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지하철역과 신문지, 지저분함, 구걸, 위험, 실패…… 이런 어둡고 부정적인 단어들은 아닐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사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모두가 알지만 눈 감는, 왠지 다른 부류의 사람들. 그런데 최근 노숙인들이 서울 지하철역 인근 곳곳에 등장해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깔끔한 복장으로 한 손에 잡지를 들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가 흔히 보던 그 모습이 아니다. 무슨 일일까. 이들이 바로 <빅이슈코리아The Big Issue Korea>라는 잡지를 팔고 있는 노숙인들, 빅판(빅이슈 판매사원)이다.

지난 7월 ‘홈리스(homeless)의 자립을 위한 잡지’를 내세우며 <빅이슈코리아>가 창간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가져왔던 홈리스, 즉 노숙인들에 대한 인식을 이제는 좀 바꿔야지 않겠느냐는 화두를 던지며.

<빅이슈The Big Issue>가 처음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 1991년이니 사실 한국에서 이런 움직임이 가시화 된 것이 그리 빠른 편은 아니다. 한국사회가 오랜 기간 동안 노숙인을 대해온 관점은 단속하거나 회피하거나 적선하거나, 이 세 가지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빅이슈코리아>의 창간은 기존의 접근과 차별화 된다는 점에서 반갑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닌 ‘자립’을 지원하는 새로운 모델이라는 점에서다. 일시적인 도움이 아닌 궁극적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이다.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빅이슈코리아>는 이러한 가치실현을 위해 잡지판매 외에 여러 문화사업들도 함께 펼치고 있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결국 핵심적인 과제는 잡지의 성공적인 시장진입과 성장이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사회문화적 가치실험들이 한국사회에서 왜 실패했는가를 살펴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좋아하고 지지한다고 쉽게 지갑을 열진 않으니 말이다. <빅이슈코리아>가 바라는 것은 사회적 관심과 사람들의 인식전환이지 결코 동정심이 아닐 테니까. 비즈니스 측면에서의 건강한 사업적 성공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는 무엇보다 잡지가 읽을 만한가와 직결된다. 정체성과 품질에 관한 이야기다.

빅판 활동 모습


이런 바람은 현재까지 발행된 창간호와 2호를 사서 꼼꼼하게 읽어본 독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우선 ‘소셜 엔터테인먼트 매거진’을 표방하고 있는 <빅이슈코리아>의 기획과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어떤 잡지인지 좀 모호하다. 노숙인들이 판매하는 잡지지만 이들이 주체가 되거나 이들에 관한 읽을거리가 별로 없다는 점이 아쉽다. 잡지를 읽은 한 친구는 영화나 휴가에 대한 좋은 콘텐츠가 널렸는데 굳이 <빅이슈코리아>에서 그걸 읽을 필요가 있을까, 라며 의아해한다. 고민스런 대목이다. 노숙인들이 판매한다는 것 외에도 잡지의 성격 자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사회현상과 문화콘텐츠를 다루더라도 다른 엔터테인먼트 잡지와는 차별성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다른 잡지가 아닌 <빅이슈코리아>를 찾는 일반소비자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구매하게 만들지 앞으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듯싶다. 심정적 지지를 넘어 잡지 자체에 대한 관심을 모으고 이것이 구매로 확대되거나 입소문을 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돈만 주고 잡지는 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영국의 경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하나, <빅이슈코리아>는 콘텐츠 수급, 판매현장 지원, 홍보 등 기획운영 전반에 걸쳐 재능기부자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콘텐츠 제공에 있어서는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연대를 통해서도 해결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실질적 운영뿐만 아니라 폭넓은 관심을 유도하고 인식을 바꾸며, 사회적 이슈를 확대하는 데도 필요하다. 물론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다만 이러한 수단이 보다 알찬 기획과 질 높은 콘텐츠 제공을 위해 활용되는 것인지는 점검해보는 것이 좋겠다. 만일 내용 채우기에 급급해 재능기부나 해외 콘텐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황이 된다면 안정적으로 잡지를 운영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한국은 프로보노(pro bono)공익을 위해 분야별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 특유의 ‘부탁문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빅이슈코리아>에 참여하는 것이 자발적인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토대와 분위기를 먼저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잡지<빅이슈코리아> 창간호


이를 위해서는 초기단계부터 자체 기획력과 편집능력을 키워 내부자산을 축적시킬 필요가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건강한 비즈니스 토대를 만드는 것은 <빅이슈코리아>의 장기적인 과제일 텐데 이것이 외부조력으로 탄탄해지기는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재능기부든 소비자 구매든 인정에 기대는 방식은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와도 맥락이 통한다. 결국 노숙인들의 자립에 기여하려면 잡지 스스로의 내용을 가지고 자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빅이슈코리아> 2호　　　　　　　<빅판활동모습>


잔소리가 길었다. <빅이슈코리아> 창간, 이제 겨우 두 달째다. 아직은 이런 잡지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을 안다. 오랜 준비기간을 거치고 많은 이들의 땀과 응원으로 만들어진 만큼 <빅이슈코리아>가 스몰이슈(small issue)로 끝나지 않고 진짜 빅이슈가 되길 바란다. 가치실험의 성과가 더딘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숙인 자립의 문제를 푸는 데 있어 <빅이슈코리아>의 창간이 하나의 분기점이 되고 실제 유효한 해법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주는 잡지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일부러 기다렸다 사게 되는, ‘없어서 못 파는’ 잡지가 되기를!



<빅판활동모습>

이미지 제공_ 빅이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