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 6월 우리는 여러모로 뜨거운 시기를 보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은 지방선거 운동 개시일에 맞추어 발표되었다. 이 조사 결과에서 폭발한 어뢰 잔해에 쓰인 파란색 1번의 진위 논란은 북한의 반발과 함께 국내외 정세를 소용돌이치게 했다. 4대강 살리기 반대를 기원하던 한 승려는 자신의 몸을 태워 소신공양(燒身供養)했다. 6월 2일 지방선거에 이르러 시민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표로 보여주었다. 아니, 표로 보여주었다며 소셜 미디어를 향해 외쳤다. 이들은 정치적인 메시지가 사적인 대화와 섞이는 것에 개의치 않고 파도타기를 즐겼다.

1999년 말 <타임TIME> 지는 지난 천 년 동안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발명으로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의 금속활자를 선정했다. 단순해 보이는 이 발명품 하나가 전 유럽, 나아가 세계를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금속활자 발명 후 대량 인쇄기술이 보급되면서 지배층 밖에서도 지식을 얻을 기회가 생겼으며, 지식을 독점하던 권력층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되었다. 그 위에 꽃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은 대중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었다. 이는 미디어가 정치와 권력에 영향을 준 첫 번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혁명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의 커다란 변화는 여러 번 있었다. 활자의 발명과 인쇄물의 보급 외에도 전신 혹은 전화를 아우르는 실시간 음성 소통, 사진과 소리뿐만 아니라 동영상까지 포함하는 기록 매체의 혁신―특히 20세기의 문화를 완전히 뒤바꾼 라디오와 TV의 보급―이 있었다. 이러한 미디어 변화는 사회의 형태를 비약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이 과정에서 대중은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TV의 등장은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정치인이 브라운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유권자에게 직접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다.

6월 2일 지방선거 당시 연예인들의 투표 인증샷

그러나 이상 언급한 미디어들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음성소통은 거리와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으나 다수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활자와 라디오, TV 등의 기록매체는 많은 정보를 다수에게 전달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소통하거나 피드백을 받을 수는 없다. 대중을 통제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이상의 역할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한계는 당시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다. 1927년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라디오 이론’을 통해 이런 주장을 했다.

라디오는 전달장치에서 소통장치로 전환되어야 한다 …중략… 이 엄청난 전환은 라디오가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청취자가 듣는 것만이 아니라, 청취자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머물게 된다.

‘청취자끼리 대화가 가능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소통한다’라는 특징만 놓고 보면 지금의 소셜 미디어를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상상을 조금 발전시켜 브레히트가 자신이 꿈꾼 라디오 이론을 실현시켰다면 동시대에 살았던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집권 또한 불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다. ‘우매한 대중은 많은 정보를 소화하지 못하니 간단히 한두 가지를 반복해서 주입시키겠다’라는 뜻을 가진 히틀러와 소셜 미디어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는 정보를 통제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부적합한 도구 아닌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미디어의 혁명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이제는 소셜 미디어가 우리의 삶을 뒤바꾸고 있다. 소셜 미디어란 기존의 미디어들과 달리 다수 대(對) 다수가 정보를 교환하고 전달할 수 있으며, 대화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장하거나 더 나은 정보를 직접 선별해 전달하는 역할까지 겸한다. 정치인이나 전문가 등의 말을 고스란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셜 미디어 내부에서 검증한 후 대안까지 제시하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정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가디언Guardian> 지는 지난 5월 6일 자국 총선에 대해 최초의 소셜 미디어 선거(The first social media election)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우선 각 정당이 유투브(You Tube),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 등의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다양한 선거 캠페인을 벌였고, 18~24세의 젊은 층 중 약 25%는 소셜 미디어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했다.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온라인 배지를 게재한 사람만도 7만 명에 달했다. 페이스북과 유투브가 제휴한 각 정당 대표 간의 디지털 토론은 40만 명이 지켜보았으며, TV토론회가 생방송되는 동안에는 초당 27건의 관련 트윗(twit)이 오갔다. TV나 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고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교류한 후 투표를 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양상이었다.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2008년 11월, 엄청난 자금력도 체계적인 조직도 없는 오바마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최초의 ‘네트워크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당선의 공을 모두 소셜 미디어에 돌리는 것은 조금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블로그 미디어 리드라이트웹(ReadWriteWeb.com)의 조사 결과, 선거운동이 시작된 후 오바마를 언급한 블로그 포스팅만 무려 5억 건이었다.(맥케인은 1억 5,000건에 그쳤다) 블로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트위터에는 13만 명, 마이스페이스(MySpace)에는 84만 명, 페이스북에서는 300만 명이 그를 친구로 등록했다. 개표 전 이미 소셜 미디어에서는 그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바마의 엄청난 인기와 함께 소셜 미디어 역시 덕을 보았다는 것이다. 가장 큰 수혜자인 트위터를 예로 들면 대선 기간에만 가입자가 135% 가량 증가하여 세계 3대 SNS의 자리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볼 수 있다. 지난 6월 2일 선거에서는 모든 정당이 ‘소셜 미디어와 함께하는 지방선거’를 표방했으며, 트위터와 미투데이, 싸이월드 등에서 정치인들이 직접 유권자와 소통하고 자신의 정책을 표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투표 마감시간에 이르러 투표가 급증했고 젊은이들의 투표율이 예년보다 높았으며, 하루 동안 연예인을 비롯한 7,000여 건의 ‘투표 인증샷’이 타인의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 미친 영향이나 성과만 놓고 따질 경우, 앞서 이야기한 영국의 총선이나 미국 대선에 비견하기는 어렵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실제 소셜 미디어 활용 인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크다. 지난 5월 소셜 미디어 사이트 이용자 수는 트위터 95만, 미투데이 65만이었다. 싸이월드 이용자가 1,500만 명이라지만 지인 네트워크인 ‘일촌’을 기반으로 하는 폐쇄적 성격을 감안하면 파급력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보다 더 큰 까닭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후보자의 활동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활용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그나마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트위터에서도 절반 정도가 선거를 앞두고 뛰어든 케이스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효과를 발휘하는 소셜 미디어로부터 큰 반향을 얻길 바란다면 욕심일 것이다. 후보자가 세분화되는 지방선거인 탓에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 같은 대형후보 몇몇을 제외하면 관심을 모으기 어려웠다는 핸디캡을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소셜 미디어 역시 이슈를 선점한 이가 주도권을 쥐는 승자독식 체제임을 증명한 셈이다. 침묵하는 다수와는 별개로 말이다.

노회찬 대표 트위터

이런 현실만 보면 소셜 미디어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미미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자체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희망을 접기는 이르다. 게다가 웹과 휴대전화 등을 통해 정치인과 근거리에서 친근하게 소통하는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대중의 냉소나 혐오를 걷어낸 사례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지금도 트위터에서 엄청난 팔로어(follower)와 소통하는 노회찬이 있고, 그 이전에도 웹에서 뭉친 노사모가 정치세력이 된 전력이 있다.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이유로 흐름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 인쇄매체가 대중의 손에 권력을 쥐어준 것처럼 지금의 소셜 미디어가 앞으로의 역사와 정치 지형을 바꿀 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