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산수시간에 나눗셈을 배울 때, 나누어서 딱 떨어지지 않는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연극 <코끼리에 관한 오해>는 이런 종류의 당혹스러움을 선사한다. 이 작품을 난해하다고 느꼈을 관객들이 많을 것 같다. 작품의 난해성을 약간 변호하자면, 이 작품이 생판 어려운 작품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전체내용에 대한 가닥이 잡히기 때문이다. 다만 잘 설명되지 않는 나머지가 존재할 뿐이다. 그 부분을 그냥 ‘나머지’라고 명명하고 남겨두느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전체내용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느냐 하는 것은 고민거리다. 작가가 코끼리에 대해 오해했듯이 누구든 이 작품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작품의 미덕일지 모른다. 이 작품을 통해 나누어 딱 떨어지지 않는 나머지를 처리하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나머지’는 작가가 작품을 두텁게 만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기도 하다. 기존작품과 다른 상상력을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은 의도가 강한 작품인데 너무 단순하게 작품의 내용이 설명된다면 다층적 의도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요점은 작품의 난해성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올바로 오해하기를 바란다고 해야 할까.
작품에는 작가의 원래 의도를 살리되 무리하게 남겨진 ‘나머지’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한 연출의 흔적이 보인다. 우선 실체를 알기 어려운 코끼리란 인물을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그림 속 신사의 이미지에다 얼굴은 천으로 감싼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구체화시켰다. 작가는 코끼리라고 했는데 왜 얼굴 없는 신사로 표현했을까. 사실적인 코끼리로는 작가의 의도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상관물을 선택한 것이다. 초현실주의를 떠올리는 작품이기에 미술작품과 연관해서 이미지를 찾으려고 했던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그 모습을 보고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떠올리지 못했다고 해도 코끼리가 사실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는 충분하다. 이렇게 <코끼리에 관한 오해>는 서양회화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무대를 형상화했다. 다락방은 회색을 주조로 하여 쇠락한 느낌으로 표현했고, 거기에 엄마의 털실, 소설을 쓰는 종이는 붉은색으로 하여 시각적인 대비를 강조했다.
엄마가 털실로 옷을 짜는 것과 아들이 종이에 소설을 쓰는 것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생산적인 일이 된다. 그러나 아들은 엄마가 원하는 소설만 써야 하고 엄마는 커버린 아들에게 맞지 않는 작은 옷만을 짠다. 눈치 챘겠지만 둘의 관계는 정상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엄마는 아들을 지배하고 아들은 엄마가 미쳤다고 여기면서도 복종한다. 그렇지만 아들은 꽃을 키우는 것으로 “외부와 단절하라”는 엄마의 명령에 저항한다. 이때 코끼리라는 인물은 아들을 부추기며 바깥세상으로 나가자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막상 코끼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꽃을 발견한 엄마가 꽃을 꺾자 아들은 엄마를 목 졸라 죽이는데, 이미 아들은 엄마를 사 년 전에 죽인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의미는 분명히 드러난다. 코끼리는 아들의 또 다른 자아이며, 그 자아는 엄마에 저항하지만 이는 곧 실패로 끝나고 만다. 사 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죽은 것은 엄마가 아니라 코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반전은 자연스럽다.
코끼리가 아들의 또 다른 자아라는 점은 극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표현된다. 코끼리가 엄마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들이 코끼리에게 하는 말을 엄마에게 하는 말로 오해하는 상황은 아들이 엄마에게 반항하는 심리를 절묘하게 대변한다. 겉으로는 복종하지만 내면에서는 반항하는 아들의 이중적 심리가 상황의 어쩔 수 없음으로 까발려지는 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관객들도 이 장면을 충분히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연출은 작품의 핵심을 매우 쉽게 전달한 셈이다. 다만 극의 마지막에서 다락방의 문을 두드리는 외부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작품을 다시 새로운 층위로 끌어올리려 했지만 그 부분은 오히려 혼란을 주었다.
이 작품이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한정해서 해석해야 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영화 <마더>(2009)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마더>가 온전하지 못한 아들을 고정해 두고 그 아들을 지켜내기 위한 광적인 모성을 형상화했다면, 이 연극은 광적인 모성을 고정해 두고 그 안에 있는 아들의 태도에 렌즈를 들이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아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불모의 땅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그것이 우리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또 다른 당혹감을 선사한다. 가정의 문제를 넘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병적인 징후를 간파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