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 청년세대가 기성사회를 뒤흔든 두 상징적 사건이 있다. 1968년 프랑스의 68혁명과 1969년 미국의 우드스탁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이다. 두 사건의 성격은 판이하다. 68혁명이 정부의 실정과 사회모순에 대한 학생과 노동자들의 정치적 저항운동이었다면 우드스탁페스티벌은 반전, 평화, 인권, 사랑의 메시지와 음악을 함께 향유하는 히피(hippie)들의 한판 놀이터였다. 방식은 달라도 두 사건 모두 기성사회와 후대의 청년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68혁명에 대한 연구는 활발한 데 반해 우드스탁페스티벌에 대한 재조명은 거의 없었다. 리안(李安) 감독의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이 특히나 반가운 이유다.
1969년 당시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베트남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Malcolm X, 1925~1965)와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1929~1968) 목사 암살사건, 흑인폭동 등으로 인해 인종갈등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해는 마침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해기도 하다. 영화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베트남전 소식과 아폴로 11호 소식으로 역사적 배경을 깔아놓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얼떨결에 우드스탁페스티벌의 한가운데 서게 된 실존인물 엘리엇 타이버(Eliot Tiber)디미트리 마틴 분다. 시골에서 낡은 모텔을 운영하는 부모에게 파산위기가 닥치자 엘리엇은 화가의 길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모텔 일을 거든다. 모텔을 살리기 위해 궁리하던 그는 옆 동네에서 열리기로 한 록페스티벌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자기 마을에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국 개최지는 그의 동네에 위치한 베델목장으로 결정되고 공식숙소가 된 엘리엇의 모텔은 떼돈을 벌기 시작한다.
당초 오만 명이 올 것으로 예상했던 페스티벌에 그 열 배인 오십만 명의 히피들이 몰린 것이다. 히피란 기성사회의 제도, 가치관 등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회귀 등을 주장하는 일련의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1960년대 중반 미국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나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히피라는 테두리 아래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뒤섞였다. 환각제와 섹스 등 향락을 좇고 알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누구나 평등한 공동체를 추구했다. 반전, 평화, 인권, 사랑을 외치면서도 적극적인 사회참여 대신 각자의 이상향만을 찾으며 도피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들에게 페스티벌만큼 좋은 ‘해방구’가 또 있었으랴!
영화의 한 장면
사흘간 펼쳐진 축제는 많은 이들을 변화시켰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빌리에밀 허쉬 분는 제 정신이 아닐 때가 많다. 밤마다 악몽을 꾸는데 그 속에서 전쟁터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정상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그가 페스티벌에 젖어들면서 졸업파티 등의 행복했던 기억을 되찾고는 눈물을 흘린다. “히피들 머리를 몽둥이로 두드려야 한다”던 경찰관도 얼마 뒤에는 헬멧에 꽃을 꽂고 “피스(peace)”를 외치며 히피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페스티벌의 자유분방한 기운이 철벽같은 공권력도 녹여버린 것이다. 심지어 완고하기 그지없던 엘리엇의 부모마저 약 성분이 들어간 케이크에 취해 흥겨운 춤판을 벌인다.
소심하고 유약하던 엘리엇 또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페스티벌에서 만난 히피커플의 권유로 환각제에 취한 그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그의 눈에 비친 베델목장은 음악과 쾌락과 평화가 물결치는 ‘유토피아’다. 그는 숨기기에 급급했던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며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대담함마저 보인다. 엘리엇의 아버지는 말한다. “한 달 전만 해도 난 죽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있다. 너도 살아나거라. 그리고 떠나거라.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엘리엇은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여 불확실할지언정 자유로운 길을 택한다. 2007년 그는 자전적 소설 『테이킹 우드스탁』을 썼고 이 소설은 영화의 밑거름이 됐다.
‘사흘간의 평화와 음악’이 끝난 뒤 남은 것은 페스티벌 주최자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돈 문제와 쓰레기로 난장판이 된 벌판이다. 하지만 이 사흘간의 기억을 공유한 이들, 그리고 간접적으로나마 축제의 기운을 전해들은 이들, 나아가 사회 전체는 결코 축제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단지 사흘간 신나게 놀았을 뿐인데 말이다. 우드스탁페스티벌이 위대하면서도 위대하지 않은 전환점인 이유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 지점을 담백하지만 아름답게 설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