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리나라 음악계에서 지난 십여 년 이상 동안 한 영역에서 머무르지 않고 소리의 개념적, 학문적, 실험적 영역을 구축하며 음악의 지평을 넓혀온 류한길이 이번에는 하이브리드(hybrid) 공연을 선보였다. 소리와 일상공간으로 표현된 무대를 합일하고 그 안에 세 작가가 정제된 노이즈를 투입해 상호반응을 유도하는 작품이었다. 이는 관객의 몰입을 주문하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총체예술(Gesamtkunstwerk)모든 예술을 한 악극 안에 포섭하고 강렬한 미적 체험을 만드는 것의 틀에서 소리의 편재성(omni-present)과 우연성을 심미하는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와도 닮아있다.

유유히 놓인 컴퓨터와 책상, 다리미판과 작업용 사다리, 상자더미 등과 같이 작가의 사적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표들이 일상용 전구 등으로 위장해 무대에서 조명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흔히 경험하는 소리들, 버려진 기계장치, 물리적 진동에 의한 소리들과 공존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러한 일상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소리들이 선적(linear)인 흐름을 통해 또 다른, 경험하지 못한 음향으로 전이되는 지점이다. 소리가 시간적 개념으로 시작해서 이미지와 같은 차원으로 결정지어지는 지점에서 이 공연의 극적요소가 드러난다.

빛과 소리가 격렬히 교섭하는 1부 공연에서는 시각과 청각간의 상호우월적인 속성을 볼 수 있다. 소리를 바탕으로 한 청각에서 출발하는 서사는 타 감각간의 끊임없는 교차를 이루지만, 소리는 이내 시각적 요소(조명)의 공격으로 수세에 빠진다. 시각적 지시성이 가진 지배적 성향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머지않아 반복적인 사운드는 어느새 일종의 하모니를 일으킨다. 이를 통해 푼크툼(punctum)주체적으로 어떤 느낌 혹은 자극을 주는 이미지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감흥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배성향의 반복적 교차는 결국 다른 차원의 감각으로 혼종화된다.

깔딱거리는 방울들의 합창으로 이어지는 2부 공연에서는 류한길을 포함한 권병준, 최수환 이 세 퍼포머들의 시나위가 이어진다. 전자음악과 사운드아트의 경계를 교차하며 풍성한 사운드가 넘실대는 즉흥작곡이 진행된다. <시간>이라는 제목의 즉흥곡을 통해 “작곡이라는 개념을 가시화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세 명의 작가가 서로 즉흥적으로 반응하나 암묵적인 틀이 존재한다. 곡이 서사적 구조를 전개하는 데 있어 실재적 소리는 물리적 상황을, 가상적 소리는 심리적 감정을 대치시킨다. 이러한 쌍생성 효과는 디지털사진과 그래픽으로 구분되는 전자 이미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재현과 가공의 차이가 확연하나 동시에 곧 서로에 대한 완벽한 무시를 가져오기도 한다. 불쾌한 거부가 아니라 온전한 합일이 이루어진 탓일까.

정교한 초침소리가 시간의 흐름을 암시한다는 것은 물리적 개념에서의 인식이다. 사운드에 대한 작가의 작위적 조종을 위해 프로그램화된 프로세스의 일부다. 작가는 전능자의 위치에서 설계자의 열정으로 소리를 나열한다. 이 방식은 4분 33초든 5분 33초든 단위화 될 수 있는 시간이다.

혜안이 느껴질 만큼 정밀한 의도가 만든 조화의 경험은 선적 개념의 상황을 이탈하여 도달하는 지점을 초과하는, 시간의 영역에서 이뤄진다. 마치 5분 동안의 낮잠 속에서 반나절짜리 분량의 꿈을 꾼 것과 같이 120분의 공연을 통해 120일의 경험과 대면하게 한다.

원칙과 금기에 의해 창조되는 음악의 영역을 우연과 일탈을 통해 또 다른 음향적 가능성으로 확장시키는 낭만이 엿보인다. 이 낭만을 대중음악에서 전자음악까지의 스펙트럼 속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장르적 분류는 유의미하지 않다. 사운드의 개념과 학문을 실험적인 영역으로 격리시키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공연 <사운드 디자이너―류한길>의 시간을 확장시키는 사운드는 실제와 가상, 물리와 심리의 하이브리드다.

류한길


공연 <사운드디자이너> 포스터
이미지 제공_ LIG아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