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나타나는 것이 프로그래밍된 체험들이다. 사회적 삶은 총체 예술이 된다. - 노르베르트 볼츠(Norbert W. Bolz), 『컨트롤된 카오스』 중에서
노년의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영국 출신의 화가이자 사진작가가 아이폰의 브러시 기능을 통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해외 토픽에 나오는 지금,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발달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매년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를 쫓아 배우고 소비하기에도 바쁘지만 우리의 삶은 급변하지 않고 천천히 변화할 뿐이다. 눈에 보이는 여러 문화와 기술 트렌드가 이전 시대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지만 19세기 이래로 우리의 일상은 변한 것보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예술가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장르를 만들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창작은 급변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데이비드 호크니도, 늙은 데이비드 호크니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붓으로, 아이폰의 브러시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무분별한 열광은 종종 창작 환경에 대한 불필요한 논의를 야기하기도 한다. 원고지로 글을 쓰고 종이책을 내던 작가들이 키보드로 글을 쓰고 온라인의 전자적 문서(하이퍼텍스트)를 펴내기 시작했을 때도 전 세계적으로는 많은 연구들이 있었다. 작업 환경과 결과물의 변화로 문학의 본질까지 건드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고 새로운 문학이 등장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런 연구는 철지난 유행이 되었다. 이제 어떤 기대나 우려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진 때문에 미술이 죽고, 영화 때문에 소설이 죽으리라는 호들갑처럼. 그렇다면 최근의 소셜 미디어 열풍은 예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소설가 박범신은 인터넷 블로그로 소설을 연재하여 출판했고, 이외수는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들을 모아 책을 펴냈다. 일차적인 출판이 온라인에서 행해지고 실시간으로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의 출판이 마치 뒷북치듯 오프라인 서점에 깔리는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2008년 뉴욕 브룩클린 미술관은 흥미로운 전시를 기획했다. 이라는 이 전시의 목적은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가 『대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에서 언급한, 대중의 의사 결정이 전문가들의 그것보다 현명하다는 주장이 미술에서 가능한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 정작 중요한 사실은 대중의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먼저 예술가들에게는 페이스북, 플리커(Flickr)와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전시할 사진 작품들도 온라인으로 받았다. 그리고 웹사이트에 작품을 전시하여 일반인들로 하여금 작품을 평가하도록 했다. 모든 전시 활동이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먼저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작품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바탕으로 실제 미술관 전시가 이루어졌으니, 즉 ICT의 발달로 인해 예술의 창작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창작 이후의 어떤 과정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 1968)이 변기를 <샘Fountain>이라 이름 붙이고 미술관에 전시했을 때 그 의도는 분명했다.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며 ‘미술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미술이란 존재하지 않고, 누구나 원하기만 한다면 미술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1936)이라는 소논문을 통해 기존 예술 작품이 가진 종교적, 정치적 아우라(aura)가 기술 복제를 통해 사라질 것이고 예술은 대중의 것이 될 것이며, 예술의 정치화를 통해 파시즘과 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것을 주도할 예술 장르로 사진과 영화를 주목했는데, 그렇다면 뒤샹의 의도는 성공하고 벤야민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일까. <샘>은 한 번 분실된 후 새 변기에다 <샘>이라고 적어야 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뒤샹의 의도와는 반대로 오로지 그만이 상점에서 파는 변기를 <샘>이라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도발적인 레디메이드(readymade)는 20세기 이후의 미술을 개념미술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또한 아우라가 사라지고 정치화된 예술을 통해 소망했던 벤야민의 어떤 사회 역시 결국 오지 않았다. 도리어 뛰어난 예술가가 되려면 시장과 정치를 먼저 알아야했다. 예술 권력은 강화되었고 전문가와 아마추어, 대중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20세기 중후반까지 예술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박기원展 이미지 제공_국립현대미술관
제롬(Jean Leon Gerome, 1824~1904)이나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 같은 아카데미 화가들이 보기에 모네(Claude Monet, 1840~1926),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마치 형편없는 아마추어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마추어들은 현대미술(Modern Art)을 만들었다. 브레히트는 연극무대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의 서사극 이론은 관객이 무대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개방된 무대를 지향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얼마 전 끝난 국립현대미술관의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박기원展>은 현대미술이 어떻게 대중의 참여를 바라는가를 드러내는 전시였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예술의 시대는 지나가고 평등과 개방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뒤샹과 벤야민이 그랬던 것처럼.
소셜 미디어가 바라는 것도 이것이 아닐까. 모두에게 개방되고 모두가 참여하며 공유하는 어떤 것.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운영하며 대중과 대화하고 있다.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블로그에 올려 공유하고 온라인을 통해 판매까지 하고 있다. 미국시인아카데미에서는 ‘Poem Flow’라는 아이폰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 휴대전화용 응용 소프트웨어를 일컫는 말을 만들어 휴대전화로 시를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어플리케이션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미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들은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로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고 있으며, 미국의 인디아나폴리스 미술관은 아예 소셜 미디어 기반의 웹사이트인 ‘ArtBabble’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개방성으로 인해 일반인들도 이러한 활동이 가능해졌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나 직접 그린 그림, 그리고 자작시나 소설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개하고 공유하여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가능해졌다. 즉 원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온라인으로 전시하고 평가받는 일이 가능해졌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신들의 전시장을 가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ArtBabble 홈페이지
소셜 미디어의 힘은 예술가와 대중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는 창작의 기반을 흔드는 일이 아니라 예술 유통의 기반을 흔들어 예술가의 존재를 새롭게 정의내리고 있다. 화가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해야 한다든지 소설가나 시인이 되기 위해 등단을 해야만 한다는 기존의 공식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기존 예술 권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소셜 미디어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하는 것이 현대 예술가의 중요한 활동이 된 셈이다.
2006년 <타임> 지는 ‘세계의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일 뿐’이라는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의 사상이 현대에서는 더 이상의 호소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하며 그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다. 뒤샹이 원했고 벤야민이 의도했던 바, 모든 이들이 예술가가 되고 예술이 무한 복제, 공유되는 공간이 소셜 미디어로 가능해진 것이다.
#저자 약력
金用涉 1973년 경남 창원생. 프리랜서 칼럼리스트, 블로그 파아란 영혼(http://intempus.tistory.com) 운영자. 최근 저서로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공저) 등. yongsup.kim@yah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