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가지 텍스트가 있다. 하나는 그윽한 푸른색의 깊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가운데 양손을 위로 벌린 사람이 있고, 돌고래들이 그를 향해 몰려들고 있다. 그의 머리 위에는 햇살이 비추고 있어 얼핏 보면 그가 돌고래들의 구세주처럼 보인다. 다른 하나는 미색 바탕에 커다란 양은냄비가 한가운데에 있고 그 밑에는 가스레인지가, 그리고 냄비 안에는 물이 담겨져 있으며, 그 위로 돌고래 한 마리가 튀어 오르고 있다. 이 두 텍스트는 영화 <더 코브The Cove>(2009)의 팸플릿 표지다. 전자는 한국어판 팸플릿이고, 후자는 일본어판 팸플릿이다.

한국어판 팸플릿 표지는 영화 <그랑 블루Le Grand Blue>(1988)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돌고래는 구원해야 할 대상이며, 바다와 함께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반면 일본어판 팸플릿은 돌고래를 먹거리로 보고 중앙에 냄비를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팸플릿의 내용에도 돌고래어업이 일본의 ‘문화’ 중 하나라는 칼럼을 실어 돌고래를 잡는 행위가 ‘야만적인’ 행위가 아니라 오랫동안 행해져온 ‘전통’의 하나라는 것을 강조했다.

다큐멘터리의 진실과 편집, 재현

그렇다면 이렇게 전혀 다른 두 가지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 <더 코브>는 어떤 영화인가. 영화는 돌고래어업을 주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와카야마현(和歌山?)의 다이치(大地町)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릭 오베리(Ric O’Berry)는 돌고래가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 동물이고, 또 얼마나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어필하면서 돌고래를 작살로 잔혹하게 죽이고 그것을 먹는 행위가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 증명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구미중심적인 생각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도쿄(東京)와 교토(京都)에서 일본시민들을 인터뷰한다. 이를 통해 대다수 일본인들이 일본의 돌고래어업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밝히면서, 이는 일본정부가 사실을 고의적으로 숨겼기 때문이라는 음모론까지 등장시킨다.

또한 다이치마을에서 잡은 돌고래는 돌고래고기가 아니라 다수 일본인들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고래고기로 둔갑하여 유통되고 있다고 전한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은 참치를 들여와 해체하고 사가는 츠키지(築地)시장을 배경으로 한다. 이 장면을 고래고기로 둔갑되어 슈퍼마켓에서 팔리고 있는 돌고래고기의 패키지와 패키지 사이에 삽입한 까닭에, 츠키지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참치가 아니라 돌고래인 듯한 착각도 든다.

죽어가는 돌고래 소리와 버둥대는 돌고래 뒤에 배치된 역대 다이빙 선수의 눈물 또한 다이치마을 어부들의 모자이크처리된 얼굴과 대조를 이룬다. 각종 통계자료와 일본수산청연구원의 인터뷰를 동원하여 돌고래고기를 먹는 사람은 수은에 중독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팸플릿을 읽고 있는 관객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돌고래의 구원을 외치는 소리와 함께, 아울러 다이치마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작살을 이용하여 돌고래를 죽이고, 도망갈 곳 없는 돌고래들을 연안(코브)으로 몰아 가둔 후 죽을 때까지 찔러대는 어부들의 모습을 비춘다. 점점 붉게 변하는 바다의 색깔은 영화 속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 부분일 것이다. 일본의 어부들이 고통 없이 생물을 죽일 수 있는 작살을 사용한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던 수산청연구원은 이 영상을 보고 할 말을 잃는다. 영화는 이렇게 시각과 청각, 카메라의 편집을 적절히 사용하고 씬(scene)을 재편집하여 제작진의 주장을 훨씬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든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현실의 일부를 재편집하여, 감독의 필터를 통해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주는 텍스트처럼 보인다.


 
영화 더 코브 포스터(일본어판)


영화를 둘러싼 공방전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2009년 11월 도쿄국제영화제(東京國際映畵祭)에서 상영되어 화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상영중지를 요구하는 단체들과 이에 맞서는 영화인 및 시민단체들의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도쿄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다이치마을 어업협동조합 변호사는 영화에 나오는 어부들의 초상권 침해와 돌고래어업에 관한 사실오인 부분에 대해 항의하는 문서를 2009년 12월 영화 배급사에 보냈다. 배급사는 이 항의를 받아들여 초상권이 문제가 된 어부들의 얼굴을 모자이크처리하고 사실오인으로 항의 받은 장면에는 “일부 증명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자막을 넣어 그 수정본을 각 영화관에 배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상영이 결정된 영화관에는 2010년 4월부터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우파단체들은 각 상영 예정관에 직접 찾아가 가두항의를 하겠다고 인터넷으로 예고했다. 이 예고로 인해 상영 예정관의 대다수가 상영중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더 코브>는 7월 기준으로 도쿄의 일부 영화관과 요코하마(橫濱), 오사카(大阪), 교토에서 상영이 끝난 상태며, 오히려 영화 상영중지를 둘러싼 공방전이 미디어의 관심을 받으면서 영화관은 뜻하지 않게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우파단체들이 의도치 않게 이 영화의 마케팅을 해준 셈이다. 상영을 예정하고 있던 영화관들이 대부분 영세한 소규모 영화관들이었으니, 영화관 입장에서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영화관뿐만 아니라 각 대학들도 영화상영이 문제가 되자 이를 중지하기로 판단하여 2010년 3월에는 릿쿄대학(立敎大學)이, 6월에는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이 상영예정을 취소했다. 학생운동의 중심지였던 이 두 대학이 ‘관리’라는 미명하에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이 이어지기도 했다.


영화 더 코브 포스터(한국어판)       영화의 한 장면



이제 <더 코브>를 둘러싼 공방전은 영화를 만든 제작진과 다이치마을 어부들의 문제가 아닌, 영화를 상영하려는 영화관과 이를 저지하려는 우파단체들의 움직임, 그리고 이를 기사화하는 미디어의 문제가 되었다. 다이치마을의 어부들은 더 이상 문제의 중심이 아니며, 영화를 만든 릭 오베리나 루이 시호요스(Louie Psihoyos) 감독이 논의에 등장하는 일도 드물다. 영화를 둘러싼 공방전은 영화 그 자체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논의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영화의 한 장면

이미지제공_스폰지이엔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