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강력한 특수성
중국이 개혁, 개방의 노선을 추진한 지 삼십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잔혹한 역사를 뒤로 한 채 새로운 경제노선과 공산주의의 가치를 동시에 품고 미국과 견줄 유일한 대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커다란 지문을 남기고 있다. 특히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중국에 분 ‘셴다이(現代) 열풍’은 피로 얼룩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좌절을 초고속 경제성장의 희망과 불안으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물론 이 셴다이화 속에는 중국 현대미술도 포함된다. 최근 이십 년간 중국 현대미술의 성장 정도는 요컨대 각종 미술품 경매에서 기록된 중국 현대작가들의 작품 가격표가 가장 명확한 지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내용은 정작 셴다이화로 무마된 자유로운 개인의 손상과 정체성의 혼란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1990년대 이후 중국 현대회화의 흐름은 화가 자신의 경험이나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태도와 깊이 관련되는데, 이것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특수성이 고스란히 개인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현대미술의 대부(god-father)로 불리는 미술평론가 리셴팅(栗憲庭)은 이러한 특징을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아트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 말은 상당히 특이한 용어다. 마치 ‘냉소적’, ‘정치적’이라는 관형사가 ‘사실주의’와 ‘팝아트’라는 명사 앞에 반대로 붙여진 것이 아닌가할 정도로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의미상의 모순과 혼돈을 가져온다.

그러나 의미의 모순과 혼돈이야말로 오늘날 중국사회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고도 소비사회와 굳건한 사회주의의 공존, 연해도시의 신부유층과 내륙농촌의 소작농 간의 괴리, 코카콜라 광고판과 오성홍기 아래 단결한 인민의 포스터. 이렇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중국의 일상 속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전통이 냉소적 자기복제로, 냉담한 워홀(Andy Warhol, 1928~1987)식의 팝아트가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로 탈바꿈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력화된 붉은 개인
특히 중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부상(浮上)의 신호탄이 된 화가, 팡리쥔(方力鈞)과 웨민쥔(岳敏君)은 개인사와 중국사회가 부딪히는 경험을 희화화된 자화상의 증식을 통해 보여준다. 적막한 공간 속에 붉은색의 일그러진 인물들이 만개한 키치(kitsch)처럼 놓여있는 팡리쥔의 작품들은 기독교 성화(聖畵)의 도상에서 비롯된 배경과 꽃들로 장식된 밀교적 분위기를 갖는다. 특히 천국으로 승천하거나 구름 위에 잠든 붉은 아이들의 이미지, 또는 붉은 젊은이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마치 성령을 기다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각각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시대의 출산장려정책과 홍위병들의 충성심을 연상시킨다.

마오 시대의 어린아이로 문화혁명의 조리돌림을 목격한 팡리쥔의 세대에게 마오는 절대적 통치자로서 미화되고 선전되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서 셴다이화 이후 마오 신화는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는 신처럼 성스러움 그 자체, 보이지 않는 신(혹은 손)으로서 중국현실을 비현실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곤혹스러울 정도로 유쾌하게 웃고 있는 웨민쥔의 인물들 역시 과장된 얼굴로 박제가 되어버린 개인의 끝없는 자기복제를 보여준다. 예컨대 웨민쥔의 <마네> 시리즈는 <풀밭 위의 식사Le Dejeuner sur L’herbe>, <폴리 베르제르의 바Un bar aux Folies Bergere>,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L’Execution de Maximilien>과 같은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도상 위에 특유의 웃는 낯을 이식한 작품들이다. 여기서 화가가 마네를 선택한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19세기 파리의 모던 라이프가 지닌 이면을 통해 진정한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 식의 ‘지금(The Now)’을 재현한 마네의 작품들은 1990년대 이후 중국의 포스트모던 라이프의 이면을 교묘하게 꼬집는다.
더욱이 18세기 혼란기 스페인의 정치와 폭력과 죽음에 관한 대표 이미지인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1808년 5월 3일>은 프랑스의 야욕에 희생된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으로, 그리고 톈안먼광장에서 희생된 중국인민들로 이동된다. 이들 작품 속에서 가해자인 폭력의 주체는 얼굴을 볼 수 없는 익명성을 띠고 있는데, 하나같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웨민쥔의 얼굴들 역시 익명의 존재들, 권력에 의해 언제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폭력에 희생될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들이다.

웨민쥔, 처형(위)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아래)

결국 냉소적 사실주의의 기수인 팡리쥔과 웨민쥔의 인물들은 모두 거대국가의 권력 앞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얼굴들은 모두 가볍고 얄팍한 상태의 캐릭터들로서 권력의 간택, 권력의 폭력에 대해 침묵할 뿐이며, 그래서 이들의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화가 자신의 희화화는 중국사회 속의 무력화된 자신의 자화상이 된다.

왕광이, <따피판> 시리즈



마오, 마오, 마오
쟝홍투(張宏圖)의 <마오> 시리즈는 마오쩌둥의 초상 포스터로 둘러싼 통조림이다. 워홀의 캠벨 수프통을 연상시키는 지극히 팝아트적 제스처와 함께 중국사회를 여전히 좌지우지하는 마오쩌둥 이데올로기를 마치 유통기한이 없이 유지되는 통조림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워홀의 <마오> 초상이 인물과 관련된 내용과 의미를 탈각시키고 그저 하나의 냉랭한 ‘이미지’로서 존재한다면, 쟝홍투의 <마오>는 그와 관련된 의미와 역사에 대한 언급이 가장 주요한 ‘메시지’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메시지야말로 중국 팝아트의 정치성이 기능하는 방식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소비사회가 결합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왕광이(王廣義)의 작품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전형적인 문화혁명기 선전 포스터에 코카콜라나 m&m’s 같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표 이미지들을 병치한 그의 <따피판(大批判)> 시리즈는 총체성이 붕괴된 중국사회 속에서 섞일 수 없는 가치관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이미지 속에 등장하는 숫자들의 배열이 눈길을 끄는데, 인민 포스터 이미지와 코카콜라 위에 무작위로 찍혀있는 이 바코드들은 현재 중국에서 일어나는 대립이항의 공존, 정치적 아이덴티티의 균열과 같은 불균형 그 자체가 상품화되었음을 나타낸다. 즉 코카콜라가 상품이듯이 중국의 이념도 똑같은 자본주의에 맥없이 잠식당한 허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비판’이라는 거창한 제목은 그야말로 텅 빈 구호, 혹은 블랙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왕광이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중국의 현실이다. 

마오를 그리드(grid)의 증명사진 틀 속에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해 놓은 그의 또 다른 작품 <마오 AO>나 위요우한(余友涵)의 <무제(마오/마릴린)> 역시 이미지로 기능하는 마오의 존재, 즉 하나의 스타, 하나의 허상으로 중국을 대표하고 중국인을 움직이는 마오의 정치학을 보여준다. 특히 위요우한은 마오의 선전용 기록사진을 통해 미화되는 이미지를 더욱 키치화시킴으로써 현실화된 기록사진의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비현실화시키고 공허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국의 팝아트에서 마오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재생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중심에 서 있는 마오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로 훼손될 수밖에 없는 중국의 사회주의 이념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 그러나 마오주의와 자본주의는, 전자가 인민의 물질생활 개선과 인구증강을 통해 봉건주의의 완전한 탈피, 이른바 신민주주의 혁명에 성공했다면, 후자 역시 십억 인구의 소비생활과 삶의 질의 혁신을 통해 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확고히 해왔다. 그런데 중국의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아트는 바로 이 피상적 긍정성 속에 나타나는 이면과 균열에 주목한다. 그래서 중국 현대미술 속의 마오는 강력한 상징적 조작이자 허구의 상징으로서 오늘날 중국이 떠안고 있는 극단의 공존과 모순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것이다.

슬픈 풍요에 관하여
1996년 위안밍위안(圓明園)을 강제해산시킨 사건을 통해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의 인권문제가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이슈로 떠오른 이래, 중국의 현대회화는 순식간에 국제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다.* 중국의 경제성장률과 중국 현대미술 작품의 가격은 이렇게 동반 수직상승 곡선을 그렸지만 그에 걸맞은 정치적 민주화는 동반되지 못했다. 거기에 신흥 부유층의 등장으로 신계급, 신격차사회로의 진입 앞에 선 중국은 소비사회의 냉혹함에 맞닥뜨리지 않으면 안 됐다.

이런 점에서 루샤오판(茹小凡)의 사탕발림 같은 풍선들, 그 안에서 춤추는 귀여운 동물들은 모두 현대 중국 속에 만연된 풍요와 허영을 마시고 부풀어오른 꿈속의 전경이다. 그러나 그의 풍선들의 애매한 뒤엉킴은 마치 뒤집어진 신체처럼 내장적인(visceral) 잔혹함을 드러낸다. 어리숙한 동물의 표정, 드롭스(drops)의 달큰한 색채, 그리고 뒤엉킨 내장은 부유한 중국 속에 내재된 근원적 문제의 가시화에 다름 아닌 것이다.



루샤오판의 작품들

중국 현대미술의 키워드인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아트는 형식상 모두 팝아트로 아우를 수 있는 것들이지만, 중국 팝아트의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의 현대사와 그에 대한 성찰을 가벼운 만화적 이미지 속에 역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의 팝아트가 포드주의와 대중사회에 대한 냉소적 제시에 머물렀다면 중국의 팝아트는 나아가 비판적 팝의 가능성을 열었다. 결국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의 합리주의는 중국의 팝아트 속에서 쥐를 잡는 흑묘(黑猫) 혹은 백묘(白猫)의 비애에 대한 조용한 발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