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을 배경으로 한 쿠르드(Kurd)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킥 오프Kick Off>는 샤우캇 아민 코르키(Shawkat Amin Korki) 감독의 작품이다. 이라크 쿠르드족 마을 자코(Zakho) 출생인 그는 조국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꿈을 늘 지녀왔다고 한다. 한 번도 독립된 조국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가 이야기하는 조국은 전쟁과 상처와 아픔이 남겨진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영화의 한 장면

그가 만든 조국의 현실은 <킥 오프>라는 영화로 재현된다. 이라크전쟁이 끝난 키르쿠크(Kirkuk)에는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와 난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쿠르드족이다. 전쟁난민인 그들은 갈 곳이 없어 폭격의 위험에 몸을 숨기고자 스타디움에 모여 산다. 스타디움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 그 공간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다. 아이들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글을 배우고 운동장에서 뛰어논다. 난민들은 어렵사리 구한 스크린으로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열광하면서 고된 삶을 달랜다. 진정한 조국이 없는 이들은 이라크 국가에 경의를 표하며 ‘쿠르디스탄(Kurdistan)’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축구경기를 관람할 날을 꿈꾼다.

쿠르드족은 역사상 단 한 번도 독립된 국가를 이룬 적이 없는 민족이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소수민족이다. 현재는 이라크, 이란, 터키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나라를 쿠르디스탄이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그들의 바람이 담긴 비공식적인 이름일 뿐 지도상 어디에도 쿠르디스탄이라는 나라는 없다.

이라크에 사는 쿠르드족은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도 잃고 말았다. 집도 없고, 나라도 없는 설움의 민족인 그들에게 축구야말로 한풀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며, 다른 민족과 소통할 수 있는 출구다. 축구경기가 열린 날, 사건을 주도하는 주인공 아소는 어린 동생을 위해 축구경기를 기획하기로 결심한다. 어린 동생은 축구를 좋아했지만 지뢰위험 지역으로 날아간 공을 찾으러 갔다가 폭발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이후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방황하는 동생을 위로하고 싶은 형의 사랑은 축구를 통해 난민촌의 여러 민족들이 화합하여 하나가 되는 친선경기를 도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집도 없이 떠도는 난민들에게 축구경기를 준비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소는 방송국에 편지를 써서 축구경기 후원을 요청하고 팀을 조직한다. 그리고 아랍(Arab), 쿠르드, 터키(Turkey), 아시리아(Assyria)인들의 연대를 위한 친선경기를 기획한다. 축구를 통해 쿠르드도 아니며 아랍도, 아시리아인도 아닌 ‘하나’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 고단한 삶을 사는 난민으로서 ‘그들만의 연대’를 위한 소통의 장치로 축구를 고안해낸 것이다.

영화<킥오프>포스터

삶의 위안과 오락이 없는 이들에게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은 축제의 날이다. 그런데 그날 아침 난민촌에 거주하던 헬린 가족이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남모르게 헬린을 사랑했던 아소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 때문에 한마디 고백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떠나보낸다. 헬린도 축구를 구경하고 싶다는 핑계로 남고자 하지만 가족이 처한 상황과 아버지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라크의 보수적인 현실이 답답한 그녀는 축구선수를 꿈꿀 만큼 열정적이다. 그러나 가부장적 가치관과 여성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아버지의 그늘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헬린 가족이 떠나고 아소와 사코는 축구시합을 준비한다. 테러와 폭격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스타디움에서 간신히 축구경기가 시작된다. 아랍팀과 쿠르드팀의 경기다. 그런데 심판에 문제가 생겼다. 어느 팀도 응원하지 않고 중도를 지킬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촬영을 위해 찾아온 외국인 카메라감독이 심판을 맡게 되고 경기는 시작된다. 두 팀의 친선경기를 알리는 킥 오프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킥가 시작된다. 그런데 전반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이 찢어져 버리고 만다. 예비로 공을 준비하지 못했던 그들은 공을 사러 시내로 나간다. 공을 사러 나간 장터에서 아소는 사코에게 돈을 받아 상점으로 들어가고 사코는 오토바이 옆에서 그를 기다린다. 순간 꽝하는 폭발음이 온 세상을 뒤흔든다.

폭격이 시작되자 경기가 진행되던 스타디움은 순식간에 모래바람만 이는 허허벌판으로 되돌아간다. 카메라맨도 방송국피디도 선수들도 모두 자취를 감춘 그곳에 쓸쓸하고 황망한 눈망울로 다리가 풀린 사코가 돌아온다. 그를 따라 아소의 주검이 천에 둘둘 말린 채 마른 스타디움 흙 위로 동댕이쳐진다. 이때 모래바람과 아소의 주검, 사코의 통곡을 지켜보는 여인의 시선이 등장한다. 슬픔과 절망에 찬 그녀의 눈망울은 아소의 주검 위에 머문다. 난민촌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고자 했던 헬린의 가족이 검문을 통과하지 못해 좌절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을 사랑했던 한 청년의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한 장면

전쟁이 남긴 처절한 삶의 현실에서 축구와 킥 오프를 통해 출구를 찾고자 했던 난민들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는 사코와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는 헬린의 시선, 무심하게 모래먼지만 일으키는 바람으로 무화(無化)되어 버린다.



영화의 한 장면

언제 폭격이 시작될지 모르는데도 유유히 축구로 삶을 달래는 이들은 진정한 삶의 유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욱 처절하고 안타깝다. 전쟁에서 볼 수 있는 총격전도, 살인도 그려지지 않지만 그 어떤 전쟁의 아픔보다도 처절한 전쟁의 현실이 담겨있다. 그 현실의 적나라함을 도저히 컬러로 보여줄 수 없었던 감독은 흑백의 단순함으로 그것을 전달한다.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이자 언제 폭격으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의 현실은 희망의 발차기, 킥 오프 또한 삼켜버리고 만다.

이미지 제공_ 인디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