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있다/ 책의 개인사

상상하는 세 벡터 : 강영구(부평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의 책들

1. 최세진,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메이데이, 2006.

2. 크리스 하먼, 천경록 옮김, 『민중의 세계사』, 책갈피, 2004.

3. 한만송, 『캠프마켓-아픈 희망의 역사 부평미군기지를 말하다』, 봉구네책방, 2013.

글|사진 : 유광식

덕적도에서 태어난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일 떠나는 아저씨들 배에 올랐다가 바다로 뛰어들며 누가 더 멀리 헤엄쳐 오는지를 시합했다. 커서는 낚시를 하러 갔다가 사고로 저수지에 자동차와 함께 빠졌지만 당황하지 않고 헤엄쳐 나온다. 그만큼 수영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현재 부평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으로 있다. 강영구 님을 처음 만난 건 5년 전. 만날 때마다 눈시울이 촉촉하도록 진지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소개해줄 책을 종이백에 한 아름 담아왔고 그 중에서 3권을 내밀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최세진), 『민중의 세계사』(크리스 하먼/천경록 옮김), 『캠프마켓-아픈 희망의 역사 부평미군기지를 말하다』(한만송). 먼저 그의 지난 배경이 궁금해졌다.

“지난 생활이 궁금해요. 인천에서의 성장은 어떠했나요?”

“나는 덕적도에서 태어났고 어느 여름방학 때 송월동으로 오면서 바야흐로 뭍에서 지내게 되었지. 공부가 안 돼서 그땐 시집을 엄청나게 읽었어. 원래 시를 쓰던 놈이니, 아니 시를 쓰고 싶은 놈이었지. 중2부터 그 쪽 활동을 해왔으니까. 동인지 만들고 시낭송회하고…. 대학 가서는 방법이 빤하잖아! 시문학회. 대학을 당시 남구 숭의동에 있는 인천교대로 갔는데 재미가 없었지. 1학년 들어가보니 중․고등학교 때 이미 다 섭렵했기도 했고 치기어린 행동들이 나와서 고민하다가 연극반에 들어갔어. 학마을 극단(인천교대 동아리). 정말 심각하게 빠졌어.

그러다가 4학년 때 대학 잘리고 만날 다방DJ 하러 다녔거든. 제물포 준다방, 인하다방, 전화다방, 주안 촛불다방, 2시간 반 타임 음악 틀고 쪽지 받아 신청곡 틀면서 멘트하고. 동인천엔 신포동 육구다방, 대한서림 위 연다방, 심지, 유진음악감상실, 애관극장 뒤편에 2001음악감상실, 부평엔 대한다방…. 그러다가 갑자기 군에 간 거지. 경비교도대라고 해서 인천소년교도소로 갔어. 갔는데 이 양반(기형도) 돌아가셨다고 뜬 거야. 이 양반 때문에 시 쓰는 작업을 하면서 좋아했고 엄청 해매기도 했는데 말이지. 기형도 시인! 기형도…(읊조림)."

1.

시집으로 시작한 독서가 연극으로 옮겨 갔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음악이 합쳐지고, 소위 운동을 하면서부터 그는 첫 번째 책의 부제처럼 좌파적 상상을 하기에 이른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는 우리가 잘 아는 홍세화 선생이 추천사를 써주었는데, 지은이 최세진은 평상시 생활에 젖어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이 주목적이라며 결국 자신의 삶을 위해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갖추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는 사실 20세기 초 유명한 아나키스트이자 반전 운동가인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1869∼1940)의 발언에서 따온 말이며, 여기서 그는 게임, SF, 해킹, 문학, 미술, 음악, 애니메이션,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의 일들에 대한 감춰진 것들의 사실과 의도를 파악하고 일상의 문화를 뒤집어보자고 한다.

“이 책을 접하게 된 동기와 아끼는 이유가 있는지요?”

“2006년도 공무원노조 인천본부장이던 때 행정자치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데 이 친구(저자 최세진)가 연대하러 왔다 우연히 책을 건네줬지. 제목을 보자마자 혁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춤출 수 없다면’이라는 구절에 꽂혀 버렸어. 그때 운동을 하면서 그런 고민들. 내가 지금 행복한가에 대한 내밀한 고민이 있어서 매사에 회의론자가 되고 운동을 끝낼까 말까 했던 상황에 이 제목을 보자마자 하루 만에 다 읽었어. 최세진은 당시 소위 좌파 단위에 우파가 들어오면서 사무국이 부서져 나가는 시기에 나간 친구였지.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놀랐어. 이렇게나 사고를 자유롭게 하는 친구였나 했지. 기본적으로 나는 좌파적 사고가 큰 놈인데 현실적으로는 뭐 하고 있었나, 하는 자성이 많아진 계기가 되었어.

그 뒤로도 몇 번을 읽었어. 지금도 직원채용 면접 때마다 그 질문을 해, 당신은 행복하냐고. 그러면 교과서적으로 답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해도 고민하는 지점은 있어 보이더군. 대기업의 부장이 있었대. 한강을 매일 지나다니는데 늘 낚시를 하는 청년이 있었던 거야. 어느 날 차가 막혀서 그이에게 가서 허구한 날 젊은 사람이 뭐 하는 거냐고 물어. 그 청년이 어르신은 뭐 하시는 분이야 물었대. 그래서 나는 대기업의 부장이라고 대답했겠지. 그러니까 그럼 앞으로 뭐 하실 겁니까 하고 물으니 사장까지 오른 다음 그 다음엔 등산도 하고 낚시도 하고…그랬대. 그 청년이 말하기를 “저는 그걸 ‘지금’ 하고 있습니다”라고 해. 난 이게 좌파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해.”

2.

두 번째로 건넨 『민중의 세계사』(크리스 하먼/천경록 옮김). 방대한 두께(900쪽)만큼이나 인류역사의 사연이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그는 공무원노조 활동 중에 어쩌다 2004년도에 자신이 군복무를 했던 인천교도소에 들어갔다. 거기서 넣어 달라던 책이 바로 이 책이고 조용히 탐독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 역사가 왜곡된 지점이 있다고 보면서 중국, 중동, 인도, 아프리카 등의 역사도 폭넓게 다루며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있다. 그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노조 등의 조직 활동을 길게 했던 이유로 역사, 사회, 운동, 차별, 일상, 상상 등에 대해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일까. 어떤 가치를 얻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를 중요하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그에게 민중이라는 단어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의 지금의 역사는 어떻게 써내려가고 있을까?

흔히 말하듯 인천은 노동의 도시, 저항의 도시라고 그는 말한다. 특히 부평이라면 더더욱 그렇단다. 지금의 시대상황과 맞닿아 있어서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문옥배)란다. 우리나라의 첫 금지곡이 <아리랑>이고, 두 번째가 <봉선화>라고 말을 꺼내는 그는 검열의 역사는 정치와 맞물려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언젠가는 그 노래들의 금지사유를 시대와 가사의 내용을 제시하는 보여주는 방식의 기획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늘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논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태도, 이전에 그랬다면 지금도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런 것들을 말하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머지않아 『민중의 세계사』의 지면이 더 추가될 것도 같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3.

책이야말로 다양한 정보를 준다. 나는 그가 가져온 10여 권의 책이 그저 감상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란 걸 금새 알 수 있었다. 그가 실제 고민하고 있는 생각들을 함께 공유하기 위한 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소개해준 책이 『캠프마켓-아픈 희망의 역사 부평미군기지를 말하다』(한만송)이기에 나의 그런 생각은 더욱 짙어졌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약소국에는 어김없이 문제로 남아 있는 존재가 미군이며 미군기지가 아닐까 싶다. 그가 근무하는 부평지역은 곧 반환될 미군기지가 엄연히 존재해 있고, 이에 대한 향후의 활용 논의가 뜨거운 시기에 나온 책이다.

“캠프마켓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부평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캠프마켓은 내가 직장 생활하면서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를 다룬 책이야. 우연하게 봤지. 부평 입장에서는 굴포천과 미군부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지. 그런데 최근에 굴포천 복원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문화적 시각 운운하더니 결국 한다는 소리가 토건이야. 이 책을 보면 복원의 방식을 건설업자 입장이 아니라 문화를 다루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낼까 하는 시각이 담겨 있지. 미군부대에 대해서도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서의 책은 이게 유일하거든. 내년 문광부 정책 속에 (부평이) 문화도시로 선정이 되었어. 5년에서 7년 사업인데, 한 사업으로 7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지속하면 뭔가 해볼 수 있지! 그런 과정에서 (도시문화의) 중심축을 음악융합도시로 하자는 거야. 나는 부평이 음악도시라고 십 수 년 전부터 주장해왔어. 음악산업센터를 만들고 미군부대 앞(신촌거리)을 음악도시로 할 복안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잖아? 또 그러기 전에 팩트(fact)가 정리돼야겠고, 그 다음에 생활사가 정리되어야 하는데, 그런 작업들을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읽는 책이야. 향후 부평이 (나의) 계획대로 된다면 이 책에서 소스를 많이 받게 될 거 같아. 잘 되면 부평의 2-30년 뒤는 괜찮을 거 같다는 상상으로 말이지."

세 책의 제목만 보더라도 사실 의미심장하다. 그의 태도처럼 말이다. 시집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연극판을 헤매다 공무원 시절에 안아든 사회상은 현재 자신이 몸담은 부평의 지도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벡터와 같다. 설령 그 문턱이 높을지라도 말이다. 첫 번째 책에서 인식의 전환이라는 동기가 유발되었다면, 두 번째 책을 통해 성숙의 단계를 지졌고, 세 번째에 실제의 적용이 일어나면서 하나의 기분 좋은 내러티브가 완성이 된다. 글을 마치며 나 또한 행복한가라는 물음이 있었고(행복함), 설령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해보는 태도, 실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 곧 여름이다.