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분홍빛 솜사탕, 반짝이는 헬륨풍선, 깜찍한 인형 머리띠, 맛있는 핫도그와 시원한 슬러시, 오락기계의 요란한 효과음, 놀이기구의 번쩍이는 조명……. 유원지는 바삐 돌아가고 시끄럽고 현란하다. 이 세상에는 절대 존재하지 못할 땅(네버랜드), 놀라움의 땅(원더랜드), 꿈의 땅(드림랜드)이라는 이름들이 붙은 유원지를 사람들은 신나게 놀기 위해 찾는다. 일상의 근심, 걱정 따위 다 버리고 꿈과 모험을 찾아서. 하지만 지역의 소규모 유원지나 놀이동산, 장이 서거나 행사가 있을 때 잠시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이동유원지에는 떠돌이 서커스단의 비애감이 서려있다. 게다가 ‘유원지’라는 단어는 퇴폐와 향락의 냄새마저 풍기지 않는가. 사실 유원지에는 놀이의 즐거움과 사고의 두려움이 늘 공존한다. 안전점검이 미비한 놀이기구에는 고장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고, 자연을 흉내 내어 만든 인공 조형물과 조악한 무대 뒤편에는 음침하고 음습한 장소들이 숨어있다. 흥겨운 노래와 요란한 조명과 사람들의 깔깔깔 웃음소리 사이로 방문객들 속에 범죄자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둥둥 떠다닌다. 류의 형사 드라마가 종종 유원지의 화려한 불빛 뒤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은 이런 유원지의 양면성 때문일 것이다.

노상준이 만들어낸 <이동유원지 자이언트 펀페어(Giant Funfair)展>도 이렇듯 두 얼굴을 하고 있다. 노상준의 첫 번째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는 흰 벽의 작은 갤러리에는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 예쁜 오브제들이 설치되어 있다. 벽에 붙어있거나 바닥에 놓여있고, 줄을 이용해 공중에 매달려있기도 한 작품들은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고 귀여운 사람과 자동차와 동물들은 역사박물관의 모형들처럼 신기하기 그지없다. 가까이 들여다보거나 몸을 굽히거나 손으로 만지고 싶게끔 만든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박물관의 모형과는 달리 정교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고 섬세해서 그럴 것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칠이 허술하고 작품의 재료인 골판지의 접합도 어긋나 있다. 날카롭고 정확하게 재단한 것이 아니라 손의 어림감각으로 찢어 만들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언뜻 화사하게 생기를 내뿜을 것 같은 그의 작품은 실제로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불이 꺼진 유원지마냥 황량하고 쓸쓸하다. 그가 만들어낸 유원지 속 군중은 왜소하고 무표정하고 무기력하다. 원형판 위에 구성된 유닛(unit)들은 살아있는 기운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전기에 의해서만 작동할 것 같이 배열과 패턴이 기계적이다. 멀리서 보면 에메랄드성이지만 그 실체는 곧 무너질 모래성처럼 첫인상과 실상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전시제목을 보라. 작가가 초소형 장난감의 형태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거대한’ 이동유원지 자이언트 펀페어다.

이번 작품들의 시초는 작가의 영국 유학시절인 서너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가 보내준 티백상자, 집에서 보내온 골판지 소포상자를 이렇게 저렇게 만들고 칠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유형의 작품들이 탄생한다. 당시의 골판지 작업은 힘겨운 유학생활에 대한 신세한탄이자 외부와 소통하고 싶다는 욕망의 표출, 그러나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기혐오의 표현이었다. 세상에 대한 거부감과 그 세상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상황을 높은 집중도와 몰입도를 요구하는 작업과정으로 이겨낸 듯하다. 프라모델 조립에 정신을 뺏겨 시간가는 줄 모르는 아이처럼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골판지를 자르고 붙이고 색칠하면서 불안감을 떨쳐낸 듯하다. 작업이 곧 자기치유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자신이 한심하고 싫어서 자기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던 작가는 목이 잘린 기린을 만들었다. 자신을 괴롭히던 상념을 잊고 창작의 환희를 느끼며 완성된 기린을 통해 위로받는 식이었다. 더불어 이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게 하는 도구이자 언어가 되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자신을 가둔 채 외부와 단절했던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세상과 이야기한다. 자폐(自閉)와 자개(自開), 자기연민과 자기혐오, 놀이와 노동을 넘나들며 끝없이 방황하는 작가의 작품은 그만큼 아이러니하게 폭력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한다.

쓸쓸한 감수성과 폐허의 미학이, 잠재된 폭력성과 불안정한 정서가 아기자기한 형태와 알록달록한 파스텔 색감으로 아름답게, 일견 예쁘게 표현된 이때의 골판지 작업들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인 2009년과 2010년 지금의 이동유원지 시리즈로 발전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내러티브의 구조가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조금 더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색의 사용과 장면구성으로부터 작가의 이차원적 회화에 대한 재능이 드러난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이 늘 회화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있다고 한다.

일상의 값싼 소재로 다층다종의 이야기를 복합적이고 아이러니하게 표현해내는 노상준 앞에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그는 분명 자학하겠지만 또한 그만큼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전시장 내부


이미지 제공_ 갤러리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