사카 근교에 있는 스이타(吹田) 시의 350헥타르에 달하는 센리구릉(千里丘陵)을 행사장으로 개발했으며, 만박이 끝난 뒤에는 개발을 거듭하여 거대한 주택단지를 형성했다. 센리구릉은 20세기 초부터 학원가와 주택가를 형성해 왔지만 만박을 개최하면서 신흥주택지로서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보면 황푸강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하이 엑스포는 분명 런던, 파리와 같이 도시중심부를 재개발하는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 통지(同?)대학 건축·도시계획학원 원장이자 상하이 엑스포의 총기획자인 우치치앙(?志?)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엑스포가 도시발전에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라도 중심부로 회귀하는 것은 바람직하며, 여러 나라들과의 사상교류의 장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 교외에서 이루어질 경우 이러한 사상의 강도가 빈약해지기 때문에 도시 중심부에서 진행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삼연생활주간(三聯生活週刊)』, 2007년 4월 2일자 상하이 엑스포의 테마인 보다 좋은 도시, 보다 좋은 생활(Better City Better Life)이 나타내듯이 도시 중심부를 행사장으로 한 것은 바꿔 말해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상하이를 그 중심부부터 재정비하려는 정책적 목표가 숨어있는 것이다.

옛날 황푸강변의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던 상하이는 200여 년이 지나 어느새 인구 2,000만을 거느린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로 성장했다. 마도라고도 불렸던 상하이는 그 복잡한 역사를 반영하는 것인지 여러 신구 건축물들이 혼재한 도시기도 하다. 우치치앙은 복잡한 조건을 지니고 있는 이 거대 도시에서 엑스포를 준비하면서 아래와 같은 과제를 꼽았다.

엑스포 역사상 과거 건축물을 활용하는 데 성공한 전례는 거의 없다. 엑스포의 심벌이 될 만한 창조적인 건축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의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건축물은 점점 더 엽기적으로 변하는 모순에 부딪히고 만다. 상하이 엑스포 행사장에는 장난조선장, 난시발전소(南市?電所), 상강제삼공장(上鋼第三工場) 등 중국이 걸어온 개방과 현대화의 길을 기록하고 있는 건물들이 있다. 이 건물들은 현대화의 중요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더불어 이러한 역사적 건축물 전환의 성공은 엑스포뿐만 아니라 미래도시의 모습을 구상하는 데도 보다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 우치치앙은 고밀도로 건설된 현대도시에서의 3대 화해(조화)로 ‘인간과 인간과의 화해’,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 ‘역사와 미래의 화해’를 들고 있다. 또한 ‘화해’는 후진타오(胡錦濤) 정권이 내세우는 시정목표이기도 하다. 엑스포를 계기로 상하이에서 인류와 도시의 화해가 얼마나 실천될 것인가가 앞으로 중국 도시의 모습을 점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상하이 엑스포 중국관의 모습

개발도상국 또는 사회에 있어 엑스포는 국민이 오감을 통해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장이다. 상하이 엑스포 또한 상하이 시민을 중심으로 한 중국인들이 세계와 만나고 실감하는 장이 될 것이다. 동시에 세계 속에서의 중국을 인식하고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개막 직후 상하이 시 버스와 지하철 때문에 준비가 부족했다고 말들이 많았지만 현장에서 조정을 취하는 중이며 모두 원만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상하이 엑스포를 바라보는 세계의 눈, 세계의 눈을 인식하고 있는 상하이 시민들의 눈, 이들이 유형 또는 무형의 진보와 개선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오히려 엑스포 이후가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빅 이벤트를 통해 고조된 분위기에서 깨어날 때 스스로를 위한 새로운 개발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사이 미국과 중국의 미묘한 균형 변화와 함께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세계의 질서 또한 변화할 전망이 보이는 지금, 국제사회는 중국으로 하여금 지금까지보다 더욱 대국에 걸맞은 책임을 요구할 것이다. 어떻게 21세기의 대국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대국을 꿈꿀 것인가. 중국으로 향하는 시선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즈니스 기회로서의 높은 기대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냉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